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이야기 속에 숨쉬는 통일염원
  • 고성ㆍ남문희 기자 ()
  • 승인 199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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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현장 취재

비무장지대의 시계는 정지돼 있다. 사회주의권의 변화, 한ㆍ소정상회담, 남·북관계의 새로운 모색 등이 떠들썩하게 얘기되고 있는 지금도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둔 남·북의 대치상황은 차갑고 무겁게 느껴진다.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남·북의 대치 전선은 남방한계선을 가로지르는 남한쪽 철책과 안내장교의 설명을 드고서야 어렴풋하게 위치가 가늠되는 북한쪽 철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북한쪽 최남단에 금강산 1만2천봉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일명 낙타봉)이 동해로 치닫고 있고, 그 바다 속에 유명한 해금강이 자리잡고 있다.

병사들 마음이‘합축교’란 이름 만든 듯

 통일전망대에서 고성군 간성읍에 이르는 일대에는 전쟁으로 파괴되어 지금은‘전설’처럼 떠돌고 있는 전쟁 전의 흔적들이 흩어져있다. 병사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고 있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 중에는 묘하게도‘길’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통일전망대에서 해안쪽으로 약 30여m 내려가면 철책으로 폐쇄된 콘크리트 굴이 나온다. 안내장교의 말에 의하면 전쟁 전‘양양과 원산’을 잇던‘동해북부선’이 통과하던 기차 터널이라 한다. 동해북부선은 이 터널을 통과한뒤 구선봉과 일직선상에 있는 조그만 섬‘송도’를 지나갔다. 그 섬에 이 철도의 중간 기착지인 초구역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름만 남고 사람이 살지 않는 명호리, 송현리, 검장리, 사천리, 저진리 등 민통선 안의 옛 마을들도 전쟁 전에는 이 철도를 중심으로 꽤 번성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마을들은 모두 사라지고 민통선 안에는 남한쪽의 최북단 마을인 명파마을 하나만 남아 있다. 병사들의‘길’이야기는 이 명파마을로 이어진다. 마을 초입에‘합축교’라는 다리가 있다는 것이다. 6ㆍ25전후 남과 북이 함께 만들었다고 해서 다리 이름이‘합축교’로 됐다고 하였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명파마을에 있는 그 다리는 6ㆍ25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제 때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설제의 합축교는 민통선을 빠져나와 그 훨씬 남쪽에 위치한 고성군 간성읍 대대리에 있었다. 대대리 마을사람들은 해방 직후 인민공화국 때 인민군이 교각과 다리 상단 절반을 만들었고, 6ㆍ25 때 인민군이 후퇴한 후 그 나머지를 국군 공병부대가 완성했다고 확인해준다. 마을사람들은 이 다리를 북천교라 부를뿐 합축교란 이름은 듣지 못했다고도 했다.

 왜 이 다리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도‘합축교’라고 개명까지 된 채로 병사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비록 민족이 분단되어 서로 적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그 옛날 어떤 경로로든 남과 북이 서로 힘을 합쳐‘다리’를 만든 적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어떤 자부심을 확인하고, 그것을 미래에의 가능성으로 이어보고 싶은 염원에서가 아닐까.

 첨예한 전선의 대치 상황 속에서도 통일을 바라는 마음들은 숨쉬고 있었다. 명파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명파 국민학교 교정 한쪽에 있는 돌하루방도 그 한 예이다. 이 돌하루방은 이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최남단의 제주도 마라도 국민학교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이 학교 咸炳元교감은 이 돌하루방의 받침대에 바퀴를 달아 통일이 되는 날 백두산에 옮겨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지금 그 돌하루방은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올라와 남한쪽 최북단, 그러나 한반도 중간지점인 명파초등학교 교정에 머물고 있다.

 한반도 주변의 정세변화가 표면적으로 아무리 급격하게 변해도 비무장지대의 시계는 적어도 어느 순간까지는 미동도 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리고 통일에의 염원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육중한 시계바늘도 마침내 움직일 날이 올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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