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보궐선거 이상두 당선자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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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활동 안하면 백이면 백, 낙선”

지난 8월2일 밤 11시께까지만 해도 경주 보궐선거 개표를 취재하던 기자들은 꽤 느긋한 심정이었다. 민자당 임진출 후보의 낙승을 예상하고 이미 기사와 사진을 본사로 송고했기 때문이었다. 일부 기자들은 그동안 유세장을 쫒아다니며 쌓인 피로를 푼다면서 술집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런데 11시가 지나면서부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때까지 뒤져 있던 민주당 이상두 후보의 표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상두 후보의 사진을 찍으랴, 당선 소감을 받으랴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거의 모든 여론 조사 기관의 예측을 뒤엎고 승리를 거머쥔 이상두 후보, 그는 자신의 승리를, 30여 년간 권력이 조장한 지역 감정을 깨버린 유권자의 승리라고 해석했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이후보의 당선을 이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본인은 선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본인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저는 형편없는 득표를 했던 13대나 14대 총선 때도 제 자신이 모자라 졌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역 감정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장난이었지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언론이나 중앙당에서 별 소리를 다 해도 지역 감정만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면 당선하리라고 자신했습니다. 절대 오만해서는 안되지만, 그동안 어떤 후보보다도 지역에서 많은 봉사를 해왔다고 자부했기 때문입니다. 지역 감정의 사슬을 끊고 저의 노력을 있는 그대로 평가해준 유권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어떤 봉사활동을 폈습니까?
 일일이 기억할 순 없지만 10여년 동안 야당 지구당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민원이 들어오면 무조건 발로 뛰었습니다. 해결하든 못하든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온 구민들에게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위안이라도 주기 위해 제 일처럼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결하지 못한 일보다는 해결해낸 일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이  쌓이니까 현직 의원들이 손을 못대는 일도 뜻밖에 쉽게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여성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뿌리 깊은 편견을 확인했을 뿐이란 주장도 합니다. 만약 여당 후보가 남자였으면 결과가 달라졌으리라는 것이지요
 그건 여당이 궁지에 몰려서 하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지역 유권자들을 모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당 후보가 여성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이 지역의 특수한 정서, 이른바 대구 . 경북 정서가 많이 작용했다고들 얘기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지역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대구 . 경북 정서란 말을 쓰는 데 반대합니다. 이 지역 유권자들은 김영삼 정부의 업적에 대해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대선 때 이 지역 유권자들의 64%가 김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지금은 아마 5%도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 정부가 이 지역 정치인들을 많이 탄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동안 너무도 어이없이 실책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지역의 특수한 감정으로 몰아붙인다면 곤란하지요

이번 선거는 개정 선거법 아래서 처음 치러 관심을 모았습니다.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졌다고 보십니까?
 선거 막판에 일부 후보가 구태를 보이긴 했지만 과거에 비할 수 없이 공명 선거였다고 봅니다. 쉽지 않았을 텐데도 여당인 민자당과 정부가 깨끗한 선거를 치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점 높이 평가합니다. 정부와 여당의 의지가 변하지 않는다면 금권과 관권선거는 이 땅에서 사라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선거 때마다 언론의 편파보도가 문제가 되곤 했었는데요.
 언론에 섭섭한 점이 많습니다. 3등도 못할 거라고 보도한 것은 몰라서 그랬다고 칩시다. 그러나 지역 텔레비전들이 제 유세 장면을 눈에 띄게 축소 보도한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부와 정당, 그리고 유권자가 모두 변했는데 언론만은 변하지 않았어요.

선거 비용은 얼마나 쓰셨습니까?
 정확하게 계산해보지는 않았지만 4천만원 정도 쓴 것 같습니다. 상당 부분 유급 운동원들의 인건비로 들어갔습니다. 중앙당과 후원회에서 많이 지원해 줬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이제는 유능한 인재가 돈이 없어 출마못하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역 의원이나 정치 지망생 들이 새 선거법 아래서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접 치러보니 어떻던가요?
 이 선거법 아래서는 지역 봉사활동을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가로 승패가 갈린다고 봅니다.과거처럼 선거를 3개월 정도 남겨놓고 중앙당 공천을 받고 내려와 운동하면 백이면 백 다 떨어지게 돼있습니다. 자우너봉사자들을 주축으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는데, 지역에 기반이 없는 사람이 어디서 자원봉사자를 구하겠습니까. 이제는 중앙에서 장관했다. 대기업 사주를 했다 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고향에 내려와 국회의원 배지를 달던 시대는 지나 갔다고 봅니다.

이번 선거 기간에 민주당 이기택 대표가 이곳에서 상주하다시피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됐습니까?
 무엇보다도 당원들의 사기에 보탬이 됐습니다. 대표가 먼저 발벗고 뛰니까 저나 당원들은 절로 신명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이대표에 대한 인기가 의외로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지역 유권자들은, 이곳 출신이며 그동안 선명한 정치 역정을 걸어온 이대표를 새 시대 정치 지도자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권 정당으로 발돋움하려는 민주당으로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대표께 감사드립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로 불모지였던 영남에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지방자치 선거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계속 선전할 수 있을까요?
 두고보시면 놀라운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동안 민주당은 이 지역에선 안된다고 지레 짐작하고 적극적으로 인재를 키우고 선거에 도전하는 데 소홀히 해온 게 사실입니다. 이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유능한 인재들도 더 이상 민주당 문을 두드리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다음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두기 위해 인재를 확보하는 데 헌신할 생각입니다.

30여년 동안 다섯 차례 국회의원에 도전하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무슨 투지 대회 같은 게 있다면 어렵지 않게 1등할 것으로 자신합니다. 특히 지난 10년 간은 견디기 어려운 세월이었습니다. 집사람은 이러다간 아이들 공부도 못시키고 굶어죽겠다며 서울로 짐 싸들고 올라가 보험회사 영업소에 취직해 혼자 생계를 꾸려 나갔습니다. 저는 이곳 사무실 한켠에 침대와 전기담요를 갖다놓고 홀아비 생활을 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번도 가족이 한 데 모여 단란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애들이 돼지고기 삼겹살을 좋아하는데 애비가 돼서 한번도 실컷 먹여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하셨을 것 같은데요.
믿기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컵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한번도 ‘이게 내가 갈 길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한 것은 아니고, 그저 지역민을 위해 뛰는 게 좋았습니다.

부인께서 개인 연설회 때 마이크만 잡으시면 눈물을 흘려 화재가 되었는데요.
 지난 세월 고생했던 게 생각나서 그랬을 겁니다. 말도 못하고 눈물부터 쏟더군요. 집사람의 한이 많은 유권자의마음을 움직였다고 봅니다. 계속 코빼기도 보기 힘든 영점짜리 아빠가 될 게 뻔해요. 하지만 이제 집사람이나 아이들이 최소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면 기쁩니다.

국회에 가시면 어떤 일을 하실 겁니까?
 많은 선배 의원들의 도움을 받아야겠지요.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을 하겠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특히 저와 같이 오랫동안 애환을 나누고 제게 표를 몰아준 밑바닥 서민들의 마음을 언제나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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