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뜻' 의심받는 방송구조개편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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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화 통한 영향력 분산 의도" 비판…언노련 등 “장악 위한 개악”투쟁 천명

 “텔레비전의 힘은 하느님보다 더 세다.” 텔레비전의 막대한 영향력을 두고 흔히 인용되는 말이다. 9시 저녁뉴스의 경우 한 나라 인구의 절반을 동시에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 모으는데 그런 놀라운 힘은 하느님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魔力을 정권이 이용하고 싶어하거나 최소한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기능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는 말도 있다.

 ‘전두환대통령은 오늘??로 시작되는 소식이 톱뉴스이던 시절에는 정부 입장에서는 그 힘이 단 두개의 채널에 집중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KBS 파업속보’같은 것이 첫 소식으로 나가는 지금에는 그것을 다시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또 새로 허가해줄 민영방송은 정치권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자본의 생리상 친체제적인 사기업이 맡는 게 훨씬 더 바람직스러울 것이다. 6월14일 민방허용을 골자로 발표된 정부의 방송구조개편안에 대해 ‘방송 장악 음모’라고 주장하는 쪽의 가설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노련)을 비롯해서 ‘방송법 개악저지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한 MBC · KBS · CBS · PBC 등 4개 방송사 노조와 평민당이 그러한 주장을 하며 저지투쟁을 천명하고 있다. 음모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 많은 방송전문가들도 상업방송 도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치적 의도’가 없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법개정을 밀어붙일 계획이어서 한차례의 소란이 예상되고 있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국민 철저히 소외

 그러나 방송장악 음모냐 아니냐를 둘러싼 작금의 논란은 어쩐지 맥이 빠져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싸움의 핵심은 개편안이 국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일텐데 그 국민, 이른바 방송의 주인이라고 하는 시청자들이 정책결정 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끼지 못해오고 있다는 데 그‘공허함’의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철저히 비공개리에 이루어진 절차상의 문제가 의혹과 의구심을 일으키는 일차적인 배경”이라는 주장에 대해 정부는 “이번 개편안은 방송제도연구위원회(방제연)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며, 2년 전부터 학계 · 정계 · 언론계 등의 수많은 세미나 · 공청회 · 토론회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참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수많은’세미나 등이 몇몇 방송전문가와 문공위 소속의원 중심으로 언제 어딘지도 모르게 열려왔다는 사실은 여기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청자가 빠져 있는 것은 ‘음모’라고 하는 방송사쪽의 주장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어쩐 일인지 신문과 달리 양 방송에서는 개편안과 관련된 심층 · 기획보도물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으며 그동안 큰 뉴스가 있을 때마다 흔하게 동원됐던 ‘시민반응’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채널선택권이 넓어진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많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기 때문이다.

 새 채널을 개방하되 정치적 의도를 차단하고 보다 공익에 충실한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공정한 물음을 이들은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편안이 과연 정치일정에 맞춰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를 따지는 데 있어 음모라는 쪽과 아니라는 쪽 모두 자신들의 주장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정부 개편안의 요지는 채널5 몫으로 금년내에 신규민방을 허가하고, KBS 제1 · 2텔레비전, 제1라디오, 제1 · 2FM만을 유지케하여 대폭 축소하고, KBS 제3텔레비전과 제2라디오를 문교부가 관장하는 교육방송으로 독립시키는 것이다. MBC 문제는 일단 보류 했으나 지방네트워크를 가맹체제로 전환하고 본사는 민간에 불하할 방침이 확실해보인다. 결국 핵심은 현 양대방송 독과점체제를 분할, 군소화시키면서 동시에 상업방송지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같은 구상을 하게 됐을까. 언론노동계와 민방도입 비판론자들이 ‘속뜻’을 의심하는 정부의 ‘민방허용 이유’를 살펴보자.


“정부의 민방허용 이유는 모두 허구”

 정부는 ‘선진방송구조로의 개편’을 표방하면서 다음과 같은 6가지 이유로 민방도입 불가피론을 밝히고 있다. 첫째 위성방송 · 종합 유선방송 등 많은 수의 방송주파수와 채널이 활용가능한 오늘날의 상황에서 ‘전파의 개방’은 필연적이며, 둘째 국민의 다양하고 폭넓은 정보욕구를 충족시켜줄 방송채널이 늘어나야 하나 이를 국민부담으로 설립하기란 불가능하므로 민영방송의 출현이 불가피하다.

 셋째 일본의 위성방송이 우리 안방까지 침투하고 있는 문화침식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새 민방허용으로 국민에게 우리 방송 접촉기회를 넓혀주는 것이 시급하며, 넷째 현재로서는 KBS · MBC 2개 방송사가 방송전파를 사실상 독과점하여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경영 또한 방만, 진정한 방송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다수 방송사들이 선의의 경쟁을 함으로써 방송계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어 방송의 발전을 도모 할 수 있다.

