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한대로 알려야 없어진다"
  • 김 당 기자 ()
  • 승인 199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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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철폐 강연회’ 연 인도 여성 아르차나씨

깊이 잠든 새벽녘에 누군가가 당신집 대문을 요란하게 두들길 때, 영문도 모르는 채 빗장을 따자마자 낯선 사람들이 군홧발로 난입하여 당신의 집을 수색하면서 온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 때, 체포영장도 없이 붙들려 눈을 가리운 채 어디론가 끌려갈 때, 그곳에서 모르는 사실을 불라는 다그침과 함께 듣보지도 못한 고문을 당할 때, 거기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가 암매장될지도 모른다는 끝 모를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될 때, 그러기를 여러날 후,  “이제 가도 좋다??는 말 한마디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풀려 나왔을 때 당신은 어찌 하겠습니까?

 지난 6월4일부터 9일까지 한 인도여성이 서울·대구·광주지역을 돌며 자신이 겪은 고문 사례와 그 후유증을 극복한 과정을 담은 ‘고문철폐강연회??를 하면서 우리에게 제기한 물음이다. 고문철폐 및 사형제도 폐지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여오고 있는 국제 앰네스티(Ammesty international) 한국조절위원회 초청으로 방한한 아르차나 구하 젠센(49)씨는 인도의 대표적인 고문피해자이자 고문철폐 운동가이다. 인도 켈커타시의 한 여자중학교에서 문학과 역사를 가르치던 여교사 아르차나씨가 경찰에 체포된 때는 74년 7월18일 새벽 1시30분께. 경찰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로 낙살라이트(인도 서뱅골지방에서 활동하던 반정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연루된 남동생의 소재파악을 위해 그녀를 체포했다. 경찰서로 연행된 그녀는 형사과 특수조사실에서 취조심문과 함께 고문을 당했다. 경찰은 손발을 뒤로 묶고 공중에 매단 채 발바닥을 몽둥이로 때리고 손톱과 발톱을 불로 태우기도 했다. 교도소로 옮겨진 8월13일까지 27일 동안 날마다 불법 구금된 채 고문을 받았으며 그동안 변호인 접견은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해 9월 국가보안유지법 위반으로 정식형을 선고받았을 때는 이미 혼자 힘만으로는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하반신이 마비된 채 수형중이던 76년 2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당국은 그녀를 캘커타의 메디칼센터로 이송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11월까지 입원치료를 받다가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다.

 그후 그녀는 반신불수 상태로 1년간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하던 중에 인도를 방문한 국제 앰네스티 조사관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앰네스티는 고문후유증을 앓고 있는 양심수들의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첫 번째 수혜자이자 치료에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다. 그녀는 80년 1월에 코펜하겐으로 옮겨져 앰네스티 덴마크지부 의료인그룹 회원들이 건립한 고문피해자 재환센터에서 3개월간 집중적인 치료를 받은 끝에 회복되었다.

고문전문 경관오히려 승진

 그녀는 77년 8월에 5명의 경관을 형법 위반혐의로 고발하여 지금까지 법정투쟁을 계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고발한 경관 중 “모든 사람을 불게 만드는 능력??을 가져 ??황금의 손??이라 불리는 카말다스씨는 오히려 승진하여 캘커타에서 활약중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들 고문 경관들은 복잡한 인도법조항을 악용하여 공판을 계속 지연시키거나 인권단체들의 시위를 구실삼아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 판결을 연기시키고 있다.

 아르차나씨는 80년 이후 코펜하겐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한편 앰네스티 덴마크지부 회원으로서 강연·인터뷰·기자회견 등을 통해 고문의 잔악성을 알리는 일을 두고 “개인이 경험한 고문의 비인간성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고문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또 인도에선 비교적 흔한 고문피해 사건 중에서 유독 자신의 사건이 세계적 주목을 받은 까닭은 ??고문을 문제삼은 재판 자체가 별로 열린 적이 없던 인도에서 장기간 재판이 진행중인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이라면서 ??고문이 없어지려면 고문한 사람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며 고문당한 사람 또한 아무리 오랜 시일이 지나도 고문한 사람은 처벌받는다는 자기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그녀가 겪은 '사건'을 두고, 어쩌면 아르차나 케이스는 우리 현실에 견주면 '조족지혈'이라는 지적도 있을 법하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대표되는 어두운 고문의 역사 말고도 간헐적인 의문의 죽음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그녀가 남기고 간 메시지는 고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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