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는‘수령’의 수렁
  • 임의준 (북한경제연구소 연구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4.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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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개방은 성공할 것인가

김정일 체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최악의경제난은 체제 자체를 돌이킬 수 없는 벼랑으로 몰고갈 수도 있어 다른 어떤 과제보단도 중요시되고 있다.

 북한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외회벌이 및 외자 도입 정책을 시도할 것인데. 이는 대외무역 및 나진 . 선봉 자유 경제무역지대 투자 유치 등 합법적인 방법과 무기 . 마약 등 밀무역 방식을 통한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대외 개방의 시초는 84년 합영법 제정 이후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85년부터 외국투자자가 시작되어 합영 제1호로서 프랑스 기업과 양강도 호텔 착공이 이루어졌다. 과거 차관 등의 행태로 들어온 외채의 상환 부담이 커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생각하게 된 것이고, 이것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이 법을 제정한 것이다. 그러나 서방 업계는 70년 이후부터 연체된 차관 및 미결제 무역대금 등 외채 미상환과 정치적 불안정을 이유로 북한 투자를 주저해 실질적인 투자는 일부 조총련계 기업 외에는 전혀 없었다.

 옛 소련 및 동유럽의 붕괴에 따라 경제난이 가속된 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성과가 두드러진 중국의 개혁 . 개방 정책 영향을 받아 보다 확대된 대외 개방정책으로 나타난 것이  91년 12우러의 나진 . 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설치였다.

 나진 . 선봉 . 특구 개발 구상은 중국 광동성 심천 경제특구의 초기 개발 구상을 북한 실정에 맞게 재구성한 것인데, 특히 중국의 경제 특구 운영 사례 중 개방이 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극소화하는 방안을 집중 모방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외국자본 유치에 성패 달려
 북한은 이 지대 개발의 성패는 외국자본 유치에 달려 있음을 인식하고, 초기에는 외자 유치를 위해 주변국 중 가장 먼저 일본 기업을 초청하거나 방문하는 형태로 활동하였다. 그 결과 의류 임가공 등 일부 경공업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으나, 광산물 개발과 첨단산업 분양에서는 투자이익 회수가 지연되었고, 정치적 요인으로 지속적인 투자가 어려워 현재는 조총련계 기업을 제외한 순수 일본계 기업의 투자는 답보 상태이다.

 지금은 두만강 개발 다국간 협력 사업과 관련하여 토지 .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개발 자금을 확보하여 나진 . 선봉 지대의 도로 . 철도 . 항만 등 사회 하부구조 정비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소요 자금이 막대하여 중국 길림성 및 연길 지방 정부 차원의 재원으로는  더 이상 사업 진척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외 교역을 통한 외화 확보도 과거 미상환 채무 등 신용 문제로 인하여 서방국과 기본적인 거래만 유지하고 있는상황이다. 중국 . 러시아 . 동유럽 등 옛 사회주의권, 비동맹국, 반미 노선을 취하고 있는 중동 지역 국가들은 수출 시장 혹은 원료 공급지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낮은 기술 수준 때문에 수출상품 개발이 안돼 최근에는 자체생산 상품이 아닌 제3국 상품을 중계 혹은 재수출하는 형태의 무역을 행하거나, 제3국의 원료를 가공하여 재수출하는 형태로 벌어들인 외화로 원유 . 곡물 등 기초 생존물자를 사들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무역 상품은 정식 통관을 거치지 않고 밀거랠되는 거도 상당한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품으로는 무기 등 규제 품목뿐만 아니라, 자동차 등 일반 묵역 상품에 이르기까지 달러벌이가 가능한 물건과 방식은 모두 동원하고 있는실정이다. 최근에는 해외 인력 수출까지 활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주로 건설 분야에서 중동 . 동남아 지역에 나가고 있다.

 현재 북한의 외자 유치 실적으로 보아 제한적인 개방 정책은 실패했음이 분명하다. 실패 요인은 무엇인가. 우선 북한의 사회주의 통제경제 체제유지 및 핵개발을 들 수 있다.  이를 돔더 세부적으로 접근하여 중국의 개혁 . 개방 정책 성공 요인과 비교하면 훨씬 명료해질 것이다.

