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밭에 드러누운 국회의 권위
  • 김재태기자 ()
  • 승인 199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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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잃은 여,야 문공위서 잇따라 충돌...국회 문 연 이래 최대의 폭력사태

7일 낮 12시5분께 국회 문공위 회의장. 李敏燮문공위원장이 호주머니에서 메모지 한장을 꺼내들고 “여야 간사가 합의한 것”이라며 개의를 강행하려 하자 평민당측  趙洪奎의원이 “원래 합의서에는 법안을 상정키로 한 대목이 없는데 변조됐다”라고 고함을 쳤다. 이와 함께 위원장석 주변에 몰린 30여명의원들의 몸싸움은 격해졌고 여기저기서 폭언이 튀어나왔다. 이와중에서 평민당 金泳鎭의원이 “깡패위원장”이라고 소리치자 민자당 崔在旭의원이 “넌 뭐야”하고 맞받아쳤다. 이에 김의원이 “너라니. 말조심해”라며 발끈, 위원장 책상 위에 있던 ‘이만섭’과 ‘위원장’이란 24cm×7cm 크기의 플라스틱 명패를 잇따라 던졌다. 첫 번째 던진 명패에 최의원이 코밑을 맞아 피를 흘렸다. 부상을 당한 최의원은 간단한 응급치료를 받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후에도 소란은 10여분간 더 계속됐다.

 11일 낮 2시5분께 같은 회의장. 전날 민자당의원들만 모인 가운데 기습적으로 변칙 상정한 방송구조개편 관련 3개 법안 수정안을 강행 통과시키려는 민자당의원과 이를 저지하려는 평민당의원들간에 또다시 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양당의원이 서로 뒤엉켜 밀고당기는 몸싸움 도중에 국회 경위 2명까지 가세, 평민당 조홍규의원의 행동을 제지했고(조의원은 이 과정에서 가슴부분을 다쳤다고 말한다) 곧이어 민자당 신하철의원이 왜소한 체격의 조의원을 들어올렸다. 이 때문에 조의원은 허리를 다쳐 병원으로 실려갔다.

 국민의 代議기관인 국회내에서 명패 투척과 힘으로 동료의원을 다치게 한 사건이, 그것도 며칠새에 잇따라 일어났다. 과거 6대국회에서 金斗漢의원이 대정부질의 도중 국무위원석을 향해 악취가 풍기는 더러운 물을 뿌린 사건이 있었고, 7대국회에서는 宋元英의원이 국회의장을 밀어뜨린 일도 있었지만 폭력상해가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60년대 이전까진 국회내 폭력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54년 참의원에서 여야 의원들이 난투극을 벌이던 끝에 여당인 자민당의 남성 국회의원들이 사회당 여성 국회의원 2명의 옷을 찢는 추태를 보였고, 결국 경찰이 동원되는 사태까지 겪었다. 최근엔 자민당의 하마다 의원이 공산당의 미야모토 의원에게 ‘살인자’라는 폭언을 했다는 이유로 중의원 예산위원장 자리를 물러난 일도 있었지만 70년대 이후 일본 국회에서는 여야간 어떤 격돌상황이 벌어져도 폭력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의정사상 유례가 없는 이번 의사당내 폭력사건이 국민에게 준 충격은 심각하다. 한 정치학자는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국회의원들의 소양과 자질에 심각한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사회의 폭력을 막기 위해 국민을 대표해 법안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폭력행사로 사회분위기를 해칠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대부분의 여당의원들이 동조하고 있다. 孫柱?의원은 “국회의원의 폭력사용은 의회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반면 평민당의원들은 국회내의 폭력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정치현실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홍규의원은 “나도 피해자이지만 국회의원의 폭행은 고의적인 게 아닌 한 별로 큰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국회가 대화를 하는 곳인데 그 대화가 안 되고 막힐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 현상태로라면 여당이 어떤 독재적인 법안을 내놓아도 막을 길이 없다”며 거여의 다수에 의한 횡포로 이같은 상황이 불가피했음을 강조했다.

 국민들 사이에는 조의원의 주장처럼 이번 폭력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사건 자체보다 그 배경에 도사린 폭력구조에서 찾으려는 시각도 적지 않다. 11대 국회의원을 지낸 한 정치평론가는 이번 폭력을 “힘의 균형을 잃어버린 정치의 부산물” 이라고 규정하고 “투쟁 일변도의 야당의 정치행태에도 문제가 있지만 야당의 실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날치기 법안통과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는 여당의 책임도 크다”고 말하면서 법적 절차가 무시된 국회는 파행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법대 沈在宇 교수는 “물리적인 폭력행위보다 다수에 의한 정치적 폭력이 더 무서운 것”이 라며 “이번 국회에서는 의원폭행뿐만 아니라 운영면에서도 품위가 지켜진 것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폭력사태의 원인을 여대야소의 양당체제가 갖는 경직성과 운영의 미숙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국회를 지켜보면서 자유당시대로 퇴행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 2년간의 4당체제하에서 지금과 같은 여야의 극한대립이 있었느냐는 주장이다. 당시에는 여야중진회담 등 대화장치 활용도 원활했는데 3당합당 이후 대화는 여야 모두에게 대결의 명분축적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리에 오른 지 한달여밖에 안된 朴浚圭국회의장의 책상 위에는 지금 金正吉 민주당의원 등 4명의 국회의원이 내놓은 의원직 사퇴서와 함께 김영진 이민섭 신하철 조홍규의원등 4명에 대한 징계요구서가 놓여 있다. 그것은 온갖 폭언과 몸싸움이 난무했던 이번 임시국회가 남긴 일그러진 상흔이라고 볼 수 있다. 국회내에서 폭력이 근절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만큼 징계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크다. 그러나 이들 의원이 어떤 형태의 징계를 당하든, 이번 국회를 지켜보면서 짜증나는 ‘정치무더위’에 시달려야 했던 국민들의 실망과 불만이 말끔히 씻어질 수 있다고는 보기 힘든 상황이다. 거대 여당의 독주와 이에 맞선 야당의 극한 투쟁이 계속되는 한 폭력이 재현될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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