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선거혁명’마감 의회민주주의 새 길 열려
  • 파리 · 태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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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공산당 명맥만 유지 … 경제개혁에 온 힘

국민이 선거로 집권당을 선택하는 것이 상식처럼 된 세상이지만,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자유선거를 맞이한 동유럽 5개국 국민들로서는 크나큰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거는 지난 3월 동독에서 시작되어 6월 17일 불가리아 선거의 2차투표로 마무리되었다. 동유럽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하였나? 나라에 따라 뉘앙스는 다르지만, 의회민주주의와 대담한 경제개혁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서부활극에서 보듯 악한은 모조리 쓸어내고 의협청년만 살아남는 식의 결과는 아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대개 사회당으로 간판을 바꾸었으며 소수당으로 전락하기는 했지만 명맥은 유지하게 되었다. 동독의 공산당은 민주 사회당으로 개칭하여 출마했다. 16% 득표로 총의석 4백석 중 65석을 차지했다. 헝가리에서는 개혁파 공산주의자들이 사회당으로 개칭하여 8%를 득표했다. 의석수는 총의석 3백86석 중 33석. 강경파 공산주의자들은 사회노동당이라는 기치를 들었으나 득표는 4%밖에 되지 않았다. 선거법에 따라 득표가 5%에 미달하면 의석은 하나도 얻지 못한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만은 공산당이 이름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민주혁명세력인 시민포럼이 집권하면 죄수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선전구호를 내걸었다. 전환기의 불안심리, 경제개혁에 대한 불안감을 득표에 이용하자는 작전이었다. 득표는 예상보다 많은 15%. 하원 1백50석 중 23석을 차지했다.

 불가리아에서는 사회당으로 개칭한 공산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추구하겠다는 것을 선거공약으로 크게 내세운 것을 보면 과거 공산당과는 거리가 멀다. 루마니아의 경우는 사정이 특이하다. 선거는 구국전선의 대승으로 끝났다. 득표는 59%. 의석 수는 총 3백96석의 하원의석 중 2백 33석. 문제는 구국전선의 구성 내용이다. 반체제 인사들이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前 공산당원들이 그대로 박혀 있다 하여 반공세력의 반발이 심하다. 그뿐 아니라 대통령이며 구국전선의 지도자인 이온 일리에스쿠는 최근 친정부 세력인 광부들을 부쿠레슈티에 불러들여 반정부 시위자들에게 폭행을 가하게 한 일로 서방 각국 정부와 언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경험있는 관리들 계속 남아 실무 담당

 이 나라들이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구 정권 요인들과 비밀경찰은 어떻게 되었는가.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 불가리아의 토도르 지프코프 등 전 집권자들이 재판에 회부될 처지에 있으며, 예외적인 사례로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는 전격적인 군사재판을 거쳐 일찍이 처형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앙정부나 지방관서의 관리들이 숙청당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것은 경험있는 관리들이 남아서 실무를 담당해줘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비밀경찰의 처지 역시 나라마다 다르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공산당 집권말기에 이르러 비밀경찰도 상당히 자중하는 기색을 보였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와 동독에서는 비밀경찰의 활동은 끝까지 여전하였다. 이 두 나라에서는 지금 비밀경찰 요원들과 제보자들에 대한 인사조치가 진행중이다. 한편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서도 비밀경찰을 약화시키려는 조치가 취해졌다는 말이 돌고 있으나, 일반국민들은 “그러한 소식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하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동유럽의 최근 선거에서 한가지 다행스러운 현상은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분리주의가 예상했던 것보다 약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소련의 여러 공화국에서 표출되는 것과 비슷한 소수민족들의 발언과 주장이 억압에서 풀린 해방무드 속에서 크게 들려올 것은 예상되지만. 민족주의 때문에 동유럽에 큰 위기가 올 전망은 없어 보인다. 슬로바키아공화국의 경우, 분리를 원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이번 선거에서 11%밖에 차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거로 새로 구성되는 의회들은 대부분 제헌 임무를 띠고 있으며  임기는 대개 2년이다. 한번의 선거로 민주주의가 이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작업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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