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프라하의 여름’가꾸기 한창
  • 프라하ㆍ강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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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압승‘시민포럼’의 하벨 대통령 개혁 박차…경제부흥 큰 숙제로 남아

체코슬로바키아는 성인군자들만 모여사는 나라인가? 최근 이 나라가 제헌의회 선거를 치르는 상황을 보면서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 것은, 40여년간 혹독한 공산정권의 압정에 시달린 나라치고는 복수니 원한이니 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표면화되지 않은 채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혁명의 주체 세력인 옵찬스케 포룸(Obcanske Forumㆍ시민포럼)이 사진ㆍ신문기사ㆍ비디오로 공산 치하의 최근 역사를 엮은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공산당을 비판하는 계몽과 선전활동을 활발히 전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산당을 불법화하여 선거무대에서 몰아내자는 일부 정당들의 주장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거의 정치제도를 바로잡자는 입장에서 볼때 불법화조치는 과거의 정치를 답습하는 격이 되고만다는 것이 시민포럼의 한결같은 반대이유였다.

 바츨라브 하벨 대통령은 또 과거에 공산당과 협조한 사실 유무를 엄하게 따지지 말고 서로 관대하게 대하자는 입장을 취해왔다. 사실 엄격히 따지게 되면, 티끌만치도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은 찾기 힘들며, 그런 사람은 하벨 대통령 한사람뿐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벨의 인기는 절대적

 프라하에서 만난 어느 중년 학자는 하벨 대통령을 찬양하며 이렇게 기자에게 말했다.“사람들의 증오심을 자극하여 공산주의자들을 처치해버리자고 선동을 할 수도 있을 만한 입장인 데도,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단 말이에요. 얼마나 기가 막힌 이야기 입니까.” 공산정권은 하벨의 희곡상연을 금했으며, 그를 5년간 투옥했었다.“다른 나라에서 같으면 하벨 같은 관대한 지도자는 용납되지 않았을 겁니다.”하벨만 잘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지도자를 받드는 체코슬로바키아 국민 또한 훌륭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시민포럼의 창설자이며 과도정부 대통령인 하벨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그의 정치에 대한 지지도는 80%를 상회하고 있다. 지난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투표가 진행된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제헌의회와,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공화국 의회선거에서 시민포럼과 슬로바키아에 있는 포럼의 자매단체‘폭력반대동맹’이 대대적인 승리를 거둔 것도 하벨의 인기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시민포럼 세력은 연바의회의 하원에서 1백50석 중 87석, 상원에서는 1백50석 중 82석을 차지했으며, 득표율은 46%였다. 득표율이 5% 미만인 정당들에게는 의석이 하나도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22개 정당이 참가했지만 의석은 6개 정당이 나누어 가졌으며 득표율에 비하면 의석수가 넉넉하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하는 국민의 열망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하벨 대통령은 논평했다. 제헌의회 의원 임기와 같은 2년동안의 대통령직에 그가 선출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또 공산정권을 무너뜨리는 운동에 참여하려고 모인 예술가ㆍ지식인들이 이제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급 정치인으로서 새로 구성된 연립정부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많아야 10% 정도밖에 득표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공산당이 13.6%나 얻어 연방의회 총의석 3백석 중 44석을 차지하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공산당은 원래 인구 1천5백만 중에서 1백50만명이란 많은 당원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작년 11월 민주혁명 이후에 약 반수로 당원수가 줄었으며, 선거운동에도 비교적 저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 놀랍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는 앞으로 예상되는 경제개혁에따라 시장경제로 이행하면서 물가가 오르고 실업자가 생기리라는 불안감이 보수적인 농촌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며, 둘째로는 여론조사 과정에서 공산당과 결별한 것처럼 듣기 좋게 말해놓고도 내심은 오랜 조직생활의 타성으로 당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해온 당원들이 적지않은 고정표로 나타났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공산당이 새 정부의 경제개혁 수행에 결정적인 방해요소가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시민포럼 세력 내에서는 경제개혁의 속도문제로 양론이 있으나 대세는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자는 쪽으로 확실히 기울고 있다.

일급 관광지로서 인기 급부상

 체코슬로바키아는 2차대전 전에는 유럽에서 네번째로 꼽히는 공업국가였다. 모스크바가 주도하는 공산권 내에서도 무기생산 등 공업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서방세계의 기술혁신에는 못미쳐 상대적으로 낙후하게 된 분야가 많다.

 한편 불타바 강변에 자리잡은 주도 프라하에는 중세기까지 거슬러올가는 사적과 옛건물들이 공원과 언덕의 푸른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관광지로서의 주가가 한창 올라가고 있다. 금년 1월부터 3개월간만 보아도 외국관광객 1천5백만명이 다녀가는 성황을 이뤘다. 인근 국가에서 관광버스가 줄을 이어 들어오고 있고 공항의 증축공사도 진행중이다.

 아직 호텔은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관영뿐이지만. 모스크바에 비하면 프라하의 호텔 종업원들은 월등히 민첩하고 친절하다. 생활수준도 동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편으로 1인당 연간소득이 1만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식료품ㆍ의류ㆍ신발 등 소비물자의 공급도 소련이나 폴란드보다 훨씬 원활해보인다.

 체코슬바키아 국민은 음악ㆍ연극ㆍ영화를 좋아하며 그 방면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드보르작과 스메타나의 나라라는 것만 상기해도 충분히 짐작이 갈 수 있는 일이다. 또 프라하에는 크고 작은 상설극장이 84개나 있어 다양한 레퍼터리로 연극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다만 요즘에는 관객이 텔레비전 때문에 다소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정치가 자유로워지고 중요해지면서 텔레비전의 내용도 충실해졌기 때문이다.

 공업기술의 바탕이 단단하며, 교육과 문화수준이 높은 이 나라에서 경제개혁이 효과를 거둔다면 중부유럽의 선진국으로 급성장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찍이 9세기에 이 나라 종교지도자들은 희랍정교를 피하고 로마교회를 택하였다. 따라서 라틴문자를 쓰게 되었으며 서유럽과 깊은 문화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다. 19세기까지 오랜 기간 오스트리아 치하에 있어왔던 이 나라는 생활 스타일이나 도시의 풍모에서 서유럽을 물씬 느끼게 한다.

 공항에서 만난 한 프랑스인 관광객은“이 나라 사람들이 유럽에서 프랑스국민과 비슷한 점이 가장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나라 모두 여러 민족이 이동하는 교차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 여러 가지 피가 섞일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우수해졌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게르만 민족의 순수성과 우수성을 연관시킨 히틀러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여러모로 될성부른 나라로 인정받고 있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장래에 문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경제발전에 성공하리라는 낙관론 때문에 오히려 경제개혁이라는 큰 과업에 미온적으로 임할 위험성이 있다. 공산주의 시대의‘성과’를 어느정도는 유지해야 될 것이 아니냐, 또는 개혁을 급진적으로 추진하다가는 민생에 너무 많은 희생이 요구되지 않겠느냐 하는 신중론 때문에 과감한 개혁에 차질이 생길 염려가 있다. 또 경쟁이 없는 체제에서 비교적‘늘어진 자세’로 일하던 근로자들의 작업 능률을 올리는 문제가 어떤 의미에서는 찢어지게 못사는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는 소리도 있다. 한없이 착하고 어진 영도자 하벨이 이끄는 이 나라가 경제부흥의 활기도 갖출 수 있을 것인지는 큰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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