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인간은 왜 祭物로 정화되는가"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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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 화신제 펴낸 작가 柳在用씨

 모든 작가의 연보가 그렇지만 柳在用씨(54)의 연보는 보다 각별하게 읽힌다. 강원도 김화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47년, 11세 때 고향에서 추방당한다. 열다섯 나이에 서울에서 6  25를 맞은 그는 그 무렵 심한 노동과 영야부족으로 관절염에 걸린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이 그에게 준 병은 치유되기는커녕 척추염으로 번진다. 징병신체검사에서 그는 '평생치료'(불치)라는 판정을 받는다. 이때부터 6~7년간을 불구의 몸으로 누워 있어야 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책 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꿈꾸기(백일몽)였다. 남다른 습작기를 거쳐, 65세 그의 나이 서른에 문단에 나온다. 그의 오랜 투병은 이 땅의 모든 이들이 겪어온, 그리고 겪고 있는 분단의 아픔으로 확대 해석된다. 허리가 잘린 한반도처럼 그는 아직도 척추가 좋지 않다. 그가 실향민들의 삶과 의식세계를 천착해온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워보인다. 지난 6월 소설가 1백7인이 뽑은 오늘의 작가 10인에 선정된 그의 작품세계는 '고향을 찾아가는 긴 순례'와 함께 '인간의 근원에 대한 탐사'가큰 기둥을 이루고 있다.

 유재용씨가 최근에 펴낸 창작집 화신제(한겨레 펴냄)에는 단편 5편과 중편 4편이 실려 있는데, 분단문제를 그린 중편 <달빛과 폐허> <그림자>와 단편<별>, 분단에 의한 폭력의 일반적 속성을 다룬 <생존방식>, 그리고 중편 <화신제>와 단편 <비상을 위하여>처럼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을 종교적 시각에서 깊이 있게 천착한 계열로 대별된다. "개별성의 심화가 바로 보편성"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祭物이라는 종교적인 상징을 관찰하면서 "인간은 왜 제물을 통해 살을 정화시키는가?" 라는 궁금증을 풀어헤쳐보이고 있다. 물론 그 답이 선명하게 제시되지는 않는다.

 그가 10여년 넘게 구상해온 끝에 완성한 <화산제>강원도 오지인 吐火里에 전해 내오는 화신제를 합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민속학자 尹교수가 참관하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그 마을에서는 예부터 원인 모를 방화를 예방하기 위해 매년 '불집' 을 지어놓고 제비를 뽑아 그 불집을 태우는 풍속이 전해져온다. 보름이 넘게 걸리는 이 화신제를 지방 관리들은 '두 시간짜리 공연물'로 만들려고 한다. 한 집단을 지탱해주던 '삶의 原型'이 상품화되는 것이다. 物神主義의 폭력이었다. 이에 저항하다가 방화선동자로 몰리는 윤교수를 통해 작가는 물신주의의 수레바퀴에 압살당하는 '祭物인간'을 그리고 있다.

 그의 초기 작들은 문제나 분위기보다는 강한 성격의 인물을 등장시켜 주제를 분명히 드러내는 소설들이었다. 70년대후반 <누님의 초상>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분단문제를 조명, 이후 <고목> <사양의 그늘> <짐꾼이야기> 등 실향을 다룬 작품을 발표해왔는데 작가는 "원고마감에 쫓겨 작품성은 늘 아쉬웠다"고 말한다.

 이번 <화신제>의 서문에는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누가 소설 쓰는 일에서 나를 해방시켜 자유를 안겨준다 해도, 나는 그 자유를 누릴 능력이 없을 만큼 소설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 같다." '청년시절에 '죽음의 병'을 끌어안고 홀로 누워지내는 긴 투병과정에서 얻어낸 소설 쓰기를 통해 분단 현실과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어가는 그의 단단한 작품세계는 그간 줄곧 그 성과를 인정 받아왔다. 그는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조연 현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월간문학에 연재중인 장편 무너진 계단 앞에서의 마무리를 하고 있으며 오는 11월부터 동서문학에 새 장편을 연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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