북한엔 등소평 같은 실용주의자 없어
 우선 북한 최고 지도층 중국의 개혁 . 개방을 이끈 등소평과 같은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시용주의자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김일성 부자가 수행했어야 하나 그렇지를 못했다. 둘째, 중국의 개혁 . 개방 정책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해 왔던 홍콩 . 대만 및 동남아 화교들의 개방자금 지원과 같은 후원자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조총련의 투자 및 송금이 있기는 하나 역부족인 상황이다.

 셋째, 개혁 . 개방 정책 수행에서 중국처럼 철저한 정 . 경 분리 정책이 확고하게 수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체제를 고수했기 때문에 지방 정부에 자율권을 부여하거나 경쟁 유인책을 마련하지 않아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밖에 사회 하부구조 . 편의시설 . 용수 . 전력 등이 우선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데도 최고 결정권자의 의지에 비해 이들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점도 있다.

 현 단계에서 북한 시장에 접근하는 서방 및 주변국의 시각은 무엇이며, 북한이 최초로 대외에 개방한 나진 . 선봉 . 자유경제무역지대 진출 움직임은 어떠한가. 크게 상반된 두가지 시각이 보인다. 우선 핵 문제를 둘러싼 정치 . 군사적 긴장으로 이 지역 투자 안정성이 극히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체제 개혁 없는 개방은 외자 유치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하여 현재로서는 투자 진출 타당성 조사 차원에 머무르겠다는 시각이다. 이와 상반된 입장은, 비록 지금은 주변 환경이 긴장되게 조성되고 있으나 현재 진행중인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개발계획 등과 같이 국제 기구가 연계된 다자간 협력 방식을 통해서라도 이 지역에 미리 진출하여 앞으로 고성장이 예견되는 동북아의 성장 거점 또는 중계수송로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밖에 양자간 협력 방식을 통해서라도 이 지역에서 선점 이익을 챙기겠다는 국가도 있으나 정치 . 외교적 부담으로 인하여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특구에 진출한 각국 현황 및 시각을 정리해 본다. 우선 중국으로서는 개혁 . 개방 정책 추진 및 동북 3성 등 내륙 지역 개발을 통해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대안 도시인 나진 . 선봉 지대의 성공적인 개발이 필요하다. 이미 연해 지역에서 경제특구를 운영해 성공한 경험이 있는 중국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내륙 지역인 동북 3성지역 개발과 이를 위해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동해 출해권 확보를 위해, 유엔개발계획이 주관하는 다국간 협력 사업에 참여하면서 러시아 .북한 . 일본 등 인접 지역과 쌍무적으로 철도 . 항만 . 등을 개발 . 정비하는 일에 착수하고 있다.

 이는 북한과의 협력에서 도로 및 항만 장기 사용권의 대가로 사회하부구조 정비 사업 및 그에 필요한 개발 자금 제공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중앙 정부가 아닌 길림성 . 연변 자치주가 북한의 나진 . 청진항 확장 개발 및 청진항 연결 고속도로 사업 등에 주력하고 있으나, 개발자금 부족으로 사업이 진척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대만 . 홍콩 등 화교 자본이 중국과의 합작 형태로 투자 진출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진 점이다.  이 두 나라는 중국의 심천 . 주해 등에서 사회주의 개발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북한에 진출하려 한다는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 중국과 합작을 통한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이유는, 북한이 가진 현실적 불안정 요인을 극소화하기 위한 안전판 역할 및 위험 분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본 기업의 북한 투자 시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나진 . 선봉 지대를 자주방문하고 돌아온 일본 기업들의 평가는 우호 적이다. 우선 북한의 지리적 이점에 따른 항구 사용, 값싼 노동력, 중국 동북 지방의 풍부한 자원 수입 단축로 확보, 러시아 극동 및 중국 동북지역에의 소비시장 확보 등이 크게 고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개방 의지가 ‘열쇠’
 그러나 당장 진출하는 데 걸림돌로서 핵문제 외에도 일 . 북한 미수교, 약 8백억엔에 달하는 과거 채무 상환 문제가 걸려 있다. 따라서 일본으로서는 당분간 나진 . 선봉 지대보다는 훈춘 지대 등 중국 지역 진출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나진 . 선봉지대 진출은 한국 기업들이 먼저 들어가 일정한 성과를 올려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성이 보장된 뒤에 들어가 투자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중국 경제특구에 진출할 때에도 화교 자본이 먼저 들어가 일정한 이익을 낸 후에 본격적으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 국가 중 북한에 대한 공동 규제에 비교적 독자적인 입장을 표명해온 독일은, 북한이 과거 동독 지역 친북한 인사 및 북한과 교역하는 기업을 전면에 내세워 기업인을 대상으로 집요하게 나진 . 선봉 지대 투자 유치를 호소하고 있지만 투자 실적이 미미 하다. 다만 독일 기업도 북한의 저임금을 겨냥해 의류 . 봉제 등 경공업 분야 투자 진출을 통해 한국 등 극동권 시장에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기업의 북한 진출 방식은 현재 중국 . 베트남에서와 같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핵사찰 문제에서 미국에 크게 양보할 경우 미국은 반대 급부로 경제 지원에 적극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 기업은 주로 중국 .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에 진출한 경험이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다. 과거 페데럴 익스프레스, 유나이티드 파셀 서비스 등 국제 항공 화물 특송업체, AT& T와 같은 통신 기업들은 미국의 대북 금수 조처로 북한 시장이 일본 . 한국 . 유럽 기업들에게 선점될 우려가 있다며 미국 상무부에 금수 해제를 요구한 적도 있다.

