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 급진ㆍ보수파 '共生'선택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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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차 공산당대회/고르비, 방해세력에 '정치적 승리'혼합경제체제 추진할 듯

 제27차 소련공산당대회가 열렸던 4년전만해도 크렘린궁은 소련공산당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베일에 감싸인 곳이었다. 서방세계 언론의 특파원들이 다수 모스크바에 상주하고 있긴 해도 그들의 보도에는 한계가 있어 소련공산당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그 나라가 어디로 나가려고 하는 것인지, 그 나라가 어디로 나가려고 하는 것인지, 크렘린궁 안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가(개혁)정책을 선보였을 때만 해도 소련이 지금처럼 바뀌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소련당지도부나 고르바초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불과 4년만에 소련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거수기'로 통하던 정치국원들과 당 고위간부들이 대거 사임의사를 밝히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보수파와 급진개혁파가 당과 국가의 최고책임자인 고르바초프를 공격하는 소리, 이를 맞받아치는 고르바초프의 역공의 소리가 크렘린궁 밖으로 그대로 흘러 나오는게 2제 28차 당대회가 열린 소련의 상황이다.

 지난 7월2일부터 약 열흘간 진행된 이번 당대회는 지난 2월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헌법상 보장된 공산당의 권력 독점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것이다. 당의 재편이 불가피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향후 당의 권한을 대폭 정부에 이양한다는 전제하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더 이상 지체할수 없다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적 계산'도 깔려 있었다.

 

보수ㆍ급진ㆍ중도파 난상토론

 특히 이번 당대회는 지난 72년간 소련 권력구조의 핵심역할을 해온 정치국과 서기장직의 폐지대신 당의장 및 부의장직 신설, 최고정책심의기구인 간부회 설치, 정책의기구인 간부회 설치, 정책결정사항의 집행 및 당무의 관장에 임할 당 제1서기직의 신설, 정책기관인 중앙위원회의 전면개편등을 골자로 한 새로운 당규약안을 심의했다. 그때문에 보수파ㆍ급진개혁파ㆍ중도파간에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최근 보수세력이 대두하면서 빚어진 당의 위기상황을 가리켜 소련이 이미 2류국가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지금 진행중인 광범위한 전환의 길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反페레스트로이카 세력의 인도 아래 국가와 인민이 '암흑의 시대'로 들어서느냐 하는 엄중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어조를 높였다.

 보수파의 거두로 알려진 농업담당 정치국원 예고르 리가초프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현실주의자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고르바초프의 집권 5년을 '무모한 급진주의의 시기'라고 개혁파에 공격을 가했다.

 이번 당대회는 1918년 제 7차 당대회 이후소련공산당이 최대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열렸는데 최근 러시아공산당 창당을 계기로 득세한 보수파가 어떤 공세를 펼까 크게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 공산당은 대회를 불과 보름앞둔 시점에서 창당되었고 부사파인 이반 폴로즈코프가 당 제1서기로 선출되자 이들이 이번 당대회에서 개혁파를 몰아붙여 궁지에 모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것도 모르는 아니었다. 4천6백여 대의원 가운데 러시아 공화국 대의원이 2천7백명에 이르고 이들 대부분이 보수파에 속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현재의 개혁속도가 불만을 품은 급진개혁파인 '민주강령'파나 강경보수파가 소련공산당을 탈당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의 소리도 있었다. 그런데 양측 모두 한발짝씩 양보하여 '공생의 길'을 택하기로 했으니 대회는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승리를 위해 마련된것 같았다.

 

보수강경파. 고르비 맹공격

 이번 당대회에서는 과거에 볼 수 없던 '공개적 토론과 비판'이 허용되었다. 보수강경파들은 이러한 '공개성'을 무기로 당대회 개회 2주 전부터 고르바초프를 맹공격하여 그 입지의 약화를 노렸다.

 보수파들이 서기장직 사임을 요구한 데 대해 고르바초프는 "일부의 주장대로 대통령직과 서기장직이 분리 될 경우 이 나라는 兩頭정치체제와 그에 따른 대립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일축했다.

 그는 당권의 장악없는 개혁추진이 현단계에서 위험함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다. 고르바초프가 당무의 대폭적인 정부이양에 찬성하면서도 국가의 기간인 군ㆍKGBㆍ경찰ㆍ공장 등에서 당의 역할을 배제하는 데 반대한 것도 이들 기관에 보수파의 뿌리가 깊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2시간20분에 걸친 국정보고 연설에서 보수파들이 계속 개혁정책을 방해할 경우 소련은 '암흑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식 문제해결을 주장하는 급진파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이들이 우리를 페레스트로이카의 궤도에서 밀어내려 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중도노선'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고르바초프의 이 같은 경고는 자신의 경제정책과 동유럽사태를 가져온 그의 신사고 외교정책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보수파와, 보다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 공산당에서 이탈하겠다고 위협한 '민주강령'파를 겨냥한 것이다.

 이번 당대회에서는 당초 예상대로 농업담당 정치국원 리가초프라 "지난 5년간 추진된 페레스트로이카는 즉흥성과 끝없는 과격성으로 점철되어 왔다"면서 고르바초프의 토지사유화, 反알코올캠페인, 국영기업의 민영화 계획을 집중 비난했다. 경제정책 책임을 맡은 바딤 메드베데프도 모두 보수파의 도마 위에 올랐다.

 

서방의 지원. 개혁파에게 결정적 힘

 이번 대회의 현안인 당의장직에는 고르바초프가 당선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겸임금지를 주창했던 리가초프도 "다른 마땅한 대체인물이 없기 때문에 고르바초프를 찍겠다"고했고 초강경보수파인 기다스포프 레닌그라드 제1서기나 KGB의장인 크류츠코프도 역시 고르바초프를 지지하겠다고 나섰다.

 당내 일각에서는 대외정책 담당 정치국원 야코블레프를 당의장으로 옹립하려는 움직임도 있으나 본인이 고사하고 있으며, 설령 그가 당선되더라도 그가 고르바초프의 핵심 브레인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당대회를 통해 자신의 통치구도를 공고히 한 후 자신이 주창한 바 있는 국영기업민영화ㆍ토지사유화를 계속 추진하겠지만. 서구식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에 앞서 국가통제를 가미한 혼합경제체제를 당분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폴로즈코프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이 소련 최대 공화국인 러시아의 공산당을 장악했고 발트해 3국을 비롯한 각 공화국들의 탈연방 움직임, 혼합경제체제 채택이 빚을 경제적 혼란, 이미 나타나고 있는 공산당에 대한 민심이탈 등 산적한 문제는 고르바초프의 앞날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ㆍ일본ㆍ서유럽국가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한 지원으로 1백50억~2백억달러에 이르는 긴급 경제원조를 고려하고 잇어 고르바초프를 정검으로 한 개혁파에게 결정적인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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