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아줌마들, 단식투쟁 시작했다
  • 워싱턴 · 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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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본사ㆍ부천공장서 동시에 재미동포ㆍ美인권옹호단체 지원 활발

 '한국피코 미국 원정대'가 마침내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어물쩍 공장문을 닫고 미국으로 도망친 미국 기업주를 찾아와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내놓으라고 미국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여온 한국피코회사 노조대표들. 이들은 두달반 동안 두문불출, 한마디의 대응도 없는 회사대표에 대한 마지막 압력수단으로 한국피코 부천공장 조합원과 동시에 단식농성에 들어갔다(본지 제28호 참조).

 지난 7월5일, 노조위원장 柳點順(37)씨, 사무장 洪聖禮(46)씨, 노조원 姜勞孝(30)씨 등과 현지의 '피코노동자 후원회' 회원 7명은 "우리는 기업주의 무디어진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 단식을 시작한다"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하고 회사 입구에 앉아 단식을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 뉴욕주 리버풀시의 회사 입구에서 지난 4월 중순께부터 석달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주민과 경찰만 '관심'을 보였을 뿐, 정작 대화에 응해야 할 회사 책임자는 귀를 틀어막고 들어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홍사무장의 말에 의하면, 이곳 신문들은 독자편지를 통해 매주 한번 꼴로 한국인 시위에 동정론을 펴온 반면, 관할 경찰 당국은 징을 치고 꽹과리 두들기는 요란한 데모가 소음단속법 위반이라고 해서 풍물놀이패 대표자에게서 벌금 1백25달러를 징수했다고 한다.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와 땡볕을 피하기위해 도로변에 임시로 쳐놓은 소형 텐트도 도로법 위반이라고 해서 철거해야 했다. 구호를 적은 대형 현수막도 몸에 두르는 간단한 것으로 바꾸도록 요구해, 시위는 시작할 때보다 모양새가 초라해졌다.

 그러나 동포들의 온정은 날이 갈수록 넘쳐 시위대를 감격시키고 있으며, 특히 젊은 유학생들이 맛있는 점심을 날라주어 고달픔을 잊고 있다고 홍사무장은 고마워 했다. 홍사무장은 또 "가끔 집 생각이 날 때도 있지만 후원회 형제들이 어찌나 잘해주는지 딴 생각할 여유가 없다"면서 "그간 우리 일행이 한 사람도 몸져 누운 일이 없는 것만도 다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귄위 있는 인권옹호단체인 헌법권리위원회(CCR)가 피코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한국피코의 모회사 대표인 버나드 히치콕씨를 상대로 체불노임 및 퇴직금 지불청구소송을 7월12일 연방법원에 제기하기로 했다. 60년대에 창설된 이래 인권옹호 사건 처리에 많은 공적을 남긴 헌법권리위원회는 무료로 맡은 일을 처리하는 비영리단체이다.

 피코사건을 맡고 있는 헌법권리위원회의 프랭크 딜 변호사는 "밀린 임금과 퇴직금 등 모두 80만달러를 지불해주도록 회사측에 요구했다"고 밝히면서 "회사측 재정 형편이 벌로 좋지 않아 보여 손해배상은 청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의회 로비활동도 적극적으로 펼 예정"

 딜 변호사는 "헌법권리위원회가 처음 다루는 국제적인 사건이지만 노조측이 승소할 확률이 높다"고 낙관하고 있다. 앞으로 한달이 중요한 시기가 될 것 같다고 내다보는 딜 변호사는 "히치콕의 변호인이 똑똑한 사람이라면 피코노동자와 합의하도록 권유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승소할 가능성이 많다"고 재삼 강조하면서 "법정투쟁을 길게 끌고가 패소하면 엄청난 소송비용까지 물어야 되는데 장기 법정투쟁을 충고할 변호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회사측이 끝까지 법정투쟁을 벌인다면, 이런 소송은 2~3년 정도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헌법권리위원회는 미국에서 발생한 이와 비슷한 사건에서 노조측이 승소한 판례들을 1백건쯤 미리 조사한 후, 이 사건을 법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이 사건이 법정에서 해결될 경우, 외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 기업이 도망쳐 나오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선례가되기 때문에 피코소송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비중이 큰 사건이기 때문에 자기 외에도 다른 변호사 2명이 함께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후원회측의 崔노라씨(북미주인권연합ㆍ재미교포)는 제시 잭슨목사가 이끌고 있는, 유색인종 정치단체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단체중의 하나인 무지개연합(rainbow coalition)이 피코노동자들을 돕기로 결정했다고 전하면서 "앞으로 의회를 상대로 한 로비활동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과 살림을 버려두고 이국 땅에서 석달째 시위를 버리고, 이젠 단식가지 시작한 '피코아줌마들과 아저씨들'이 언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죽더라도 빈손으로는 못 돌아간다"는 한 원정대원의 확고한 결의와 절규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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