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쯤이야…”
  • 워싱턴 · 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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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높은 美국회, 행정부와 힘겨루기 팽팽

세계 최강의 힘을 가졌다는 미국 대통령도 기를 못펴는 구석이 있다. 그를 불편하게 만들고,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곶감’―美의회다.

 막강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이 이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진 막강한 의회를 두지 않았더라면, 아니 행정부의 시녀쯤으로 전락한 채 제 할일을 못하는 그런 의회를 두었더라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싹도 나기 전에 이미 시들고 말았을 것이다.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은 여러나라가 합친 공동체 즉 연방이라는 큰 조직을 통솔해야 하는 대통령에게 제왕에 가까운 권한을 주는데 합의했다. 그러면서도 자칫 예상될 법한 그의 독주를 견제 · 감시하기 위해 또 다른 장치를 궁리해냈다. 상원과 하원 두 기관이 바로 그것이다.

 유럽의 평등사상과 법치주의에 익숙한 미국사람들은 ‘법대로 하기’와 ‘내몫을 지킨다’는 서부개척 정신에 입각해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입법부는 입법부대로 법이 정한 대로의 내몫 차지를 옹골차게 해오고 있다.

 미 의회의 권능은 여자를 남자로, 또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일 빼고는 만사가 가능하다는 영국 의회의 권능에 버금간다.

 의회는 의회 관계 법과 관행을 쫒아 의장 이하 간부를 뽑고 院을 구성할 뿐, 행정부의 지시나 압력 따위가 개입할 틈을 일절 용납지 않는다. 대통령은 그가 속한 당의 총재임이 분명하나, 그렇다고 그가 院구성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수도 없고 또 간섭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의회에 제출한 법안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법안제출자인 대통령 스스로가 으레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해야 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반대당 의원은 물론이거니와 자기당 출신 의원을 상대로도 교섭을 벌여야 한다.

 취임 직후 국방장관에 전직 상원의원 존 타워를 임명했던 부시 대통령은 상원에서 이 동의안이 부결됨으로서 對의회로비의 첫 고배를 마셔야 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 뒤에도 연방대법원 판사에 보수계로 알려진 인물을 두사람 지명했으나 한사람은 상원에서 거부당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퇴해버렸다. 의회로부터 연타를 당한 셈이다.

 미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당하는 수모는 이밖에도 많다.

 최근 화제가 돼있는 국기 모독죄를 성립시키기 위해 부시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변, 이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으나 하원은 이를 압도적 표차로 부결시켜버렸다. 이에 화가 치민 부시는 이 문제를 선거이슈로 몰고가 국민의 직접 심판을 받아서라도 뜻을 굽히지 않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 공무원이 정당과 관련된 정치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법률을 개정해서 한정된 정치활동을 허용하려는 상 · 하원의 일치된 결의(소위해치 법안)에 대해 이번에는 부시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발끈한 하원은 재적의원의 3분의2가 훨씬 넘는 3백27 대 93으로 재표결, 대통령의 거부권을 번복시키기로 결정해버렸다. 상원의 재표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백악관으로서는 상원을 상대로 마지막 설득작업을 벌이는 수밖에는 뾰족한 묘수가 없었다. 팽팽한 대결의 국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천안문 사건 직후 이에 격분한 미 의회는 재미 중국유학생들에게 비자기간을 무기한 연장해줌으로써 사실상 미국 영주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의회 몰래 두 번씩이나 고위밀사를 북경에 보내 중국 정부 눈치를 살펴온 부시 대통령이 이 법안을 비토함으로써 의회와 정면대결을 불사하고 있다.

 외교문제에 관한 한 항상 독불장군격으로 독주한다는 비난을 듣는 부시는 외교의 주체는 대통령이며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의회와 장단을 맞출 생각이라고 강조해 왔다. 즉 외교는 초당적인 문제이므로 백악관 못지 않게 의회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게 온당하다고 우겨대는 의회의 주장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부시의 경우 內治에 있어서뿐만 아니고 외교에 있어서도 그의 경험과 판단을 따를 만한 사람이 없다고 자평해왔다. 이러한 자평이 상당부분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탓일까?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은 유례없는 70%에 이르고 있다.

 취임 이후 부시 대통령은 비토권을 11번 행사,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들을 백지화시킨 기록을 갖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 의회에는 선거구민의 민원을 빼고는 의원 자신을 괴롭히는 난제나 위기가 거의 없다. 한마디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물론 작년 하원의 짐 라이트 의장이 직위를 이용하여 금전상 사욕을 채웠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사퇴한 일은 있었다. 그러나 위기가 있다면 백악관 쪽이 더 많다.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대통령 자리를 물러난 닉슨이 그 대표적 예다.

 의사당이 있는 곳을 ‘수도의 언덕’(the Capital Hill) 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의사당이 백악관 동쪽 동산 위에 있는 탓도 있겠지만 ‘위에서 아래를 살펴보라’는 뜻도 다분히 포함돼 있다는 풀이가 그럴듯하다.

 미 의회는 법과 절차에 따라 설득하고 부탁할 뿐 회유나 협박이 없고, 또 소속당 의원이 설령 백악관 뜻에 위배되는 표결을 했다 해도 보복당하는 일이 전혀 없는, 한마디로 콧대 높은 곳이다.

 요즘 정치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부실금융기관 정리와 관련된 비리에 부시대통령의 아들 닐 부시가 개입된 사실이 의회청문회를 통해 드러나 백악관과 의회 사이에는 티격태격이 한창이다. 주지하다시피 미의회는 청문회를 통해 의심이 가는 문제들을 미주알고주알 캐낸다. 이것도 모자라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하고 특별검사제도를 도입해 진상을 규명하기도 한다.

 각주에서 2명씩 뽑아 만들어진 상원의원 1백명은 잠재적 대통령 후보라고 생각할 뿐 아니라 유권자들로부터도 그런 대우를 받아왔다. 권위있는 의원들 가운데는 30~40년씩 의원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아 연임한다 해야 고작 8년 임기인 대통령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인 것 같다. 오히려 행정부 쪽에서 의회를 보고 설설기는 그런 형편은 아닌지…. 팔씨름도 서로 만만해야 경기가 되듯이 백악관과 의회의 힘겨루기는 이처럼 팽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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