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자금난‘ 타는 목마름'
  • 조윤증 기자 ()
  • 승인 199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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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금융권 금리 사채수준 육박…업계선“금리자유화가 돈흐름 왜곡"

기업이 하루,하루 유지되려면 그날의 손익은 나중 문제이고, 우선 돈이 제대로 돌아 부도를 막아야 한다. 시중 자금사정이 좋지 않으면 그만큼 자금 조달의 어려움은 커진다. 최근 몇 달간 시중 자금 흐름이 바로 잡히지 않아 금리 인하는커녕 제2금융군의 금리가 사채시장 금리에 육박하는 등, 시중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4ㆍ4종합대책 때 李承潤부총리의 첫 카드인 제2금융권 실세 금리 1% 인하 유도는 실패한 셈이다.

 일반 기업의 자금 담당 부서에 소속된 직원들의 하루일과는 어쩌면 회사문 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해가 저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4ㆍ4종합대책이 나왔을 때 ㅅ그룹의 자금팀은 정부의 실세금리 인하유도 방침을“4월말 자금사정 호전??으로 해석했다. 싼 값에 돈을 끌어 쓰려는 여유를 보이다가 예측과는 달리 4월말 자금사정이 다시 경색되면서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당연히 책임자의 문책이 뒤따랐다. 합리적인 판단이 자주 그릇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우리 금융가의 현실이다.


합리적 판단이 안 통하는 금융 현실

 돈은 금리가 높은 곳으로 흐르는 생리를 갖고 있다. 시중에서 돈을 구하기 쉬우면 이자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기업이나 금융기관, 통화당국의 고민은 지난해말을 기점으로 돈이 많이 풀렸는데 실세 금리는 왜 떨어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특히 단기 기업자금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제2금융권의 대출금리가 한달 이상 18%에 육박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행 통화금융 崔??과장은“지난 4월의 경우 기업의 자본수요가 집중되는 계절적 요인이 있었다. 또 주식시장의 장기 침체에 따른 증권사와 투신사의 자금부족,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동산투기가 자금난을 불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한 업체의 자금책임자는??금융당국의 정책방향이 확고하게 서지 않는 이상 자금 사정은 나아질 수 없다??고 못박는다. 정부는 치솟는 물가를 잡고 동시에 기업의 투자의욕을 살리고 아울러 중시부양을 꾀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수출회복과 자본시장 개방을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목표가 동시에 달성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에 현 경제팀의 어려움이 있다.

 6개월 이하의 단기금융은 15일 이내의 초 단기 거래인 콜 거래와 이보다 대출 기간이 긴 제2금융권의 대출이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현재 단자회사 등 제2금융권의 금리수준은 우리 금리체계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초 단기 자금인 콜 금리 등 실세 금리가 지난4월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제2금융권의 고금리 행진이  6월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1개월 이상의 어음 할인 금리는 연 18%로 4ㆍ4 발표 때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는 사채 금리시장의 어음할인금리 월 1.6%(대기업 그룹 주력기업 어음기준)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보험사의 대출금리도 전혀 내리지 않고 있다. 명목상 연 12~14%이나 보험 가입 등 일종의‘꺾기??를 감안하면 보험사의 실제 대출금리는 연 16~17% 선이다.

