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교포는 ‘귀화’가 두렵지 않다
  • 도쿄 . 오사카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4.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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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대들 정부 무관심 . 정체성 혼돈 속 국적포기 늘어 ...‘민족 자산’끌어안는 교민 정책 절실

냉전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38선은 한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과 북이 서로 총을 겨누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던 세월 동안 세계로 뻗어나간 해외 동포사회에도 본국의 경계선은 매우 엄격하게 적용됐다. 해외동포들 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심리적 38선’이 뚜렷하게 그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냉전적 대립 구도가 교포3세,4세로 내려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일본 오사카 사는 유혜자씨(여 . 28)은 부모와 형제가 모두 조총련도 민단도 아닌 새로운 청년조직 재일한국청년연합에서 활동한다. 유씨의 부모와 오빠들은 그런 점을 마뜩찮게 여긴다. 그렇다고 뜯어말리는 정도는 아니다. “그 문제로 식구들과 다투지는 않아요. 눈가 그렇다는 거죠. 나 같은 재일 동포 3세에게 민단이나 조총련은 별 의미가 없어요. 그건 아버지 세대에나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최소한 교포 3세,4세 젊은이들은 남북한의 정치적 대결에 선동당하지 않는다.

젊은 교포들에게 반공 . 친공 구분 무의미

 게이오 대학 대학원 다니는 김진규씨는 김일성 사망 이후 부모에게 “할아버지 몰래 가회의를 열어달라”고 주문했다. 그 자리에서 김씨는 부모를 설득해서 할아버지만 빼놓고 온 집안이 조총련을 탈퇴하기로 합의했다. 할아버지가 조총련을 탈퇴할 리 없을뿐더러 가족들의 의사 표명 또한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씨가 조총련에 대한 반사 심리로 민단을 택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민단이나 조총련 따위 구분이 무의미하다.

 이처럼 최근 재일교포 사회에서는 3세, 4세 젊은이들이 조총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반면, 민단에 대해서는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 민단을 한국 정부의 비호를 받는 몇몇 사람의 조직으로 알고 있는 분위기에서 “활동을 안했으니 탈퇴하고 말 것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와 같이 2세 이하로 내려갈수록 조국에 대한 교포 사회의 의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이나 북한 정부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요즘 재일교포 청년들 사이에 주된 토로거리는 ‘귀화 문제’이다. 광복 이후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책 기조는 ‘억압해서 동화시키고 안되면 추방하는’ 쪽이었다. 그런 정책 밑에서 추방당하지 않으면서 동화하지도 않는 삶을 살아가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인간적인 멸시도 견디기 힘들지만, 우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할 수 없기 때문에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그래서 재일교포 상당수가 일찌감치 장사나 도박업 . 조직폭력 같은 일에 손을 댔다. 그러나 그것은 1세나 2세들얘기다. 3세, 4세 젊은이들은 다르다. 그들 중 약 90%는 일본식으로 교육받고 일본인처럼 사고한다. 거기에다 반공 또는 친공 이데올로기를 들이밀어 봐야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한 정부는 지금껏 그래 왔다.

경실련, 일본서 교포청년대회로 ‘물꼬’

 85년 이후 재일교포 숫자는 해마다 5천명 이상씩 줄어왔다. 특히 92년부터는 그 규모가 7천명을 넘어섰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스스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취득하거나 , 일본인과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에 귀화하기 때문이다. 최근 재일교포 사회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교포 젊은이들의 70∼80%가 일본인과 결혼한는 데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고 응답했다. 재일교포 제1호 변호사 김경득씨는 “이런 추세로 간다면 일본에서 한국교포로 하여금 민족적 자긍심을 갖도록 도와주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다”라고 지적했다. 어떤 여론조사에서는 재일교포의 약90%가 일본 이름으로 일본인 행세를 하고 다닌다고 나왔다.

 대다수 교포 문제 전문가들에게 한국의 교민정책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한결같이 “기민(棄民)정책이다”라고 대답한다. ‘그 나라에 갔으면 그 나라 사람이 되라’는 식의 기민정책이란 얘기다. 물론 피부 빛깔이 같은 일본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일본인으로 귀화하면 그동안 누릴수 없었던 법적지위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니다. 그들은 늘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정체성 혼돈에 시달린다.

