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사추적 따돌린 진한 동포애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4.08.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국 거주 이성우씨 위험 무릅쓰고 은신처 제공...일부 교민도 ‘십시일반’

동남아시아 마약왕국 쿤사지역을 탈출해 방콕에 숨어 지내면서 고국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6개월간 망명을 호소해온 문충일씨 일가족 4명이 마침내 안전하게 귀국길에 올랐다. 이는 동포애에 입각한 민간 차원의 구명운동과 정부의 협조가 결합해 성공한 사례라 할 만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태국 현지의 몇몇 교민이 신변위험을 무릅쓰고 문씨 일가족을 보호해온 것이 끝까지 쿤사측으로부터 문충일씨 가족을 지켜내는 데 중요한 몫을 했다.

 그동안 ≪시사저널≫ <한국일보> <국민일보> KBS MBC 기독교방송 등 국내 언론은 쿤사지역을 탈출한 문충일씨 일가족이 태국 남부의 한 소도시에 숨어 지낸다고 보도해 왔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방콕 구명 관련 보도를 통해 한결같이 방콕이 아닌 제3의 장소를 강조한 것은, 문씨 가족과 은신처를 제공자의 신변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비밀 지키며 ‘고통 분담’
 지난 2월2일 태국 . 미얀마 접경 지역인 쿤사의 한 거점 마을 메수야를 탈출해 방콕으로 숨어든 문씨 일가족이 처음 찾아간 사람은 방콕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 이성우씨(46 . 여행업)였다. 이씨는 92년 쿤사지역 인근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요청을 받고 국경지역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한국어를 하는 한 가족을 만났고, 명함을 건넨 적이 있었다고 한다. 탈출한 문씨 가족은 이 명함 한 장을 들고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문충일씨 일가족이 귀국하는 순간까지 숨겨주고 보호해온 이성우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렇게 말한다.

 “당시 태국 생활을 정리하고 2월 말에 귀국할 일정을 잡고 마무리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문충일씨로부터 느닷없이 탈출하여 공항에 있으니 살려달라는 전화가 왔다. 만나서 사정 얘기를 들어보니 당장 죽게 될 동포 가족4명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사관 얘기를 들어보니 이들이 단기간 내에 쿤사측의 생명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의 귀국 일정을 미루고 쿤사 . 태국 경찰 . 이민국 등에서 눈치채기 어려운 곳을 물색해 은신시켰다.”

 문충일씨 일가족은 이후 6개월 동안 이 은신처에서 숨어 지냈다. 이성우씨는 매일 안부 확인 전화를 하면서 수시로 은신처를 방문해 쌀 . 옷가지 . 반찬 . 등 생계 용품을 사다 날랐다. 처음에는 이 일을 혼자 떠맡기가 벅차 교민회에 얘기할까 했지만 사안의 성격상 태국 내에서 공개되면 예기치 못한 위험이 닥칠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의 철친한 일부 교민들이 이씨의 사정을 알고 ‘고통 분담’을 자청하고 나섰다. 장성한 아들과 사춘기로 접어든 딸이 포함된 문충일씨 일가족이 아무리 절박하게 쫒기는 신세라고는 하지만 5평짜리 방에서 매일 밤낮 기약 없이 숨어 지내야 하는 처지를 두고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은신 1개월 뒤쯤인 3월 초 문씨의 딸 문미령양(13)은 방콕의 한 교민 집에 들어가 ‘양딸’ 행세를 하며 지낼 수 있었다. 아들 문 철군(20) 역시 같은 뜻을 가진 한 한국인의 도움으로 시내 한국인 식당에서 6개월간 일을 거들며 제한적인 ‘자유’를 누렸다. 현지 교민 일부의 진한 동포애가 문씨 가족에 대한 쿤사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문씨 가족을 보호해온 이성우씨는 예상과 달리 초기에 정부의 구명 움직임이 지지부진 하자 방콕과 서울을 오가며 한국 정부가 이들을 살려야 한다고 뛰어다녔다. 4월 말에는 ≪시사저널≫을 찾아 구명여론 확산을 호소했고, 태국 현지에 들어가서는 한때 문씨 가족의 밀항을 준비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와 유엔‘중개자’노릇도
 방콕 주재 한국대사관은 이같은 이성우씨의 역할을 인정해 5월 이후 이씨를 한국 정부와 유엔 사이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인터뷰에 문씨 가족을 데리고 다닌 이성우씨는, 지난 7월8일 유엔이 문씨 가족에게 난민 판정을 내린 사실을 알았을 때 “나도 이제는 귀국 할 수 있게 되었구나”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이씨는 문씨 일가족에게 한국행 항공권이 나온 지난 8월1일, 문씨 가족을 그동안 은신시켜온 아파트에서 자기 아파트에서 마주한 문충일씨는 곁에 있던 이성우씨에게 “귀국해서는 우리가 모실테니 같이 살아야지요”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이씨는 “지금까지는 사심 없이 문선생님 가족을 도왔지만 국내에서까지 같이 살자고 하면 사심을 부려 괴롭히겠습니다”라고 답변해 방안에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