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수입개방, 괜찮은가
  • 이성남 문화부차장대우 ()
  • 승인 1990.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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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을 전후해서 일본영화의 수입개방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 찬성과 반대의견이 팽팽히 맞선 이 문제를 두 영화계 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분석해본다.

영화평론가. 1945년생. 한양대를 나와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이며 본지 편집자문위원으로 있다.

정용탁 찬

● 일본영화 수입을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화는 물이 흐르듯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정보화시대에 인위적으로 이웃 나라의 문화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영화의 수입으로 한국이 일본문화에 종속될 것처럼 허풍을 떠는 사람도 있지만 5천년의 역사를 지닌, 그리고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 일본문화에 종속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일본영화가 한국에서 쉽게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과거 한반도에서 건너간 문화의 회귀일 수도, 한국에 수용된 서양문화의 일부일 수도, 또는 일본 것이지만 인류 보편적인 것일 수도 있다. 국교도 없는 공산권 영화가 이데올로기가 배제되었다는 이유로(엄밀한 의미에서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공산권 영화는 없다) 수입되고 있는 마당에 일본영화만을 배척하는 것은 국제적인 감각으로 볼 때 매우 부자연스럽다. 영화야말로 그 나라 국민의 의식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으므로 일본영화를 통해 일본을 이해하고 극일하여야 한다.

● UIP 직배 이후 불과 2년 사이에 외화수입 신청 건수가 2백50~3백편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일본영화까지 수입되면 한국의 영화시장이 잠식당하는 현상은 더 심각해질텐데….

 일본인들이 한국을 일본영화의 큰 시장으로 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시장에서 일본영화는 단기간의 흥행성적은 좋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헐리우드영화와 홍콩영화가 주도하고 일본영화는 퇴조할 것이다. 결국에는 한국영화와 일본영화의 관계보다는 기존 외국영화와 일본영화의 지분 뺏기 관계가 될 것이다.

● 89년 12월의 영화진흥공사 설문조사에서 ‘외국영화 수입개방정책에 따라 어느나라 영화가 주로 수입되었으면 합니까?’라는 질문에 ‘일본영화’라고 답한 이는 3.8%밖에 되지 않는다. 호응도가 이렇게 낮은데 굳이 일본영화의 수입을 개방해야 하는 까닭은?

 뒤집어 묻겠다. 일본영화에 대한 호응도가 이렇게 낮은데 일본 영화의 수입개방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 대통령 방일 때마다 일본영화 수입개방이 논의되고 있고, 일본은 일본영화의 한국진출을 꾸준히 시도하며 여론을 조성해왔다. 정치 · 경제는 물론 문화관계에서까지 ‘일본 주도 한·일관계’를 완결지으려는 것이라고 우려하는 관점도 있다.

 일본이 문화침략이라는 관점에서 영화를 수출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의 문화가 실제 거의 다 들어와 있는 마당에 일본영화에 의한 문화적 충격은 없으리라 본다. 다만 한·일 문화교류의 완결이라는 관점은 있을 수 있다.

정용탁 “외설과 폭력은 유럽·홍콩영화가 더 문제다”

● 일본문화가 지하에서 향유되고 있지만 ‘공식화’의 의미는 더 심각한 현상을 초래한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음성화보다는 양성화가 공식적으로 규제하기 쉬울 것이다. 국내 외화수입업자들이 흥행 위주의 작품을 사기 위해 과당경쟁하여 가격을 올리고, 일본흥행사들에게 저자세로 작품을 구걸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 일본 외설영화 및 군국주의 정신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사무라이 소재의 폭력영화가 우리 청소년 정서에 끼칠 악영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영화가 일본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생각해 보라. 외설과 폭력에 대한 문제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공연윤리위원회의 엄격한 수입심의와 검열이 있는 한 걱정할 것이 없다. 외설은 유럽영화가, 폭력은 홍콩영화가 더 문제다.

● 일본영화에 대한 평가는?

 일본영화가 한국영화보다 질적인 면이나 양적인 면에서 우위에 있다. 객관적으로도 세계5대영화제에서 10여편이 그랑프리를 받았지만 아직 한국은 그랑프리를 받은 작품이 없다. 그러나 일본영화와 한국영화가 뒤섞여 상영되면 언젠가는 평준화되고, 세계문화사가 말해주듯 반전의 날이 올 것이다.

● 반대하는 쪽은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민족자존심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세계사를 볼 때 이웃하는 나라끼리 전쟁을 안한 나라는 없다. 민족감정이 없는 나라도 없다. 그러나 상호 노력하여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적대감정을 갖는 것보다 서로를 위해서 유리하다.

● 일본영화 수입시기는 언제가 적절하다고 보는가?

 이상적인 시기는 2년전 공산권 영화의 개방 때였다. 그러나 현재는 일본영화 수입시기가 아니라고 본다. 일본이 무역흑자 폭을 줄이려는 성의를 보일 때가  여론을 의식하는 정부측에 명분을 주는 때이므로 적기이다.

