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재개 첫 제물 새인천병원노조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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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역 재야 노동가들은 새인천병원(인천시 남동구 간석3동 170)의 노조와해를‘제임스 리가 조직력을 채 갖추지 못한 신설노조에 적시 개입, 파괴한 사례’로 보고 있다. 새인천병원이 올들어 그의 첫 번째 활동무대였고 병원에 발을 들어놓은지 불과 1주일여만에 노조가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새인천병원은 내과ㆍ정형외과ㆍ외과ㆍ산부인과 등 4개 진료과목을 취급하는, 병실 57실의 작은 병원. 진료는 지하 1층, 지상 3층인 두개의 건물에서 이루어지는데 신관에 내과와 정형외과가, 구관에 외과와 산부인과가 있다. 경영진은 원장 ㅇ씨를 포함, 각 진료과목 담당의인 ㅊ씨, ㄱ씨, ㅈ씨 등 4인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은 모두 ㅋ대 의대 동창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 평균 외래환자 3백여명 정도를 유지하며 별탈없이 운영되는 듯하던 이 병원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올 신정휴가가 끝난 1월3일 무렵부터이다. 표면적으론 준종합병원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실질적인 경영수준은 개인병원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운영 방식에 불만을 가져오던 직원들이 노조결성 사실을 경영진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노조에 참여한 직원수는 총인원 75명 가운데 52명이었으며 위원장ㆍ부위원장ㆍ사무장ㆍ회계감사 등 4인의 간부도 선출되었다.

 이후 노조활동을 저지하려는 경영진과의 밀고 당기는 싸움이 시작됐다. 경영진의 대표격인 원장은 노조집행부 및 대의원들과의 몇차례 만남을 통해“노조가 생기면 분명 외부세력이 개입할 것이고 외부세력이 들어오면 사태가 악화돼 결국 병원은 도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발 노조는 포기하고 대신 노사협의회를 만들어 문제를 풀어가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노조원들이 계속 의사를 굽히지 않자 나중엔“잘못이 있다면 나를 부당 노동행위자로 고발해라. 차라리 감옥에 가면 갔지 그꼴은 못본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결국 양측의 입장이 맞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자 노조원들은 파업을 결정하고 일단 냉각기에 들어갔다. 제임스 리가 등장한 것은 바로 그즈음이었다. 1월29일 원장은“우리병원에서 일하실 분”이라고 李씨를 직원들에게 소개했다. 인사부장이란 직함을 갖게 된 이씨는 노조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노조는 필요하다. 하지만 하려면 제대로 해라. 당신들이 도대체 노조에 대해서 얼마나 아느냐”며 간부들을 질책했다. 그저 열악한 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시켜보겠다는‘순수한’의지로 별이론적인 무장도 갖추지 못한 채 일만 벌여놓은 노조원들이‘노조연구’에 몰두해온 이씨의 언변에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노조원이었던 ㄱ씨는“전문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노조대표들이 협상에 들어가기 전 예상안을 준비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기상천외한 각도에서 질문을 퍼붓는 이씨에게 제대로 답변도 못하고 참혹하게 깨졌다”고 말했다.

 노조원들이 이같은 집행부의 능력에 회의를 품고 흔들리기 시작하는 가운데 이씨는 경영진들의 잘못도 조목조목 지적, 비판함으로써 일방적으로 경영자의 편(이씨는 원장을 외삼촌이라고 했다)에 서리라 예상했던 노조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자신은 철저하게 중간입장임을 증명하려는 듯 이씨는 또 자신의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무작위로 호출, 개인면담을 실시해 주로 불만사항을 물었고 꼭 메모를 해놓았다가 그중 일부를 시정, 개선시켜주기도 했다. 이외에도 병원일이 바빠 손이 모자랄 때는 직접 약품도 옮기고 응급실에서 피를 닦아내기도 하는 등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이씨는 경계를 늦추지 않던 노조원들의 마음에 서서히 파고들었다. 신분 밝히길 거부한 한 병원직원은 그가 지금껏 볼 수 없던‘움직이는 중간관리자’였다고 까지 표현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노조는 해체되지 않은 상태였고 30일경 정형외과 의사 ㄱ씨가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며 모든 짐을 정리, 병원을 나갔다. 신관이 폐쇄되고 환자들이 타병원으로 옮겨졌으며 대부분이 노조원이던 신관 간호사들이 자연히 구관에서 근무하게 됐다. 신관앞에는 환자를 볼 수 없다는 안내문도 내걸렸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던 노조원들은 이같은 조치를 보면서 해고에 대한 두려움,‘진짜 병원이 문을 닫는 게 아니가’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31일엔 간호사 ㅈ씨가‘근무성적 불량’이란 이유로 해임됐다. ㅈ씨는 전근무지 병원에서도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임된 전력이 있는 노조경험자였다. 부평 안병원의 박노봉 노조위원장은 이에 대해“노조활동에 적극적이던 ㅈ씨를 본보기로 잘라 노선문제로 자기들끼리 갈등을 겪고 있던 노조원들의 기를 꺽어놓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2월2일 발생한 노조사무장 김형부씨의 할복자살기도는‘노노싸움’을 격화시켜 대부분의 노조원들이 심정적으로 이씨에게 동조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김씨는 대의원회의에서 노조해체쪽으로 의견이 기울자 등산용칼로 할복자살을 기도했다). 부평 성모자애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은 김씨는 생명을 건졌으나 이에 자극받은 노조원 일부가 인노협 등과 연계해 대책위원회를 구성, 병원에 대자보를 붙이고 구호를 외치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나머지 노조원들은 병원측이 할복 사건 직후 산부인과 의사의 헌혈, 수술비 및 입원비 전액지불 등 성의를 보였음에도 10여명의 대책위원회 구성원들의 행동이 당초 목적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즉 이씨가 평소 주장하던‘불순세력’과의 연결을 의심하는 상황에 이른 셈이었다. 결국 김씨를 포함한 집행부 4명과 대책위원회 구성원들은 그 이후 병원을 그만 뒀는데 노조위원장이었던 김영태씨는“경영진이나 이씨로부터 사표압력을 받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후 약 석달간 이씨는 병원 업무를 완전히 정상화시켰고 요즘도 병원 출입은 뜸하지만 여전히 인사부장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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