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가정의 틀’깨는 위기의 중년
  • 김성희 (연극평론가) ()
  • 승인 199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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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여자> <실내전>―번역극 한계로 관객 ‘갈증’ 못채워

 가정은 견고한 울타리일 수도 있지만 그 핵을 이루는 부부의 태도나 관계변화에 따라 쉽게 허물어져버리는 ‘모래성’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이기도 한 ‘가정’ 혹은 ‘부부갈등’ 문제는 오랫동안 텔레비전 드라마의 단골소재로서 피상적으로 다뤄져왔을 뿐, 우리의 연극에서는 별로 힘있게 무대화돼오지 못했었다. 바로 이러한 주제를 무대화하여 관객층을 중년부부에게까지 확대시킨 연극이 <위기의 여자>와 <실내전>이다.

 극단 산울림의 <위기의 여자>(시몬 드 보부아르 작 · 정복근 각색 · 임영웅 연출)는 이미 86년에 초연되어 7개월이나 장기공연하면서 수많은 중년여성들을 관객으로 끌어들여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영화화되기 까지 했다.

 이 연극은 가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중년부인 모니크(윤여정 분)가 어느날 남편 모리스(이승호 분)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서 겪는 갈등과 좌절, 분노를 내밀하게 그리고 있다. 모니크는 당황하여 친구 · 정신과의사 등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얻고자한다. 친구 이자벨(서수옥 분)은 중년남편의 외도를 “결혼생활의 긴 도정 속에 잠깐 일어났다가 해결되는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고 충고했다. 모니크는 남편의 이기주의를 공격하지만, 모리스 역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묶어서 내 개성이나 인생에 대한 야망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말았다면서 모니크의 헌신적인 주부역할을 여자의 이기심으로 몰아붙인다. 정신과의사 역시 “주부의 철저한 헌신과 사랑과 신뢰란 소유욕과 이기심의 또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모니크는 결국 남들로부터 조언을 구하여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결국 자신을 구할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주부로서 남을 위한 삶만 살았지 정작 자아를 잃고 살아온 모니크의 자각은 놀랄 만큼 여성관객을 주인공과 동일시하게 만들고 비극의 대단원과 같은 의식의 고양을 안겨준다. 마치 <인형의 집>의 노라가 자각한 순간 문을 박차고 가정을 뛰쳐나갔듯이, 1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노라’는 남편의 보호막과 가정의 안일을 박차고 불확실한 미래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90년의 <위기의 여자>는 윤여정 이승호가 이루는 연기의 앙상블이나 이미지가 86년에 훨씬 미치지 못했을 뿐더러 연출의 시각도 전혀 진전을 보이지 못해서 실망스럽다. 왜냐하면 노라나 모니크가 결단끝에 미래를 향해 열려는 문, 즉 ‘홀로서기’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사실 또다른 문제들의 끝없는 밀림 앞에 서있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 대한 투자나 자기발전을 멈추어왔던 주부가 사회라는 거대한 밀림 속에서 헤쳐나가야 할 산적한 문제들과의 투쟁이 보다 분명한 사회적 시각으로 형상화되는 것이 90년대의 ‘여성연극’ 혹은 ‘가정연극’의 주제로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실내전>(극단 로뎀 · 마틴 발저작 · 강영걸 연출)은 중년부부의 갈등과 화해를 매우 재치있는 대사로 유머스럽게 그리고 있다. 이 연극에서는 친구의 초대에 불참하지 않으려는 남편의 고집으로 벌어진 부부싸움이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남편 펠릭스(윤주상 분)는 친구가 24세의 젊은 여자와 결혼한 데서 충격을 받아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이켜보게 되고, 아나로그시계처럼 정확하게 살아온 일상과 소심함이 초라하게 느껴지게 된다. 아내 투루데(이주실 분)는 남편에게 ‘남자다움’을 요구한다. 그들은 서로를 비난하며 처음으로 속마음을 열어놓고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진실을 얘기한다.

 이처럼 그들은 결혼생활 19년만에 처음으로 진실을 펼쳐보임으로써 바로 그들을 가둬놓고있던 ‘생활의 액자틀’로부터 빠져나오게 되고, 마침내 부부관계란 매일매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아주 얇다랗게 구어낸 도자기’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번역극일지라도 우리 사회 문맥에 맞춰야

 이 연극은 중년부부를 묶어놓고 있는 관계의 끈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위기의 여자>는 모니크가 가정의 틀, 주부의 틀 안에 자신의 좌표를 설정하고 그 틀에 균열이 왔을  때 느끼는 방황과 분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실내전>은 가정의 틀을 깰 용기가 없는 보통 부부의 모습을 세심하고 리얼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적 · 사회구조적 문맥에서 보자면 이 두 연극이 우리 관객의 갈증을 채워준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번역극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제기되는 가정의 균열문제, 혹은 여성의 자각과 사회참여 문제를 예리하게 그린 창작극이 기다려진다. 또 번역극일지라도 우리의 사회문화적 문맥에 맞추는 수정 보완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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