● 수입의 문을 연다면 정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

 일본영화는 크게 일반 영화와 소프트포르노가 있는데 후자는 당연히 수입불가여야 한다. 외국영화에 대한 수입심의와 공륜의 검열이 있는 한 일본의 저질 · 퇴폐 · 잔혹 영화가 상영될 염려는 없다. 정부는 일본영화를 포함, 외국영화 수입에 따른 한국 영화산업 위축에 대해 산업적 측면에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반 장길수
영화감독. 1955년생. ‘밤의 열기 속으로’ ‘레테의 연가’ ‘불의 나라’ 등 연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로 대종상 7개 부문을 휩쓸었다.

● 일본영화 수입을 왜 반대하는가?

 아직 우리 사회에는 일제 식민잔재가 청산되지 않고 구석구석 남아 있다. 또 정치적 · 사회적으로도 청산의 기회를 가진 바 없다. 일제시대에  교육받은 세대, 일본문화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세대가 살아 있으며 그들이 일본문화의 우월성을 부지불식간에 시인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본인들의 정신 · 특질 · 역사관 · 가치관을 담고 있는 일본영화가 수입되어 일본 식민지문화 잔재와 만나고 일본문화 향수 세대의 정서와 만난다면 심각한 문화침탈 현상이 빚어질 것이라고 본다.

● ‘문화침탈’ 차원에서 반대한다면, 미국영화 · 홍콩영화의 경우도 적용되는 것 아닌가?

 일본영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감동’인데 그것에는 일본적인 비장미 · 민족기질 · 국민감정에 부합하는 것이 교묘하게 들어있다. 만일에 미국영화 · 홍콩영화에 그런 측면이 있다면, 그런 것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더군다나 한 · 일 양국간에 놓여 있는 특수한 국가관계와 민족감정은 다란 나라와 비교할 수 없다고 본다.

● 일본영화에 어떤 평가를 내리는가?

 일본영화 황금기인 30년대와 5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전반적으로 침체해 있다. 연간 제작되는 2백여편 가운데 우수한 영화는 10편 정도에 지나지 않고 잔인무도한 사무라이 영화, 야쿠자 폭력물, 패륜에 가까운 로만 포르노, 하이틴영화, 동물영화, 만화영화가 판치고 있는 실정이다.

●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서 상업적 저질영화의 침투를 막을 수도 있지 않은가?

 현상태에서도 ‘아스팍영화제’ ‘아시아영화제’에서 우수한 일본영화사 상영되고 있고 또 일본문화원에서는 정기적인 시사회를 열어 일본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전면적인 수입개방보다는 문화교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런데 일본이 수입개방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 영화시장의 지배 또는 석권을 노리는 것이지 문화교류 차원을 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 최근 여러 한국영화가 관객의 호응을 받고 있다. 일본영화의 선진 영화기술이나 영화이론을 한국영화 발전에 이용할 수 있지 않은가?

 UIP 직배 이후, 한국영화의 자생력을 갖추는 게 절박한 문제로 대두되어 영화인들이 과감한 투자와 소재 확대를 적극적으로 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영화 직배사가 4개로 늘어났고 홍콩영화·소련영화도 몰려 들어오는 가운데 한국영화 스크린쿼터 일수를 줄이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영화의 자생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영화를 잘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논리이다.

장길수 “일본가요에 의한 폐해도 심각한 실정이다”

● 찬성하는 쪽은 국제화시대에 비수교국인 소련 · 동유럽의 영화까지 들여오는데 굳이 일본영화만 안된다는 것은 국제감각에 맞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논리라고 지적하는데…

 이미 들어와 있는 일본가요나 패션 잡지 등으로 파생되는 정서적인 폐해가 심각할 뿐 아니라 민족적 자긍심을 해친다고 생각한다.

● 해묵은 민족감정으로 반대하기보다는 ‘극일’ 차원으로 수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수입금지가 ‘막연한 신비감 조장’이라는 부정적 측면도 있겠지만 우선 우려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청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일본인 평론가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개방을 막는다면 ‘문화역조 현상’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궤변으로 들린다. 왜 일본영화를 수입하지 못해서 안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안정되어 있는 일본에서는 쟁점이 될 만한 소재가 없기 때문에 뜨겁고 치열한 소재가 무궁무진한 한국영화에 대해 관심이 높다. 그러나 우리 영화를 분석 · 평가하는 작업에서 그들이 국내 영화인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정 국가의 영화에 자극 받아 우리 영화가 발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영화가 그렇게 오랫동안 영향을 주었지만 한국영화의 발전과는 무관했다.

● 수입개방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는가?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는 지금부터 5년쯤 뒤다. 그때 가면 영화진흥책의 기본안인 종합촬영소가 설립되고, 정부에서 세운 영화중장기발전계획과도 맞아 떨어지는 시점이다. 해방 반세기라는 점에서도 그렇고…그때부터 선별적으로,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업적인 교류보다는 우리가 손해보지 않는 상호교류기간을 먼저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정부에 바라는 대책 방안은 무엇인가?

 일본영화 수입개방을 논하기 전에 한국영화 진흥을 위한 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영화인을 규제하기 위한 현행 영화법을 진흥 차원의 법으로 개정하고 통제기능이 더 강한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심의를 영화인 자율에 맡기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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