대북한 정책은 ‘아마추어 수준’
  • 김재일 부장대우 ()
  • 승인 199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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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원·안기부·외무부 손발 왜 안맞나

중부의 대북한 정책이 갈짓자 걸음을 걷고 있다. 새 정부 출범후 대북 정책의 혼선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특히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을 기점으로 대북 정책의 방향과 기조는 전과 후가 뒤바뀐 듯 보인다.

 김일성 사망후 ‘조문 파문’확산과 전남대에 분향소가 설치됐다는 수사 당국의 발표, 6·25 관련 문서 공개와 전쟁 책임론 대두, ‘태산명동서일필’식의 주사파 부각 등 일련의 사건들을 이른바 냉전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일조했다. 정부가 ‘개일 자격의 방붑’임을 그토록 강조했던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전달한 김일성 주석의 정상회담 제안 메시지는 허겁지겁 받아들이더니, 김일성이 죽은 후에는 시기·장소 문제 등을 들어 어떻게 하든 남북한 정상회담을 아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장기 프로그램이 안 보인다”

 특히 지난달 27일 안기부가 주선한 두 북한 귀순자 기자회견에서 튀어나온 강명도씨의 ‘북한 핵탄두 5개 보유’발언은 전세계를 핵폭탄 같은 위력으로 뒤흔들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 회견으로 무슨 이득이 있었는가. 시기상 신중하고 자제했어야 했다”라고 입을 모은다. 남북한 관계뿐만 아니라 3단계 북미 회담에 재를 뿌리는 격이 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항의 등 국제적으로 파문이 일자 다음날 청와대는 부랴부랴 대책회의를 열어 파문을 진정하는 장면을 보였다. 안기부가 주선한 기자회견이 문제가 되자 통일원과 외무부 직원들은 대체로 “한건주의가 만든 부작용이다”라는 반응이었다. 정책의 부조화와 부처간 알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회담할 상대가 죽었다면, 혹은 상황이 변동됐다면 어느 정도 계획 수정은 불가피하다. 그런 경우에도 정책 기조는 일관되게 살아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대북 정책은 그렇지 못하다. 전문가 중에는 이를 두고 ‘정부의 대북 정책은 없다’라고까지 말하는 이가 있다.

 김영삼 정부 출범후 개력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칠 때도 적지 않는 지식인들은 정부의 장기 개혁 프로그램 부재를 비판했다. 장기 프로그램 부재는 대북 정책에 있어 가장 절실한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정부의 대북 정책은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라고 표현했다. 우리나라 대북 정책은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왜 왔다갔다하는가.

 우선 그동안 있었던 김영삼 대통령의 대북 관련 주요 발언을 살펴보자. “김일성 주석이 민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93년 2월25일 취임 연설).” “핵무기를 가진 상대와 악수할 수 없다(93년 6월3일 취임 1백일 KBS와 회견).” “미국은 북한과의 핵 협상에서 추가적인 양보를 해서는 안된다(93년 6월 영국 BBC방송 회견).” “북한은 핵 문제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취했던 조처와 같은 조처를 자초하지 않기를 바란다(93년 7월9일 CNN 인터뷰).”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북한의 핵 투명성이 보장되기 전이라도 김일성 주석과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 (94년 2월25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북핵 문제 해결에는 대화가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김일성 주석과 언제든지 만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94년 3월29일 중국 방문 수행기자 간담회).“ ”북한 핵은 단 한 개라도 허용할 수 없다(94년 6월7일 우즈베크 방문 수행기자 간담회).“ ”북한에 대해서는 이제 제재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북한은 이번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94년 6월8일 국가안보회의).“ 이처럼 상황에 따라 뒤바뀐 김대통령의 발언은 대북 정책의 혼선을 보여준다.

북한 핵에 집착한 것이 문제

 정부의 대북 정책이 혼선을 빚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가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 나가야 하는 문제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 남북 관계와 핵문제가 두 개의 축이라면, 한국은 처음부터 남북 관계를 기본축으로 하고 거기에 핵 문제를 종속시켜야 했다.

 그러나 한국이 핵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다보니 북한과 미국이 당사자가 됐다. 한국 정부는 핵 문제에서 소외됐을 뿐 아니라 남북 문제도 풀리기 어렵게 됐다.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핵 때문에 미국의 정책을 따라가게 돼 버린 것이다. 지금은 흐름상 우선 순위를 되돌리기가 무리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남북한 기본 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앞세워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나갔더라면 대북 정책에 있어 한국 정부의 운신이 지금보다는 수월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지적돼야 할 것은 통일·안보 관련 부처의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통제탑이 없는 데서 오는 혼선이다. 해당부처간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지난 4월 신설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조정회의)에는 이홍구 통일원 장관 겸 부총리, 한승주 외무부장관, 이병태 국방부 장관, 김 덕 안기부장,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 정종욱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참석한다. 이 조정회의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조정회의 회의록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갑갑하고 한심한’내용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한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토론과 정책적인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근시안적이고 행정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미 회담에 무엇을 주문할 것인가, 언론에 낼 것인가 말 것인가, 남북 정상회담 홍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각하’한테 이런 이야기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등이다.

 그는 “남북 관계와 핵 문제에 있어 입체적인 감각이 있는 이홍구 부총리가 들어와서 다소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종욱 외교안보 수석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가정교사 역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평소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다가 갑자기 과감해진다”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큰 틀 속에서 문제의 핵심을 보게 해야 하는데 단편적인 지식만 알리려고 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는 6공 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강경 목소리 못 막는 ‘온건파의 기수’

 조정회의에서 이홍구 부총리와 한승주 장관은 온건파로, 정종욱 수석과 김 덕 안기부장은 강경파로 분류된다. 7월 중순께 터진 조문 파문의 확산과 7월20일 김일성 추모대회날에 맞춘 6·25 관련 문서 공개에는 이들 강경파 중 한 사람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외무부는 그 문서의 공개를 반대했었다.

