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결정한 미테랑의 속셈
  • 앙드레 퐁텐느(<르 몽드> 고문)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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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순간까지 그 누구도 유럽통합에 대한 프랑스 국민투표의 결과를 정확히 점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근소한 차이로 결판이 나리라는 점은 모두 동감이었다. 이러한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9월20일 투표에서 단지 1%의 차이로 '찬성'쪽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번 투표는 비록 가결이라는 결과를 얻었으나, 지난 초여름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프랑스 내에 확고부동하게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함이 밝혀진 이상, 이로 인한 전염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특히 영국에서는 국민투표를 하라는 움직임이 점차 고조되고 있으며,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하원에서의 비준이 쉽지 않으리라고 실토하는 형국이다. 그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정부를 비롯한 각계 각층에서 이번 조약의 가장 핵심적인 목표 중 하나인 단일화폐 사용 문제를 차후로 미루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독일 국민은 마르크화를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화폐로 여겨 마르크화를 불안정한 정세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어책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영국의 파운드화를 유럽 통화 체제의 영향권으로부터 이탈하게 한 최근의 소용돌이가 독일 국민의 불안 심리를 더욱 자극했음도 놓쳐서는 안된다.

 분위기가 이런데 프랑스 국민투표 가결로 말미암아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추구하는 정치 ·경제 · 금융 통합에로의 길이 확고하게 다져졌다고 말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과장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압도적인 차이로 가결되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여파를 몰아 아직도 망설이는 이웃 나라까지 찬성으로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가장 큰 저해요소가 사라졌을 뿐 또 다른 어려움이 가로놓여 있다. 그러므로 조약재협상을 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협상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불확실하다.

 1% 승리에 갈길은 첩첩산중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와같은 상황에서, 프랑스가 전적으로 합헌적이며 아무런 물의도 빚지 않았을 국회 비준 방식을 마다하고 국민투표에 회부한 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였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조약 비준 문제에 국민의 승인을 받기로 결정한 미테랑 대통령의 의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의 비준에 장엄한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통합유럽을 건설하는 데 프랑스의 무게를 더욱 증대시키고자 했으며, 고령과 장기집권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비판이 점차 드세어지는 시기에 개인적인 승리를 얻고 싶어 했다. 또 야당 내부에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결사 반대하는 분파가 있음을 고려할 때, 몇달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하여 자신의 적수들을 분열시키려는 속셈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이 미테랑의 의도대로 실현되기에는 제반 국면이 유난히도 침체에 빠져 있다. 이미 프랑스 국민의 10% 이상은 실업자이다. 또한 저녁마다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소말리아를 비롯한 세계 도처의 기근 보도에도 불구하고 농부들은 유럽공동체(EC)의 지시에 따라 토지의 일부를 놀려야 하는 실정이다. 유럽대륙을 휘몰아친 통화 위기 때문에, 이를 제어하지 못한 관계기관에 대한 신임은 깎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높은 투표율은 민주주의 진일보 시사

 정치가들은 잘못되는 일에 대한 책임은 으레 브뤼셀의 유럽공동체 집행위원회에 떠넘긴다. 게다가 공동체 산하의 제반 기관이 유고슬라비아의 피비린내나는 내란에 종지부를 찍게 하는 데 속수무책이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유럽공동체 12개국이 공동외교 정책을 취할 역량이 있는가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게 한다. 공동외교정책 수립은 새 조약의 중점 목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조약문은 아주 길고 명료하지 못해서 최소한의 법률 · 경제학적지식을 지니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게다가 확고한 신념이 드러나 있지도 않으며 열광적인 참여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요컨대 이번 국민투표는 결과적으로 무익한 것은 아니었다. 70%라는 높은 참여율은 이제껏 유럽 문제에 무관심해 왔던 프랑스 국민이 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시사한다. 이로써 프랑스 국민은 손과 발이 묶인 채 몇몇 인재의 판단에 자신의 운명을 일임해버릴 의사가 없음을 표명했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가 한걸음 진보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프랑스의 이름으로 말하는 국민 개개인이면 누구나 자기가 한낱 '테크노크라시'(전문기술관료에 의한 정부)가 아닌 진정한 국민전체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점을 역설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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