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안맞는 물가정책
  • 편집국 ()
  • 승인 199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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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대 (기아경제연구소장)

 두자리수의 성장과 한자리수의 물가를 놓고 양자택일의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면 아마 한자리수 물가가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얻을 것이다. 우리의 경제상황은 1/4분기 실적에서 나타난 엉성한 내용의 두자리수 성장보다는 견실한 안정을 더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5월 한달 동안만에도 2%나 올랐고 금년들어 5월말까지의 소비자물가 상승폭은 6.7%에 이르렀다. 1년간의 상승폭을 한자리수로 묶어두려면 남은 기간 동안 매월 평균 상승률을 0.4% 이내로 눌러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은 반드시 해내야 하고 정부 또한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꼭 이루어야만 하면서도 그 추진이 무척 어려운 일일수록 그것을 기어코 해내겠다고 팔을 걷고 나서는 정부당국자의 표정에 비장감이 역력히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도 한층 적극적인 협조자세로 따라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정부는 시도별 물가상승률을 이례적으로 공식발표하면서 물가안정 실적에 대한 지방자치단체별 평가제를 도입하는 등, 때는 좀 늦었지만 전에 보지 못한 강력수단을 들고나왔다. 그만한 열성도 작은 것은 아니자만 금년물가잡기의 難易度에 비추어볼 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당면한 빠른 물가상승의 요인은 그 구조가 복잡하다. 물가억제의 정책수단에 가해지는 제약도 만만치 않다. 물가상승의 원인을 한가닥씩 캐어들어가면 보호해야 할 곡식의 뿌리와 걷어내야 할 잡초의 뿌리가 한데 뒤엉켜 있음을 곧 발견하게 된다.

치밀하지 못한 정책이 문제

 금년 봄, 소비자물가 상승에 큰 몫을 담당한 채소류값 앙등은 일기불순으로 인한 흉작에 그 원인이 있다. 정부의 물가설명에서 이것이 은근히 강조되고 있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쌀값이 올라도 산지 쌀값을 유지하기 위해 재빨리 정부미를 방출하지 못한 것은 정치적 요인에 해당한다. 철근ㆍ골재 등 건축자재비의 급등은 분당ㆍ일산ㆍ산본 등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면서 건축자재 수급을 미리 치밀하게 배려하지 못한 정책적 불성실에 그 책임이 돌아간다.

 물가억제대책의 제1과가 통화량억제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속사정은 이해가 가지만, 이를 그냥 둔 채 물가억제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둔다고 공언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작년 12월 정부가 증시부양을 위해 지원해준 2조7천억원의 주식 매입자금은 근본적인 증시부양의 효과도 거두지 못한 채, 통화량 조절의 엄청난 부담요인만 되었다. 이로 인해 금년에 들어와 총통화증가율(전년동월대비)은 월 22%가 넘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이를 낮추기 위해 통화관리의 고삐를 조금만 죄어도 업계는 자금압박으로 큰 시달림을 받는다.

 정부가 비교적 쉽게 손쓸 수 있는 공공요금의 경우에도 지하철 요금을 포함한 몇가지는 인상이 불가피함을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天災型ㆍ정치성 요인을 비롯한 갖가지 불가피한 사정들을 다 감안하고 나면 어떤‘물가억제수단??이 남겠는가. 경기부양, 수출회복, 정부의 각종 복지사업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같은 정책목표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물가를 잡는다는 것은 물가안정노력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경제의 다른 부분들을 상당히 희생시키고도 한자리수 물가를 지키기란 지극히 어렵게 돼버린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실천의지 확고해야

 더구나 정부가 강력히 억제하기로 작정한 서비스요금이 하반기에 과연 잠잠해질 것인가 장담하기 어려우며 건축자재의 수요가 수그러들 정도로 건축업계의 활기가 갑자기 식을 것 같지도 않다. 그뿐만 아니라 하반기에는 환율의 오름세가 확실해보이므로 원貨의 평가절하 추세도 빼놓을 수 없는 물가상승요인이다.

 물가를 10% 이내로 눌러야 하는 이유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자명하다. 더욱 쪼달리게 될 서민의 살림, 이미 크게 우려되고 있는 국제수지의 악화도 문제지만 물가상승이 지니는 포괄적인 형평파괴 효과야말로 최선을 다해 방지해야 한다. 또한 안간힘을 다해 이룩한 한자리수 임금인상을 정착시켜나가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조건에 해당하는 것이 한자리수 물가상승인 것이다.

 물가의 움직임에는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물가억제정책이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국민들의 믿음이 확고해지면 물가대책은 반쯤 성공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경우에도 물가를 잡고야 말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구체적 실천으로 가시화돼야 그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도 형성, 확산된다. 이미 발표한 연말까지의 건축허가제한 조치와 각종 물가대책은 그러한 믿음을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통화량과 재정부문에서도 실질적인 대책이 제시되고,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진 일부 공공요금 인상도 내년으로 연기하는 등 추가적인 조치가 취해진다면 안정에 대한 국민신뢰의 형성은 좀더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한자리수 물가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한 한자리수 물가의 실현은 정말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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