 조정회의 멤버 중 특히 이홍구 부총리는 ‘온건파의 기수’로 알려져 있다. 7월18일 발표된 ‘김일성은 6·25 책임자’라는, 이영덕 총리 발언 형식의 정부 입장 정리 과정에서 그가 한 역할을 살펴본다.

 이 발표에 앞서 조정회의는 이례적으로 목요일인 지난 7월14일에 열렸다(이 회의는 매주 금요일 오전 7시30분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열린다). 원래 성명 초안은 6·25책임 거론뿐만 아니라 아웅산 사건과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등 김정일을 겨냥하는 강경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부총리는 이 내용에 찬성할 수 없다고 제동을 걸었다. 그러려면 차라리 ‘정상회담 유효’문항을 빼라는 것이었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의 중재로 이부총리의 입장이 채택됐다.

 그러면 이부총리는 각 부처의 입장을 조정 통괄하며 통일안보팀을 잘 이끌고 있는가. 청와대·통일원·외무부 관리들은 대체로 그가 다른 사람에 비해 나이가 많고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좌장으로서 팀을 이끌어가는데 별 무리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한승주 장관과 정종욱 수석이 이부총리의 서울대 문리대 후배이기 때문에 팀웍을 이루는 데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통일안보팀의 팀웍과 관련해 나이·대통령의 신임·학맥 등을 따지는 것은 너무 궁색해 보인다. 지금의 조정회의 멤버가 항구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니라 메커니즘의 문제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남북 문제를 다루는 주무 부서는 통일원이 되어야 하며, 통일원의 위상도 높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안기부는 정보와 대공 문제를 다루고, 그밖의 사항은 협조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선을 긋는다. 같은 정보를 상황에 따라 활용하고 정치적으로 처리하는 일은 통일원과 외무부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통일 부총리는 대북 정책의 통제탑으로 실제로 조정회의를 주도하고 통일원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상은 어떤가. 이부총리는 조정회의 분위기가 강경 쪽으로 선회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김일성 사망후 대북 정책의 큰 방향은 강경 쪽으로 나가고 있다. 이는 이부총리가 통일원의 입장을 관철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통일안보팀을 통괄해 한 목소리를 도출하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통일원 책임자는 지위만 부총리일 뿐 부처의 실제적인 힘은 외무부·국방부·안기부에 훨씬 못 미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외교안보수석은 사실상 통일원보다 ‘윗자리’에 있다. 안기부는 대북 정보의 거의 전부를 틀어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안기부장은 대통령에게 직보한다. 김일성 사망후 ‘애도 기간’동안 통일원 간부들은 모든 북한 소식을 방송을 통해 접할 수밖에 없었다. 조정회의가 안기부 보조에 끌려 갈 수밖에 없으며 통일원 장관이 사안을 장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안기부 고위직에 있었던 한 대북 전문가는 “정책 부서인 통일원은 실제로는 가장 힘없는 부처인데 어떻게 다른 부처를 통괄할 수 있겠는가. 북한 실상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안기부가 대북 정책을 주도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한다. 그는 대북 정책의 혼선이 통일·대화·공작을 혼동하는 데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대북 정책을 뭉뚱그리지말고, 통일에의 꿈과 미래를 관리하는 일은 통일원이, 북한과의 대화는 대통령 직속팀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공작은 안기부가 관리하는 등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을 아는 데 있어 기능주의적 접근이나 서구적 분석의 틀은 맞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낟. 그는 “북한은 일관성이 있는데 괜히 이쪽에서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대북정책의 혼선의 원인을 지적했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일관성 필요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누구의 말을 듣고 결심하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대북 정책의 실제 통제탑은 없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발언권이 센 사람의 말이 먹혀 들어 정책에 연결되는 것으로 비친다. 특히 김일성이 죽은 후에는 대북 정책에 안기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듯이 보인다. 이런 메커니즘 속에서 대북 정책에 일관성을 기하기는 어렵다.

 다른 한편 대북 정책의 혼선을, 과거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는 측면과 결부시켜 보는 시각이 있다. 지나치게 여론과 인기를 의식하거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르려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김정일은 김일성에 비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부가 정상회담을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관측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 정치에 활용하기 위해서도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예를 들어 노태우 정권은 내치의 한계를 외교로 만회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은 대북 정책의 혼선으로 탄탄한 국내 정치 기반을 까먹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한는 전문가도 있다.

 평화연구원의 김남식 상임연구위원은 통일과 안보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지금의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 통일원·외무부 외에 경제 지원 문제와 통신 문제 등을 다룰 경제기획원과 체신부가 참여하는 ‘통일관련 조정회의’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통일에 대한 민족의 의지를 대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제정치를 전공한 학자 외에도 역사학자·사회학자·독립운동가 등이 참여하는 회의 구성을 제안했다.

 통일은 본질적으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문제다. 우선 대통령이 통일 시대에 남북 문제를 이끌겠다는 확고한 민족사적 의지를 다져야 한다. 이는 지도자의 통일관과 철학에 의해 뒷받침돼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의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정책이 따라야 하고, 관련 부처의 입장을 조정해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해 내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책 기조가 확실해진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인기 하락이나 여론의 비난에 상관없이 정책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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