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게 계산된 ‘개방효과’
  • 김승웅 편집국장대리 ()
  • 승인 199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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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판문점내 경비구역 빗장 열기로

 판문점내 北側경비구역이 내달 15일부터 개방된다. 지난 5일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위원장 許錟) 이름으로 밝혀진 北側경비구역의 개방이유는 “(남·북한간의) 콘크리트 장벽을 허물어 버리고, 남북 사이의 자유내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해야 하기 때문”으로 되어 있다.

 북한측의 속셈은 무엇일까.  문맥상으로 나타난 표현 하나하나를 가지고 우선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개방시기를 내달 15일로 정한 이유는 그날이 광복 45주년이라는 남북한 공유의 기념일이라는 데서 일차적으로 착안한 택일로 보인다. 실제로는 북한측이 오는 8월13일부터 판문점에서 개최하는 소위 범민족회의에 남한의 全民聯과 全大協 등 반정부 급진단체의 대표들을 부담없이 참여토록 하기 위한 유인용 택일로 볼 수도 있다.

 또, 역시 내달 26일 안으로 열릴 남·북한총리회담을 염두에 두고 세계각국에서 모여들 외신기자들을 겨냥, 남·북한간의 긴장해소와 교류증진을 위해 북한측이 쏟고있는 노력과 열성을 선전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측이 개방의 구체적 이유로 ‘콘크리트 장벽’의 제거를 지목한 점도 주목을 요한다. 북한은 지난 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걸 지켜보다 마치 ‘남조선’에도 그런 장벽이 존해하는 양 “남북의 자유왕래를 막고 있는 콘크리트 장벽을 하루 빨리 제거하자”고 제의한 바 있다. 콘크리트 장벽이 한반도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한 서방언론들은 막바지에는 한국군의 방어용 탱크저지선까지 북한측이 말하는 콘크리트 장벽에 포함되는 걸로 보고 의혹의 눈을 남쪽에 돌리기도 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콘크리트벽을 지형지물로 이용하는 북한의 기발한 선동전략에 세계 언론이 휘말려든 셈이다.

 이번 판문점개방은 콘크리트 장벽에 이어 북한측이 올들어 두 번째로 시도하는 언론공략으로 볼 수 있다. 북한측의 이번 ‘개방’은 판문점의 지형이나 역사를 어느정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하등 뉴스가 되지 못한다.

 판문점은 53년 7월27일 한국전휴전과 함께, 다음해 11월8일字 협약에 따라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설정된 일종의 국제 公域이다. 이 협약의 주요 골자는 유엔군과 북한군 대표가 정례적으로 만나는 군사정전위(MAC)의 콘센트막사를 중심으로 지름 8백m의 공동경비구역을 둔다는 내용이다.

 이 협약에 따라 그때까지 ‘널문리’로 알려져온 15만평 넓이의 이 寒村이 일약 한반도 분단을 상징하는 국제무대로 둔갑하게 된다.

 판문점은 동서를 자르는 2백50km의 38도 선상에 지름 8백m의 길이로 파고든 5각형태의 구릉이다. 중앙에 7개의 콘센트형 간이막사가 30여년 전 모습 그대로 나란히 들어서 있고, 이 간이막사를 중심으로 남쪽구역의 ‘자유의 집’이 북측의 ‘판문각’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본건물인 군사정전위 본회의장의 허리 중간부분을 38선이 통과하며, 이 선을 남북으로 폭 1.2m의 장방형 책상 둘이 각각 5개씩의 의자를 거느린 채 마주보고 있다.

 공동감시구역내에는 원래 38선표지가 없었으나 지난 76년8월 2명의 미군장교가 30여명의 북한경비병에게 도끼로 참살당한, 소위‘미류나무 사건’ 이후 남과 북을 가르는 분계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이 분계선은 콘센트건물 밖으로까지 이어져, 1.2m 높이의 시멘트기둥이 10m 간격으로 판문점을 양분하고 있다.

 북한측이 개방하겠다는 구역은 바로 이 북측경비구역을 뜻한다. 이 구역의 개방이 지니는 효과는 이 개방으로 구체적인 수혜층이 누구냐를 따져보면 자명해진다.

 한국을 찾는 외국관광객의 스케줄 속에는 으레 판문점관광이 들어있다. 외국관광객들은 1인당 2만7천4백원을 관광회사에 내면 점심식사가 포함된 6시간 코스의 판문점관광에 나설 수 있다. 민족분단의 아픔이 현실로 나타난 이 비정의 지역이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있는 관광코스가 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판문점의 모양새는 유럽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동·서독 분단의 현장으로 찾던 ‘체크포인트 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분단하면 으레 베를린 장벽을 떠올리는 외국관광객들은 이번 북한의 조치로 38선의 콘크리트 장벽이 베를린 장벽처럼 제거된 걸로 착각하기 십상일 것이다. 북측의 이번 조치는 판문점장벽을 철거한 양 선전함으로써, 남·북한간의 긴장완화를 북측에서 주도하고 있는 인상을 외국에 심어주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판문점은 지난 59년 소련 <프라우다>紙의 평양주재기자였던 李東瀘씨가 이곳을 통해 남으로 탈출한데 이어 67년 3월 위장간첩 李穗根이 넘어온 곳이다. 또 72년에는 李厚洛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7월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와 함께 넘어서 평양에 간 곳이다.

 최근엔 林秀卿양이 平祝 관람을 마치고 귀국한 장소다. 한반도 최고의 과민지역을 상대로 벌이는 북한측의 이같은 ‘개방’공세로 정부는 지난번 콘크리트 장벽 시비 때와 같이 또 한차례의 해명이 불가피해졌다. 차제에 남북접촉의 창구를 판문점이 아닌 제3국의 대도시로 바꿔보는 방안도 아울러 검토해볼 시기가 아닌가 싶다. 李光燿싱가포르 총리의 말대로 공산주의자를 상새로 한 접촉은 “되도록 개방적인 장소로 이끌어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판문점은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습하고 응달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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