 이같은 현상은‘금리입찰경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치열한 제2금융권의 예금 유치를 위한 고금리 경쟁 때문이라고 지적된다. 수신 유치경쟁은??큰손??예금주에는 통상 수익률에 플러스 알파를 더 얹어주는 편법을 동원할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로는 각종 기금 등 거액 예금주들이 단자사에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는??금리 쇼핑??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이같이 수신금리가 올라가면 여신금리 역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여신의 60% 이상이 예금주들의 돈에서 충당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단자사 관계자의 견해는 다르다.“현재 제2금융권의 금리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자금의 수급에 의해 결정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재 정부의 긴축기조로 일반 은행권에선 신규대출의 금지 등 여신이 규제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기업이 손을 벌릴 곳이라고는 제2금융권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관계자도??최근 3년간 제2금융권의 외형적 성장으로 자금의 구조가 단기화로 치닫는 현상을 보이고 있어 통화당국으로서도 통화관리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보험회사, 신탁회사, 증권회사, 단자회사 등 급성장을 거듭한 제2금융권이 총수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60%를 넘어섰다. 제2금융권은 예금이 들어오면 그것으로 회사채를 사거나, 통화안전증권, 무담보 기업어음(CP) 등을 사들여 분산시킨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단자사의 경우, 예금 고객을 위한 어음 관리구좌(CMA) 등 수신상품의 금리를 경쟁적으로 높이고 있다. 잎으로 자금사정이 악화될 것을 우려하여 1개월 이상의 대출에 대해서는‘꺾기’등 일종의 부대비용을 치르고 사채 수준의 높은 금리를 내야만 기업이 돈을 빌릴 수 있는 것도 대출금리가 떨어지지 않고 있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따라 금융당국은 수신 금리의 인하를 통해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단자사의 경우 주상품인 CMA의 수익률을 떨어뜨려 단자사의 자금 조달 비용을 현재보다 낮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나 제2금융권 관계자들은 일부 수신 금리를 낮춘다하더라도 대출금리가 내려간다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위적인 행정력 발동으로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투신사 관계자들은“일반은행의 대출금리와는 달리 이곳 대출금리는 그날 그날의 자금사정과 앞으로의 예상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수신금리 인하가 대출금리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재무부나 한국은행은 제2금융권 금리 인하의 단안을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은행은 그같은 방안이??쉽지 않은 일??로 보고 있다. 더구나 치솟는 물가가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등장한 마당에 금리인하를 추진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당국의 고민은 결국 좁게는 우리나라 금리체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은 하반기 자금 사정은 상반기에 비해 호전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근거로는 부동산투기에 몰렸던 돈이 금융권으로 환류되는 등 왜곡되었던 자금흐름이 어느정도 바로 잡힐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경제계 일각에서도 6월 들어 기업의 자금 수요가 지난 4~5월보다는 크게 줄어들어 기업 자금사정이 나아지고 이에따라 금리의 추가인한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견해를 내세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금 관계자들은“하반기 자금 사정이 좋아질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전망한다. 기업은 시설 투자게획 등에 따라 자금확보에 나설 때면 제2금융권의 자금은 일단 잡고보자는 식이다. 투자금융비용이 소장 兪翰樹박사는??우리나라의 금융비용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한마디로 너무 자주 풀었다 죄었다 한다. 더욱이 자금에 대한 과수요가 상존하고 있어 기업이나 일반인들은 돈 있을 때 우선 당겨 쓰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고 통화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현재 기업들이 돈을 구하는 데 쩔쩔 매게된 결정적인 원인은 수출부진이다. 수출이 안되면 자금사정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1/4분기에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주로 내수증가 때문이었다. 내수의 경우 3~6개월의 어음거래 대부분이기 때문에 기업의 자금조달은 그만큼 어려워진다.

 자금 관계자들은“지난 88년 12월 성급한 금리자유화 조치로 자금흐름의 왜곡현상이 심화되었다??고 진단하고??아직 부동산 등 실물부분에 뭉치돈이 몰려 있는 상태에서 실세금리의 인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결론짓는다. 지난 88년말 금리를 내리려는 취지 아래 금리자율화를 시작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켰고 그 뒤로 자금흐름은 결정적으로 왜곡되어왔다는 것이 그들의 시각이다. 작년 한해 기업들은 증권시장 등 직접 자본시장에서 공개나 증자를 통해 10조 이상의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 증시가 바닥을 치면서 증자나 공개도 규제되었다. 증자조달분이 한달 평균 3천억 규모로 떨어졌고, 공개조달분 역시 5백억원 수준을 맴돌고 있다. 이에따라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통해 모자라는 자금을 구해왔는데, 올 상반기 이미 3조원이상 회사채를 발행했다. 만기분 1조원 규모를 제하고 나면 신규발행은 2조원 규모에 불과해 기업의 자체 자금조달능력은 사실상 한계에 직면해 있다.

 기업의 자금난은 지속될 전망이고 제2금융권의 고금리 현상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단기적 자금난을 푸는 문제와 아울러 왜곡된 자금흐름을 바로잡는 구조적 문제의 해결은 금융 당국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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