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 열고 할 말만? 깊은 골 여전
  • 샌프란시스코 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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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남 북 군축학술회의’

유럽식모델 한반도 적용 논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남?북한 군축학술회의는 비록 학술회의라는 꼬리가 달린 모임이었지만 분단 후 처음있는 일이요, 또 비공식적이나마 한국정부의 입장을 최초로 담은 군비통제 방안이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내외의 주목에 값할 만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에 관한 회의’로 불린 이 회의는 미국 서부 명문대학의 하나인 스탠포드대학 부설 국제안보 및 군축연구소가 마련하여 7월5일부터 사흘 동안 이 대학에서 열렸다.

 남쪽에서는 서울대 鄭鍾旭교수(국제문제연구소장)와 河英善교수 고려대 韓昇洲교수 연세대 安秉俊교수가, 북쪽에서는 외교부 산하 군축 및 평화연구소의 李亨哲연구실장 嚴永石연구원 安成男연구원이, 그리고 주최측인 미국에서는 존 루이스 소장 군축협상 대표였던 제임스 굿비씨 전 국방차관 윌리엄 페리씨 데이비드 할로웨이 연구위원 다니엘 오키모토 교수와 盧慶秀교수가 참석했다. 한국과 미국측에서는 각기 2명씩 모두 4명의 업저버도 참관했다. 이 가운데는 美국무부 스펜스리차드슨 한국과장과 북한담당관 로버트 칼린씨가 들어 있었다.

 비공개로 열린 이 모임에서 정종옥교수와 이형철연구실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남과 북의 군축에 대한 기본입장을 밝혔다. 이밖에 두세 사람이 연구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승주교수가 주변정세가 한반도 군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그리고 굿비씨가 유럽군축과정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이에 따른 열띤 공방전이 있었다.

 유럽의 경우 군축에 대한 동?서 양 진영간의 합의, 특히 독일 통일의 결정적인 계기가 동유럽 나라들과 동독의 민주화였다는 한승주교수의 발언이 북에서 온 사람들의 귀에 거슬렸는지 이실장은 “동독은 2차대전 후에 소련이 세운 나라다. 지금 소련이 흔들리는 마당에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는가”고 반박했다. 남?북 양측은 사흘 동안의 회의를 통해 서로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인 일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날 안병준교수가 주한미군이 역할에 대해 언급하면서 꼭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요지의 말을 하자 사흘 동안 별로 말이 없던 엄영석연구원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얼굴을 붉히고 일장 ‘설교’를 한 해프닝이 있었다.

 루이스 소장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털어놓고 할 말을 다 한 것만도 큰 발전이 아니겠느냐”고 회의성과에 만족을 표시했다. 하지만 막상 마음을 터놓고 군축문제를 거론하다 보니 양쪽 생각이나 접근방법이 의외로 차이가 크고 골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됐다.

 

“10년내에 남북통일 되리라고 확신”

 무엇보다도 왜 군축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부터 같지 않았다. 신뢰구축을 먼저 해야 한다는 우리측 주장을 북한측은 ‘분단 영구화음모’ 정도로 밖에는 여기지 않았다. 이실장은 “남한측은 유엔 단독가입을 시도하는가 하면 소련과 국교수립을 도모함으로써 결국 분단을 고착시키려는 저의가 뚜렷하다”고 주장했다.

 군축에 있어 유럽모델을 어떻게 한반도에 알맞게 도입, 적용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우리측은 유럽모델에 큰 관심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측은 우리 환경에 맞는 군축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우리측 안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실장은 이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민족간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는 한겨레가 당분간 갈린 상태인 만큼 끊어진 혈맥을 다시 잇는 과정의 하나가 군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한반도의 특수성을 고려한 새 형태의 군축 접근론은 미국측의 견해와도 일치되어 주목을 끌었다. 루이스 소장은 회의를 마친 다음날 한국기자들과 회견하는 자리에서 “한반도의 경우 거기에 알맞은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양쪽이 전쟁을 치렀고 아직 휴전상태라는 점, 유럽이 대륙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이곳은 바다를 끼고 있어 다른 점이 고려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북한대표와 사흘 동안 만나 개인접촉을 한 리처드슨 국무부 한국과장은 소득이 좀 있었느냐는 질문에 “많은 지혜를 얻었다”고 함축성있게 대답했다. 그는 우리 대표 한 사람에게 “남북통일이 2천년까지는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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