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그래, 난 안 죽을래"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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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목숨 빼앗는 부모 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자녀살해ㆍ동반자살 12건… 대부분 '부부간 불화'가 원인

 "맞벌이를 하는 데 지장 있어서" "부부싸움을 하다 홧김에" 등의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를 살해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6월 2일 30대 주부가 자기 집에서 국민학생 인 남매를 식칼로 찔러 살해한 후 자살한 끔찍한 사건이 뇌리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6월 7일에는 부부싸움 끝에 아내와 딸을 질식사 시키고 강도의 소행으로 위장하기까지 한 비정의 아버지가 경찰에 붙잡혔다. 또 6월 21일에는 장모와 어린 두 딸을 몽둥이로 구타해 둘째 딸을 숨지게 한 아버지도 등장했다.

 

수박서리 했다고 목졸라 죽여

 7월 들어서는 평소 손버릇이 나쁘던 막내아들이 수박서리를 하다 동네 사람들에게 들켜 문제가 되자 되자 혁대로 아들을 목졸라 죽인 어머니. "돈도 못 벌면서 웬 간섭이냐"고 대들었다 해서 큰 딸을 목졸라 죽인 아버지 등 인등을 저버린 부모들이 계속 신문지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 같은 사건들은 몇몇을 재외하고는 대부분 '죄없는 어린 자녀'들을 부부간 불화의 제물로 삼았다는데 공통점이 있는데 지난 6월 21일 춘천에서 발생한 남매살해사건은 '화목해 보이던 가정'의 주부가 충동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목매달아 숨지게 해 놀라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춘천 경찰서 관계자와 요선동 주민은 물론 애들의 아버지조차 생모가 저지른 극한 행동을 도저히 믿을 수도 납득 할 수도 없다는 반응이다.

 남매를 살해한 어머니 조영옥(가명.37.춘천 시 요선동) 씨가 아무 말 없이 애들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선 것은 21일 오후 1시경. 전날 과음을 해 결근하고 방에 누워 있던 남편 유모씨(32 · 언론사 근무)에게 점심상을 차려주고 난 후였다. 구질구질 비가 왔지만 조씨는 춘천 MBC방송국 부근에 있는 어린이 회관뒷산까지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갔다. 집에서부터의 거리는 약 4km. 평소에는 붐비는 길이었지만 비가 와서 인지 주변의 인적도 드물었다. 조씨는 벤치 위에 덩굴나무를 올려 그늘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지붕 달린 철제 기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때가 오후 3시경. 오는 길에 샀던 여자용 밴드 스타킹 세 켤레를 봉투에서 꺼내 기둥에 묶은 뒤 조씨는 차례로 아들 재현(7)군과 딸 수경(4)양의 목을 졸랐다.

 

이웃에선 "부부 금술이 좋았는데…"

 아이들의 숨이 끊어진 조씨 역시 아들이 매달려 있는 스타킹의 한쪽 끝에 목을 걸어 자살을 기도했다. 하지만 무게를 이기지 못한 스타킹이 끊어지는 바람에 실패하자 조씨는 인근의 위암호에 투신,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실패. 탈진상태가 된 조씨는 길위로 올라와 깨진 콜라병으로 자신의 왼쪽 팔목을 두 번 그었으나 힘줄만 다쳤을 뿐 동맥을 자르진 못했다. 관할 파출소의 C3 순찰차가 아파보이기도 하구 술취한 것 같기도 한  조여인을 발견한 것은 바로 이즈음이었다. 순찰차에 의해 오후 5시쯤 인성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조씨는 2시간 뒤 병원 관계자에게 경찰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조사로는 조씨가 평소 끔찍이 아끼던 아이들을 살해할 만한 특별한 동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남편 유씨가 술을 좋아해 가끔 부부싸움을 했고, 사건이 나기 바로 전날도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해 담배 갑으로 파리를 잡으려던 장남을 야단친 것 때문에 부부간에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는 정도이다. 그런데 다음날 남편이 숙취로 출근을 못하자 조씨는 오전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국민학교 1학년인 장남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아이들과 함께 바로 집을 나가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들이 세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할머니는 조씨 부부에 대해 "두사람 모두 얌전하고 경우가 바를 뿐 아니라 금술도 좋았다"면서 "2년간 함께 살았지만 큰 소리로 부부싸움하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사건이 난 날도 변 큰 낌새는 없었다"고 말했다. 조여인의 셋집이 위치한 요선터널위 서민주택가 주민들도 "남편 유씨가 술을 즐기긴 하지만 가정불화를 일으킬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으면서 "그 부인이 그날 잠깐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

 연애 결혼한 것 알려진 이들 부부는 평소 휴일이나 일요일이면 거의 어김없이 나들이를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250cc 오토바이에 네 가족이 함께 타고 나가는 등 '행복하고 단란한 가족'으로서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네 아주머니들은 "조씨가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음 뿐 아니라 하찮은 물건도 꼭꼭 가게 아닌 슈퍼에서 사다 씀 만큼 깔끔한 성격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한 고민이 누적됐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조여인은 현재 정형외과에서 척추압박음절(투신과정에서 입은 부상)로 4개월 진단을 받고 춘천의료원 제2병동에 입원 중인데 사건 직후의 쇼크로 불안한 정신상태를 보이던 입원 초기완 달리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어머니의 손에 의해 살해된 남매는 이미 화장터의 재로 사라졌고 조씨 또한 회복되는 대로 법의 심판을 받게 돼 평범했던 이 가족의 생활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돼버렸다.

