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고 욕먹는 사람들
  • 이흥환 차장대우 ()
  • 승인 1994.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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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42개, 목침대 84개, 침낭 84개, 김제 동진농지개량조합 직원들이 비상 급수작전에 동원하는  ‘작전 장비들’이다. 비상 급수대책은 해마다 되풀이된다. 이름하여 183작전이다. 4월1일∼9월30일 1백83일 동안 농조 직원 총 2백86명은 들판으로 나가 24시간 물을 지킨다. 작전장비라 함은 2인1조 노숙을 위한 도구이다. 야근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노숙지는 대개 수로 옆 논두렁이거나 저수지 가장자리의 습지이다. 모기장을 쳐놓은 천막 속에 들어가 단잠을 청할 수도 없다.

몰래 물꼬를 트기 위해 ‘비밀 작전’을 펴는 주민들을 감시하려면 뜬눈으로 밤을 새기가 일쑤다. 낙이 있다면 손전등을 비춰가며 집사람이 밤참을 챙겨 찾아올 때이다.

 농조 직원끼리는 서로를 ‘밤에 풀밭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이라 부르곤 한다.  “여름 달밤에 논두렁을 두리번거리면서 다녀보시오. 영락없이 정신 나간 놈이지.” 동진농조 죽산출장소 김학봉씨(56)의 직함은 기관기수다. 올 가뭄에는 7월 들어서만 18일 째 노숙을 하고 있다. 농조 일을 한지도 20년째다.

 김제군 진봉면 가실리 가실관리소 사무실. 영화 촬영 세트장 같은 분위기다. 곧 쓰러질 듯한 목조 양철 지붕 한켠에 수 전반(수로 자동 제어기)만 한 대 덜렁 놓여 있다. 뒤켠 부엌에는 연탄이 45장. 조리 기구라고는 간이 곤로 하나가 전부다. 20년대에 지붕을 얹은 마당의 우물과 끈 달린 두레박은 차라리 서정적이다.

 한 농조 직원의 푸념이다.“농협은 영리사업이나 하지, 우리는 수세 구걸이나 하고 다니는 신세다. 봉사는 할 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는다. ”수세는 반(10a)당 쌀 5㎏씩 걷는다. 한 필지 (1천2백평)당 2만원을 부과하는 농조 조합비를 걷으러 다니기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조합비 내기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농민들이 돈 내기를 거부하지는 못 하고 쌓아놓고 ‘조합비 갖다놨으니 가져가라’고 할 때는 아예 죽을 맛이다.

 농조 사람들은 농업용수에 관한 한 ‘반귀신’이 된 사람들이다. 간척지 논은 가물 경우 소금기가 많이 올라오는 탓에 물이 더 필요하다는 것 하며, 적당히 가뭄이 들어야 나락이 맣이 쏟아지고 그것을 일컬어‘쌀가뭄’이라 하고, 물을 1초당 t씩 수로에 흘릴 경우 지금쯤 어느 부락 누구네 논에까지 급수가 되었으리라는 것쯤은 훤히 꿰고 있다.

 농조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우량 농지를 잘 보존해서 전천후 식량 기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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