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경제 넘보는 소련
  • 안 (연세대교수·국제정치학) ()
  • 승인 199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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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자' 미국과 의견일치

한 · 소관계 급진전하면 주한미군 감군도 앞당겨질 듯
 
1990년 6월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노·고르바초프회담이 열린 뒤에 워싱턴에서 열린 노·부시회담이 한·소관계의 정상화를 지지한 것은 동아시아에서 미·일·중·소간에 느슨한 4강체제가 형성되고 있으며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데탕트가 한반도에도 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분명히 미·소 양국은 한반도문제를 자국간의 세력다툼에서 분리하여 취급하기 시작했으니 이것은 결국 ‘교차승인??과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은 동아시아에서 소외를 극복하고 태평양 열강의 하나로서 역동적인 국제경제분업에 참여하기 위해서 한국과 교차승인 및 경제협력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이 지역에서 균형자로서 일본과의 유대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인 동반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미군 일부를 감축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안정을 보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소련은 그동안 동아시아에서 군사력만을 보강하여 일본 및 기타 국가들을 위협해왔는데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뒤 이것을 지양하여 경제협력을 추구해왔고 이를 위해서 한국과의 교류 및 협력을 모색하게 되었다.

 1946년 당시 미·소공동위원회 소련측 대표 스티코프장군이 한반도가 對蘇공격기지가 되는 것을 막고 여기에 우호적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소련의 이익이라고 한 점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 소련이 미국과 군축회담을 성공시키고 냉전을 종언을 선언한 이상 고르바초프는 한반도를 對美 세력다툼에서 분리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한국과의 관계를 對북한 동맹관계와도 분리하게끔 되었다.

 소련이 이렇게 ‘신사고??를 실천하는 이유는 86년 블라디보스토크 연설에서 고르바초프가 말한 바와 같이 소련도 태평양세력으로서 행동하며 일본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동아시아 경제권에 가담하기 위해서이다. 1988년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서에서 고르바초프는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과 관계개선을 할 것을 다짐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는 먼저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했고 이를 위해 1989년에 중국을 방문, 등소평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데 북방도서문제의 미해결로 인하여 이것은 쉽게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한편 소련이 한국과의 수교까지 고려하고 있는 데는 일본의 태도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책략도 숨어 있다. 한국으로 하여금 시베리아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해놓고, 이것을 목격한 일본의 對蘇정책을 더욱 신축성있게 수정하도록 할 것을 모스크바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내년 4월 도쿄를 방문하기에 앞서 한국의 대통령을 만나 국교수립과 경제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일본에 대한 간접적인 압력을 주기 위한 불균형행동으로 볼 수 있다.

 소련의 한국 접근은 북한에 대한 지렛대로도 볼 수 있다. 동독의 전 서기장 호네커에게 자기 길을 가라고 하는 이른바 ‘시내트라 독트린??을 적용하여 공산정권의 붕괴와 독일통일의 길을 열어준 고르바초프가 북한에도 개혁과 개방의 길을 종용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루마니아 사태와 같은 일이 북한에서 일어난다면 북한과 우호동맹조약을 맺고 있는 소련으로서는 큰 딜레마를 면할 길이 없다. 따라서 소련의 언론은 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보도하고 있으며 고르바초프는 노대우대통령과의 극적인 만남을 실현하여 북한도 변하게끔 신선한 자극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데탕트가 정착하는 가운데 국내에서 재정 및 무역적자에 당면한 미국은 종래의 패권국이 아니고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일본·한국 및 기타 국가들과의 경제적 동반관계를 중시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소련세력을 봉쇄하기보다는 ‘균형자, 정직한 브로커 및 안보의 최종 보장자??의 역할을 맡는 것을 더욱 중요시한다고 월포위츠 미 국방차관이 말한바 있다. 즉 이 지역에서 중?소, 일?소, 일?중, 또는 남북한간의 중재역할을 맡아 어느 한쪽이 패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고 나아가서 지역분쟁을 억지하는 일은 미국 이외에 다른 강국이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소관계가 예상대로 급진전된다면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주한미군 감군을 앞당겨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물론 남북한관계의 진전에도 달려 있다.

 안보와 경제에 있어서 일본의 힘이 지나치게 팽창하여 미·일안보체제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정한 수준의 전방배치는 유지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사실 여타 국가들도 일본·중국 및 소련에 비하여 미국을 덜 두려워하고 있고 한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재무장과 패권행사를 제약하기 위해서 미국을 동아시아에 묶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안보에 관한 한 미국이 이와같이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경제에 관한 한 미국 자신이 일본의 협력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역시 제7대 교역국 및 제2대 식량구매국이 되었으므로 미국이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미·소의 동아시아 구도는 한반도에서 남북한간의 군축과 경제협력을 고무할 것이다. 이땅에도 데탕트가 오고 통일이 이룩되기 위해서는 먼저 평화를 정착하고 협력을 증대하는 길밖에 없다. 이에 대하여 미·소는 이제 일치된 의견을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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