 

정신질환 어머니 곁에 남매 방치했다 참변

 조씨의 경우처럼 명백한 동기를 찾기 힘든 돌발사건과는 달리 지난 5월 19일 의왕시에서 발생한 남매살해는 사전에 충분히 방지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방치해 불행을 자초했기에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아이들을 백운저수지에 빠뜨려 죽게 한 생모 김숙자9가명.31.의왕시 내손동 포일 주공아파트)씨는 87년부터 이미 정신질환을 앓아온 환자였다.

 안양 경찰서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씨는 사건 발생 전에도 정신분열증세로 안양신경정신병원에 두번 입원한 경력이 있고 올해 2월 26일 퇴원, 집에서 치료 중이었다. 그 때문에 같은 아파트 주민들도 김씨의 병세를 눈치채고 있었고 김씨 본인도 평소 이를 심하게 비관, 사건 전에도 세 차례 동반자살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사건 당일에는 딸의 병세를 염려해 집에 와 있던 친정부모(농업.경북 예천군)가 아침에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남매를 데려가려 했으나 김씨가 이를 거부하여 아이들을 남겨 놓아 결국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김씨는 친정부모가 고향으로 떠난 뒤인 오전 10시 30분경 아이들을 데리고 아파트에서 3km 떨어진 백운저수지(의왕시 학의동산82)까지 택시를 타고 가 저녁무렵까지 별탈 없이 놀다 오후 7시경 집으로 돌아왔다. 남매와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할 작정이었지만 막상 현장에서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심을 굳힌 김씨는 남매를 이끌로 다시 현장으로 가서 저수지 위 다리 30m 부근 난간이 없는 곳까지 들어갔다. 김씨는 울부짖으며 저항하는 아들 문진태(6)군을 오른쪽에, 딸 숙영(4)양을 왼쪽품에 꿀어 안고 수심 6m인 저수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숨이 짧은 아이들은 곧 숨졌으나 김씨는 인근 식당 가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C3 순찰대에게 구조돼 파출소로 옮겨졌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에 의해 다시 안양신경정신병원으로 이송됐다.

 

지극히 '한국적인' 사건

 야외에 있는 손님상을 치우다 그 장면을 목격한 인근 식당 형제상회 여종어원은 "밤 8시 40분경 한 아주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수문까지 올라왔는데 '엄마? 나 안 죽을래'하는 애들의 울부짖음이 들렸다"면서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냥 야단치려는 줄 알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는데 그 순간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이미 아무것도 뵈지 않았다" 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너무 놀라 한동안 꼼짝을 못한 채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먼저 아이들의 머리가 떠오르고 김씨의 모습도 보이더라는 것이다. "곧 112에 신고를 해 경찰차와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 애를 어머니만 목숨을 건졌다"고 이 아가씨는 덧붙였다.

 김싸와 친분이 있는 포일 주공아파트의 한 주부는 "김씨가 작년 추석 전까지만 해도 이웃과 잘 어울리고 성격도 명랑해 환자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그 이후 급격히 병세가 악화돼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며 "그 뒤부턴 김씨가 '죽고싶다' '다 죽여버리겠다'는 소리를 여러 차례 했지만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줄은 몰랐다"고 안타까워 했다. 중매결혼한 남편 무노씨(36.회사원)에 대한 이웃의 평판은 좋은 편이다. 문씨는 아내의 발병에도 불구 부인에게 자상했고 아이들에게도 각별한 사랑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건 이후엔 쇼크가 커서인지 김씨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전인.

 현재 김여인은 증세가 악화돼 안양신경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 중인데 담당 의는 "발병원인이 지극히 복잡하고 사적인 것이어서 밝히기 곤란하다"며 "병세가 호전되려면 5년이상 꾸준한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사건은 정신과 환자에게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김씨의 경우 자식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불행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일을 저지른 만큼 지극히 '한국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친정 모들이 경찰에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어 김여인의 병력이 유전에 의한 것인지는 가려지지 않고 있으나. 둘째 아이를 낳은 뒤 증세가 나타난 점, 평소 남편자랑을 많이 하면서도 약간의 의부증이 있었다는 이웃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이번 사건 역시 부부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지금까지 비싼 정신병 치료비를 부담해왔던 남편이 이혼을 원하고 있고 김씨의 친정은 형편이 어려워 치료가 끝나기 전에 김씨가 병원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김씨는 평생을 폐인으로 살며 자기 아이들을 죽인 데 대한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도덕성 없는 현대인의 한 단면"

 이처럼 일련의 자녀살해사건은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간에 부부간의 불화나 부모 개인의 신병문제를 자녀학대나 동반자살을 통해 해결하려는 극단적인 행동임을 엿 볼 수 있다. 더욱이 위 두 사건의 경우는 부유하진 않아도 빈곤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생활수준의 가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기주의와 편리주의가 만연한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한 경찰관은 "자녀살해는 도덕심이 결여되고 목적의 이익만 생각하며 참을성이 없는 현사회 구성원들의 단면이 투영된 것" 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심리학과의 尹振교수는 자녀살해 사건의 원인을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분화 시켜야 하는데 몸에 붙어 있는 공생의 존재로 보는 데 있다"고 지적하면서 "개인적인 좌절을 당할 때 부모들이 아동학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 아이들을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복수 당할 염려가 없고 쉽게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윤교수는 또 "우선 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 즉 매를 때리는 행위가 사라져야 하며 매스컴에서 되도록 보도를 자제함으로써 '사회학습'에 의한 범죄확대를 막아야 한다"고 대책을 제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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