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망설이는 나토 고르바초프는 ‘실망’
  • 본 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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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에서 미국 입장 관철? 핵무기는 ‘최후의 수단’

7월5일에 런던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양기구) 정상회담을 앞두고 세계가 가졌던 기대는 나토의 변화 여부가 아니라 이 기구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달 전에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군사동맹에서 정치동맹으로 전환할 것을 선언한 뒤였기 때문에 나토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번 회담을 통해 밝혀진 변화의 내용을 보면 미국의 입장이 거의 관철되고 통일이라는 직접적인 이해 때문에 변화에 가장 적극적인 서독의 요구는 부분적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채택된 선언문을 놓고도 독일은 변화의 폭을 가능한 한 넓게 선전하는 데 반해 영국은 그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변화는 나토 공동성명의 수신인 격인 바르샤바조약기구, 특히 소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상회담에 앞서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나토가 23년 동안 유지해온 ‘유연반응 전략’을 포기할 것인가의 여부였다. 이번에 채택된 ‘변화된 나토에 관한 런던선언’은 그런 전략의 약화를 담고 있다. 전지방어를 포기하고, 핵무기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전진방어 포기의사를 밝히면서도 ‘적절한 때에’라는 단서를 달고 있을 뿐 아니라 전술핵무기와 재래식무기의 ‘흔합’을 고수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이핵무기를 현대화하기로 결의함으로써 부시 대통령이 강조했던 나토 전략의 근본적인 변화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공동성명에서 나토는 또한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불가침선언의 공동 채택을 제안하는 동시에 이 두 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가맹국에도 동참을 촉구했다. 원래 미국은 불가침선언을 나토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채택할 것을 제의했으나 서독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보다 격은 높이되 “공식적인 조약보다는 낮은” 공동선언을 제의하기로 합의했다.

 유렵안보렵력회의에 대한 관계를 결정함에 있어서 나토는 이를 상설기구로 하되 나토의 보조적인 기구로 위치를 설정하는 것임을 재확인했다. 독일은 이같은 상설 서기국 설치결의를 이번 회담의 주요 성과로 꼽았다.

 

서독의 ‘핵무기 철수’미국 반대에 밀려

 사정거리 30km 이하의 핵포대를 철수하는 의제에서도 미국의 입장이 관철되었다. 두 군사동맹이 보유하고 있는 핵포대가 사실상 동?서독만을 서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을 앞둔 서독에는 대단히 불편한 무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독은 동독에 주둔하고 있는 ‘소편 핵포대 철수’만을 조건으로 서독내 미국 핵포대의 철수를 결의하고자 했으나 동독주둔 소련군의 완전철수를 조건으로 제시하는 미국의 반대에 부딪혔다.

 소련공산당대회 직후 소련을 방문하는 서독의 콜 총리에게는 통일독일의 군사력 규모도 커다란 관심사였다. 소련은 2차 2+4회담에서 병력 25만을 상한선으로 제의하면서 통일 이전에 통일독일의 군사력규모를 매듭짓자고 거듭 촉구한 바 있다. 서독의 입장은 통일독일만의 군사력 규모를 별도로 결정하는데 반대하고 재래식무기 감축에 관한 제2차 빈협상 때 유럽 전체의 군축 차원에서 통일독일의 군사력 규모를 정하자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관해 이번 정상회담은 “제1차 재래식무기 감축조약이 서명되는 시점에 통일독일의 병력 규모에 관해 구속력 있는 언명을 할 것”을 선언했다. 서독에 빠른 결단을 촉구한 셈이다. 서독에서는 이 규모를 놓고 겐셔외무장관의 35만과 슈톨테베르크 국방장관의 40만 주장이 맞서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나토의 결의를 “올바른 방향으로의 중대한 발걸음”이라고 환영하면서도 “나토에서도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은 어렵다”고 덧붙임으로써 간접적으로 실망을 표시했다. 나토 정상회담을 앞두고 소련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 회담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부시 대통령도 소련의 이러한 깊은 관심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소련공산당대회기간 중으로 결정했고 “이 정상회담으로부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고르바초프를 도울 수 있는 신호가 보내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그 결의내용은 부시 자신이 회담에 앞서 예고한 바와 같이 “극적인 제안은 없었고” 다만 “세밀화와 가일층의 발전”만이 있었다.

 

미국, 소련경제 지원에 여전히 인색

 이번 정상회담이 고르바초프가 나토를 방문하도록 초청했다고 해서 그것의 상징적인 의미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고르바초프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당내 보수파로부터 굴욕적인 외교라고 비난받을 우려마저 있기 때문에 그 제안이 공허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나토 정상회담은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나토, 특히 미국의 차별적인 대응을 다시 한번 나타냈다. 미국은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에 대해서와는 달리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에는 여전히 인색하며 최근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선진 7개국 정상회담에서도 이것이 완화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서독의 유력 주간지《슈피겔》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서독이 소련에 제공한 2백50억마르크의 조건없는 차관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렸던 나토 국방장관회담에서는 주로 중부유럽을 겨냥하고 있는 지대지 단거리 핵미사일의 철수를 발표하면서 동시에 소련 영토에까지 이를 수 있는 공대지 핵미사일을 90년대 중반에 도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필요에 따라 서는”전술핵무기를 현대화하기로 결의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서독내 핵포대 철수 조건으로 동독주둔  소련군의 전면 철수를 내세웠다. 따라서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나토 사무총장의 소련 방문도 초청자인 소련의 ‘유럽공동의 집’건설 의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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