 다섯째 막대한 광고적체 현상을 해소하고 중소기업 제품들도 광고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 산업의 균형있는 발전에 기여토록 하고, 여섯째 방송의 민영화가 선진제국의 일반적 추세라는 점, 예컨대 공영방송이 근간이었던 영국이 72년 · 89년에 각각 민영방송을 허용했고 프랑스에서도 공 · 민영체제로 전환하는 등 유럽의 많은 나라가 민영방송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를 고려했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정부의 이같은 이유가 모두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방으로의 전환이 세계적 추세라는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85년 유네스코 조사에 따르면 73개국 중 국영 36개국(50.7%), 공영 126개국(36.6%), 민영 4개국(5.7%),국 · 공사 등 혼합 5개국(7%) 등으로 나와 있다. 국 · 공영이 압도적인데 80년 언론통폐합 당시에는 역으로 이러한 통계가 이용된 점을 상기한다면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간섭 유무에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정부가 이들 통계를 내세우며 모든 방송을 국영화하겠다고 한다면 또 어떤 반발이 나올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업방송지배체제로의 전환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민방’이라는 말은 민 · 관 대결구조를 이용한 정부의 선전용어”라면서 ‘私營방송’이라고 고집하고 있는 서울대 추광영교수(신문학)는 “사영방송은 광고수입극대화를 위한 최대 시청자 창출이 기본 목표가 되고 정보는 단지 부산물 또는 수단에 불과, 뉴스까지 포함해서 모든 프로그램이 필연적으로 대중에게 영합하기 위한 선정적, 흥미위주의 섹스나 폭력 오락물로 넘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프로그램의 극단적 대중화와 질적 하향평준화를 초래하고 만다는 것이다.

 방제연에 참여했으나 민방도입안에 반대한 고려대 원우현교수(신문방송학)도 “이번 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간공영방송인 KBS 제1텔레비전마저 광고방송으로 남겨둬 무한적인 시청률경쟁을 유도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방제연에서 민방안을 작성한 방송비평가 윤병일씨는 “그러면 소위 공영이라고 하는 지금 방송프로그램의 질이 어떤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언론통폐합 전 민방시절을 돌이켜볼 때 물론 저질도 많았지만 지금 같진 않았다. 이제는 시청자 의식수준이 높아졌으며 따라서 철저히 시청자에게 영합하는 상업방송일수록 그들이 원하는 좋은 프로그램을 민간고유의 창의력으로 생산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상업주의 폐단에 대한 보완책으로 “재벌의 실질적 소유를 막아 방송사업이 개인의 사익추구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추후 마련할 것이며, 광고매출액의 일정률을 떼어 공익목적으로 사용하고 광고량과 요금도 적정수준이 유지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방송내용 저질화 방지를 위해서는 방송사 자체 심의기능을 대폭 강화할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일정률을 외부제작사에 맡기도록 하고 수입외화물 방영도 제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농민 등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는 소외될 것”

 정부의 ‘재벌참여 불가’입장에 따라 일반의 관심이 모아진 새 민방 소유주는 준재벌급의 중소기업군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재벌이 어떤 형태로든 참여할 것이라는 추측이 아직도 꼬리를 물고 있지만 “시대상황이 그것을 용납치 않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며 정부에서도 “국민들이 갖고 있는 재벌에 대한 일정한 기준, 이를테면 재벌계열사나 그 친인척에 포함되는 어떤 개인이나 기업도 민방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혀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소기업에게 민방을 내주려 하고 있다면 재벌에 대한 국민감정 이외에 또 어떤 것을 고려했을까. 비판론자들은 이와 관련하여 상업방송은 자본의 생리로 인해 독립성, 공정성, 그리고 다양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정치적 의도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교수는 “세무사찰 한번이면 끝나는 기업이 독립성을 유지 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엄청난 이권이 보장되는 민방을 정부로부터 허가받았는데 그 정부에 협조 안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공영체제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방송국이 2천개가 넘는 미국의 예를 들면서 자본가들의 상업방송이 지배하는 체제 아래서는 시청률위주의 저질 프로그램 양산 등 문화매체로서의 품격에 문제가 생기지만 언론매체로서의 공정성에도 심각한 폐해가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여성 · 농민 · 노동자 등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소외되고 그들의 이익이 존중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가 이러한데 공적 재산인 전파를 어느 개인이나 기업에게 한번 줘버리게 되면 다시 뺏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비판론자들이 한 목소리로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말로 예정된 현실은 분명히 이상과는 거리가 먼 ‘다수 중소기업에 의한 민방’쪽으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 방제연에 참가한 한 교수는 “92년 정치일정을 역산하여 정부가 개편안을 내놓았다는 ‘음모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조활성화 등으로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는 현 양대방송체제에는 정부의 불만이 컸을 것이다. 다가올 민영 위주의공 · 민영체제는 방송의 상업화 · 다원화를 통한 영향력 분산, 방송내용의 보수화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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