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民間방송을 서두르는가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9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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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나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가서 독재자 프랑코가 죽어가고 있는 스페인 사정을 취재한 일이 있다. 스페인 말도 모르고 스페인 사정에도 어두워서 런던에서 방송되는 BBC 세계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스페인 사람을 만나 배경 설명을 들어야 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BBC방송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를 파악하고 있음을 알고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대사관 사람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서는 그럴 법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반드시 외국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만난 스페인의 어느 일간신문 주필은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뉴스시간이 되자 라디오를 켰는데, 거기서 나오는 스페인 말이 아니라 귀에 익은 BBC방송이었다. 스페인 유력 신문사의 주필조차도 손님 앞에서 서슴지 않고 BBC뉴스를 듣다니….

 BBC뉴스는 왜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도 신뢰할 만큼 그 권위가 대단한 것일까? 한마디로 정확성 때문이다. 정확성은 다시 진실함과 공정함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다. 신속성 또한 대단히 중요한 뉴스의 속성임을 누가 부인할까. 하지만 참으로 권위있는 신문ㆍ방송은 신속함에서는 차라리 둘째로 꼽히더라도 정확성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돈이 오는 데서 명령이 오는'상업방송

 절대적 권위와 신뢰는 어떻게 확립되었을까? 구조적으로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이라는 것, 그리고 완전한 독립성을 누리는 직업방송인이 오직 직업적인 양심과 원칙에 입각하여 최선의 방송을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 프로그램분만이 아니다. 연예ㆍ오락ㆍ교양 따위의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독립성이야말로 공영방송의 사활의 열쇠라고 말할 수 있다. 관권으로부터의 자유와 상업주의 또는 영리적 성격으로부터의 해방이 독립성의 두 수레바퀴를 이룬다. 정치권력이 방송프로그램 제작을 좌우해서는 안되고, 뉴스나 그밖의 프로그램이 상품으로 전락, 상업적인 이윤추구를 위해 프로그램 제작자가 좌고우면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볼 때에 BBC를 비롯한 유럽의 방송이야말로 우선 제도면에서 탁월하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이 공영제도는 다른 두 가지의 다른 방송제도와 대조된다. 그 하나는 소련의 공산주의제도 및 그와 비슷한 독재 나라의 언론제도이다. 그런 나라에서는 방송뿐만이 아니라 모든 언론매체가 국가 소유이고 실제로 국가가 경영한다. 모든 것은 엘리트가 계획하고 운영하며, 그들이 설정한 국가목표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소련 및 그밖의 제3세계의 독재체제가 國有관영방송제도를 발전시켰다면 미국은 순전한 民有상업방송제도를 택했음이 특이하다. 예외는 있지만 거개가 상업방송이어서‘최대 다수의 최대 흥미거리??야말로 프로그램 편성의 기본방침이 된다.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광고주가 몰려들고,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방송국이 경영된다.

 미국에서도 직업적 윤리가 강조되지만 궁극적으로 돈이 오는 데서 명령이 오기 마련이다. 대중과 천박한 취미에 영합하는 저질의 프로그램이 활개칠 수밖에 없고,‘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셤법칙??에서 해방될 수 없다.

KBSㆍMBCㆍ‘國有ㆍ民有공영체제’로 전환해야

 그러나 독점은 어느 경우에나 침체와 비능률을 뜻한다. BBC텔레비전 채널 이외에 ITV라는 민간방송망을 조직하였다. 전국의 15개 프로그램회사가 연합한 것. 전부 상업광고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 연합체의 운영을 책임지는 것은 IBA(독립방송기구)라는 공영체이다. 이 공영체 이사회는 BBC의 主權기관인 BBC이 사회가 그렇드싱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사회지도인사로 구성한다. 상업주의에 때묻지 않은,‘돈이 오는 데서 명령이 오지 않는??그러한 민영체제이다. 예컨대 IBA 산하 ITV(독립 텔레비전)가 방영하는 뉴스는 ITV(독립뉴스)이라는 완전히 독립된 뉴스조직이 취재ㆍ편집하여 제공한다.

 BBC가 시청료에 의존하는 國有공영이라면 ITV는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民有공영이다. 둘 다 권력과 돈의 지배에서 독립된, 진정한 국민의 방송이다. 우리의 경우, 국영방송은 정권의 한낱 도구였다. 과거에 있던 상업 텔레비전은 재벌의 이익을 좇아 막강한 정치적 힘을 발휘하는, 그러면서도‘돈 찍는 기계??였다.

 정부는 갑자기 명년 하반기에 새로운 민방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렇다할 국민적 토론이 없었다. 방대한 돈을 누가 대는지 분명치 않은 가운데 1년 후에 방영시킨다는 방침이다. 지금 있는 KBS와 MBC의 4개 채널조차 만족스럽게 운영되고 있지 않은데, 어쩌자고 또 하나의 상업방송을 늘리겠다는 것인지 알수 없다.‘재벌소유불가??라는 방침을 세웠고, 49%이상 소유는 안된다는 원칙을 내걸었으나, 그런 정도로 그런 목적이 달성될 수 있겠는가.

 선진국 추세가 민영화라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ㆍ미국을 빼놓고 상업방송이 대종을 이루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영국ㆍ프랑스 등이 제한된 의미의 상업방송을 조심스럽게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민방이 허락된 나라는 1백70개 나라 가운데 10개국 정도이다.

 분명한 것은‘전파는 국민의 소유??라는 것이다. 따라서 방송은 국민의 건전한 정보ㆍ문화생활에 기여하는 제도여야 한다. 정부가 함부로 국민의 정신적 재산을 주무를 수는 없다. 우선, KBSㆍMBC두 네트워크를 BBCㆍIBA처럼 國有공영, 民有공영하는 체제로 향상시키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완벽한 준비없이 하나의 상업방송 설립을 왜 서두는지, 그 숨은 동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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