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ㆍ인간문제 함께 다뤘다"
  • 김춘옥 문화부장 ()
  • 승인 199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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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간 2년에 연 2만여명을 동원해서 촬영에만 꼬박 1년이 걸렸다. 전문제작자들이 아닌 일반인 17명의 후원을 받아 마련한 제작비 14억원을 투입해서 17시간 분량(필름 9만자)을 찍었다. 줄이고 줄여서 만든 2시간40분짜리〈남부군〉은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전국 극장에 직배됐고 영화관 입장료도 4천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개봉 보름만에 전국적으로 4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는 것은 주제가 갖는 역사성과 개방된 시각으로 역사를 보려고 한 감독의 노력, 끝까지 사실주의에 충실하려고 한 감독의 의지 등이 한데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년 동안‘빨치산??이었던 鄭智泳감독을 만나봤다.


●〈남부군〉을 어떤 시각에서 만들었습니까?

 이 태씨의 동명소설 원작을 읽고 분단세계에 감춰졌던 엄청난 비극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중과 가장 가까운 영화매체를 통해서 이같은 분단의 비극을 실제와 가깝게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한마디로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통일을 향한 의지를 통해서 민족의 문제와 인간의 문제를 함께 제시하고 싶었던 거죠.

●영화에 나타난 이 태라는 인물은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평입니다. 신념이 있어보이지도 않았고 빨치산 입대동기도 강하지 못했습니다.

 회고록에 나타난 이 태는 좌우로 나뉘어진 당시 사회에서 좌익 신파로 철저한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지식인의 특권이랄 수 있는 회의가 전편에 흐르고 있죠. 바로 이 점이 영화를 만들기 가장 어려웠던 점입니다. 드라마는 캐릭터의 변화에서 시작하는데 그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니 관객하고 만나는 부분이 없더군요. 안성기를 택한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안으로 곱씹으면서 외형을 지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이미 40년이 흘렀고, 그동안 우리 사회 분위기에 젖어버린 필자의 자서전에만 의지해서 과거를 재조명한 탓 아닌가요? 감독으로서 객관적 관찰을 통해 주인공을 묘사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분의 양해를 얻어 그를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만들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태까지 보던 반공영화가 되고 그러면 영화는 실패하게 됩니다. 남에서 쫓기고 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과연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밎추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끝까지 투항하지 않고 산속을 헤메는 장면이 꽤나 오랫동안 펼쳐집니다. 신념이 강하지 않은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원작에서 본 것은 이 태씨가 산 속을 헤메일 때마다 끊임없이 갈등하는 지문입니다. 이 태씨의 심성으로 봐서 동지를 만나면 살 수 있다, 내려가도 어차피 죽는다, 만약에 투항하면 동지에 대한 배반이다라고 생각했으리라고 봅니다. 이념은 확고하지 않았더라도 이겨야만 좋은 세상이 온다는 막연한 공감대가 그(들)를 오래도록 버티게 한 것 같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이‘체포된다??라는 자막이 나오는데 체포라는 말은 자의가 배제된 단어가 아닙니까?

 원작에는 그가 체포될 줄 알고도 내려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일주일간 굶던 이 태씨가 배가 고파서 마을로 내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인인 이 태씨는 살기 위해서 투항한다는 생각을 못하리라고 봅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을 떠올리면서 남로당 사령부나 국군사령부 등을 한 두 장면 등장시키는 것이 더 좋지 않았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국민들이 그동안 무수하게 그같은 장면을 보아왔고, 또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지적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제가 만든 영화이므로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사실주의에 충실하려는 감독의 의지가 전편에 흐름에도 불구하고 디테일한 면에서 많은 한계가 보이더군요.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숙명적으로 리얼리즘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성기씨가 20여일 동안 머리를 안감았는 데도 바람이 워낙 세니까 고운 머리칼이 보였습니다.

●리얼리즘영화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고 우리나라 영화에서 리얼리즘 부재 이유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삶의 진실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얼리즘 부재의 이유는 68년이후부터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고 둘째로는 영화인들이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영화의 사회적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감독의 역할을 어떻게 보십니까?

 사회가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인간이 인간이기를 찾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신념을 갖고 만든 것이〈남부군〉이고 이 영화의 성패가 정지영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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