 특히 피부 빛깔이 다른 나라에 사는 교포들은 그러 현상이 더욱 심각하다. 독일에 거주하는 이혜진씨(23 . 여)는 “고등학생 때까지는 독일 친구만 사귀다 보니까 내가 한국인인지 잊고 지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하면서 한국에서 유학온 학생들로부터 ‘는 독일어 잘해서 좋겠다’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되는데, 그때부터 자기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회사에서도 한국인이니까 한국어를 잘 하겠거니 하고 뽑아준다. 그러나 교포 청년들은 그때부터 한국어를 못 배운 것을 후회하고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한번쯤은 자기 정체성 문제에 시달렸을 각국의 교포 청년들과 교포사회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실련)이 8월2일∼9일 일본 도쿄와오사카에서 개최한 ‘세계 우리민족 청년대회’ 행사에 미국 . 중국 . 일본 . 독립국가연합 . 독일 . 캐나다 . 브라질 . 스위스 등에 흩어져 살던 교포 2백여 명이 참가한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한민족  공동체 가능성을 탐색하고, ‘정책이랄 것도 없는’ 한국 정부의 교민 정책을 성토했다. 이 행사에 참여한 각 나라 교포 청년들의 발언은, 백년도 않돼 5백만 해외동포를 배출해낸 민족이민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가령 독일 교포 청년들은 나이가 대부분 18세 전후이며 광부 출신 아버지와 간호원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60년대에 외화를 벌러 독일로 떠났던 광부와 간호원 들이 그곳에 정착하려고 1∼2년 사이에 집중력으로 결혼한 결과이다. 스위스 참가자들은 백% 입양아 출신이고, 브라질 참가자들은 대부분 70년대 초반에 이민가서 보따리 장사로 성장한 교포의 2세들이다. 미국참가자들은 로스엔젤레스 흑인 폭동을 지켜보며 교포 청년주의 주력 부대로 성장한 젊은이들이다. 독립국가연합 참가자들은 옛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각 공화국에 흩어져 사는 한인 2세와 3세들이다.

“민족적 일체감 북돋워주어야”
이 행사에 참여한 교포들 중 상당수는 그 사회에서 판사 . 변호사 . 의사 . 엔지니어 . 대학교수 . 교사  등 전문 직종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곳에서 어엿하게 삶의 둥지를 튼 것이다. 그러나 조국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각기 다르다. 해외동포들은 ?동포와의 접촉을 기피하면서까지 그 사회에 완전히 동화하려는 사람 ? 이질감 때문에 한국의 풍습과 문화와 언어를 잃지 않으면서 필요한 만큼 그 사회에 편입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 ?결코 거주국 사회에 끼여들지 않고 철저하게 한국인끼리만 어울리려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외동포들은 두 개의 문화, 두 개의 고향 사이에서 방황한다. 뉴욕에 사는 한 교포는 “고향 생각이 나면 서울에서는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뉴욕에서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산다”라고 말한다.

 경실련은 이러한 틈새에서 해외 시민운동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경실련 경제정의 여구소 유재현 소장은 “나라마다 교포들의 관심사가 다르고 조국에 대한 요구 사항도 다르지만, 그들은 한국의 경제 성장이나 통일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경실련이 사치스럽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해외동포 사회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우선 민족적 일체감을 형성하는 것이 급선무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물론 어느 누구도 ‘민족의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교포 사회를 아우르는 데 무관심했기 때문에 경실련이 나서겠다는 뜻이다.  경실련은 이미 각 나라에서 조직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계획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도 없지 않다. 사실상 한국 정부가 각나라 교포사회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는 유일한 통로는 이름뿐인 평통 자문위원 감투를 주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다. 몇 않되는 감투를 쓰려고 교포사회 지도자들끼리 서로를 헐뜯으며 내분을 일삼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의 선심이 오히려 교포사회에 분열을 조장한 셈이다. 이러한 선례로 볼 때, 경실련의 해외 조직 건설이 자칫하면 또 다른 분란 요소를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사는 김중순씨(40)는 “이제는 과거 미국 교포들이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본국을 지향하던 행태를 되풀이 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포 2세, 3세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서 민족적인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교포 청년들의 이러한 우려는 사실 한국 정부의 형편없는 교민정책에 대한 불신에서 싹텄다고 해도 관언은 아니다. 5백만 해외동포가 유태인이나 화교처럼 실질적으로 민족을 뒷받침하는 세력으로 성장하려면, 한국 정부가 교포 정책을 전면적으로 다시 세우고 민간운동도 교포 사회에 접근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단든 것이다.

12개 부처에 업무 분산...“교민청 신설하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민 정책을 펴는 정부가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현재 교민 정책은 외무부 재외국민영사국에서 관장하고 있는데, 이 부서는 외무부 직원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으로 꼽힌다. 외무부 직원들 사이에는 이 부서로 발령을 받으면 “외교관에서 동사무소 서기로 전략했다”라고 푸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적극적인 행정을 펴지 않는다. 정부의행정 대상도 해외동포 일반이 아니라 재외국민,즉 한국 국적을 가진 일시적 체류자에 국한되어 있다. 교민 업무도 문화 체육부 . 교육부 . 법무부 등 12개 부처에 분산되어 있고 예산도 나눠서 집행한다. 교민 처지에서는 ‘하나의 정부’와 상대하는 게 아니라 사안에 따라12개 행정 부처와 얼굴을 맞대야 하는 실정이다.

 교민청을 신설하라는 주장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대외적으로 행정부는 공식적인 하나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해외동포들 스스로가 “우리는 한국이 내다버린 사람들”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현실이 말해주듯이 현재 정부는 민족의 자산으로 활용이 가능한 5백만 해외동포의 역량을 통째로 ‘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91년 미국 정부 예산안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원조액이 31억달러로 계상되어 있었다. 이는 전세계 1백54개국에 대한 해외원조 총액의 31%를 차지하는 액수다. 이거이 바로 미국 사회 요로에서 활약하는 유태인의 역량이다. 이 시점에서 한번 음미해볼 만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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