 앞으로 미국은 관련국의 북한 시장 선점을 막고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동북아 시장을 겨냥해 미 . 북한 관계가 정상화하면 본격적으로 진출하리라 예상된다.

 결국 북한 경제의 회생 여부는 김정일의 개방 의지에 달려 있다. 김정일이 조직 . 선전 활동 등 정치적인 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경제 분야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거나 활동한 것은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권력서열 2위로 떠올라 후계 지위가 공식화한 이후 81∼82년 당 사업의 70% 이상이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고 북한이 언급한 적이 있어, 경제 분야에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때에도 경제 부분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두어 권력 승계 기반 다지기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0년대 들어 북한 경제가 침체 현상을 보인 것이나, 경체 측근들이 군이나 공안 참모에 비해 영향력이 다소 미약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80년 공식으로 후계 지휘를 획득한 이후 수준급 경제 논문을 수십 편 쓰긴 했으나 이는 경제 측근들이 대신 써준 것이었다.

 다만 주목되는 것은 김정일이 80년대 초반당 중앙휘 정치국 위원 겸 비서였던 김 환의 제의에 따리 양강도 김정숙군에 중국식 특구를 설치할 것을 구상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협동농장을 해체하고 농민들에게 개인 분업을 장려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이는 김일성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알려졌는데, 김 환의 아이디어 제공에 의한 시도이기는 하나 등소평의 개방정책 성공에 김정일이 어느 정도 공감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후 한동안 김정일은 경제 분야에서 거의 활동하지 않아다. 다시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으로,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북한 경제의 계속된 침체에 따른 위기감 때문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때에도 조직 지도부를 통해 핵심 경제 관료들의 임면은 지접 하되 경제 분야 정책 수행과 관련해서는 상당한 부분을 측근들에게 전권 위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은 경제 전문 관료들이 다소 자신을 비판한다든지 정책 수행상에 잘못이 있다 해도 숙청으로 몰고가지 않았으며, 해임했다가도 다시 기용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대표적 사례가 86년 12월 당비서이면서 정무원 국가계획위원회에 위원장으로 파견되었던 박남기이다. 그는 파견 당시 김정일의 국가 예산 남발에 강한 불만을 토로해 재임 1년도 못된 87년 10월 전격 해임되었다가 계획담당 당비서로 재기용된 적이 있다. 김정일의 이러한 성향 및 전례로 보아 최근에 좌천된 김달현 . 연형묵 등은 가까운 시일 안에 재기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최근에 알려진 바로는 경제 측근들의 국내 전략산업 배치 및 외자 유치 실적이 부진해 김정일이 직접 경제 분야를 챙기고 있다. 특히 김정일이 직접 경제 분야에서 직접 수많은 지시를 내려 새로운 사업을 추진했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 관련하여 군인과 주민의 결합 강화에 의한 건설 촉진을 목적으로 ‘군민일치운동’을 펴나가면서 그 성과에 대해 감사를 보내는 운동을 주도했다. 이는 김정일의 후계체제 강화를 위한 정치적 시도로 보인다.

임의준 (북한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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