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숨통 그린벨트
  • 김종환 사회부 차장 ()
  • 승인 199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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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가진 자에겐 ‘굴레’

중 개축 못해 주거상태 열악? 땅값 묶인 것도 큰 불만

당국의 환경보호 의지 빈약, 땅투기 ‘개척지’로 둔갑

 그린벨트 주민들은 최근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그린벨트의 철저한 보호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데 대응하여 20년째 묶여 있는 권리를 되찾겠다고 나섰다. 지난 5일 상경한 대구 둔산동 지역 주민들의 집단항의 소동이 그 본보기이다. 이날 아침 전세버스 편으로 상경한 40여명은 평소 그린벨트 보호를 주장해온 인사 3명을 차례로 찾아가 그린벨트 해제 반대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에게 가장 곤욕을 치른 이는 한국녹색당 창당준비위원장 宋淳昌씨. 최근 신문 투고나 방송 좌담을 통해 그린벨트 해제불가론을 펴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울 쌍문동 집에서 일행을 맞아 창동에 있는 사무실로 안내한 宋씨는 50분 동안 시달리는 과정에서 손찌검을 당해 어금니가 흔들리기까지 했다. 경찰로부터 사전통보가 있었음에도 “우리 쪽에 사람이 있으면 싸움이 된다. 나 혼자서 설득해보겠다”며 혼자 대항하다가 폭행까지 당한 것이다.

 

‘체육시설 설치허용’발설이 투기 부채질

 자연보전 등을 정강으로 내건 당의 지도자로서 책임감을 느낀 송씨는 다음날 곧장 대구로 내려가 둔산동 등 5개 그린벨트 지역을 직접 답사하여 실정을 파악하고 올라왔다.

 현지답사에서 송씨는 그린벨트 주민의 고충을 생생히 느꼈다고 한다. 우선, 개축을 못해 낙후된 주거환경에서 여러 식구가 사는 집이 많았으며, 개울 하나 사이로 몇배나 비싼 땅을 보는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돈있는 사람이 사서 지은 별장 등에서 느끼는 위화감도 무시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집단행동 유발 소지를 안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대구 둔산동 이외에 서울 하일동과 거여동, 경남 양산군 장안읍 등이 있다. 중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고덕지구의 아파트 단지와 마주 서 있는 하일동은 찌들 대로 찌든 삶의 모습이 역력한 낙후지역이다. 고리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계기로 한 지역이 몽땅 개발제한구역에 묶인 장안읍 주민들은 최근 임시국회에 해제를 요구하는 청원을 제출하고 있다.

 투기꾼들 사이에 그린벨트는 최후의 개척지로 통한다. 이미 값이 오를 대로 오른 주변지역에 비해 헐값인 개발제한의 땅을 사서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투기심리로 인해 수도권 지역 그린벨트 총면적 1천 5백66㎢ 가운데 80% 정도는 이미 투기꾼 손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린벨트 지역의 투기를 부채질한 것은 최근 건설부가 내놓았다가 철회한 그린벨트내 체육시설 설치 허용 계획이다. 계획이 보도되자 ‘올 것이 왔다’는 듯이 땅값이 치솟고 매몰이 달리게 되었다.

 이에 환경보호론자들은 5공화국 6공화국이 들어서고 나서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난 그린벨트 훼손행위가 스포츠시설 허용과 동시에 급증할 것을 경고하며 그린벨트 규제 완화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사실, 그린벨트의 훼손은 정부 주도의 대대적인 공공사업이 주도하고 있다. 과천의 제2정부종합청사 건립, 서해안 시회지구 개발, 서울 수유동 북한산국립공원 지역내의 통일연수원 건립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공공사업 대상지역으로 그린벨트를 선호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대규모의 땅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이미 개발된 지역에선 찾기 힘들다. 그보다 더한 매력은 땅값이 싸다는 점이다. 땅값이 싼 만큼 토지보상금이 적게 나간다는 예산절약의 명목하에 도시의 숨통이자 시민의 휴식공간인 그린벨트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린벨트 훼손에 정부가 오히려 앞장

 심각한 주택난을 타개하기 위한 주택공급 우선정책도 그린벨트 훼손의 주요 요인이다. 최근 서울시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에 따르면 80년 이후 89년까지 서울에서 녹지지역과 그린벨트 주변 풍치지구 등 9백89만평이 지목변경되거나 해제되었다. 그리고 올 하반기에는 자연녹지 1백41만평이 택지로 전환될 계획이어서 10년 사이에 줄어드는 푸른 공간은 1천1백30만평에 이르게 된다.

 정부가 택지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88년 이후 현재까지 서울에서 자연녹지가 택지로 지목변경된 곳은 중계동 일대 1백19만평 등 모두 2백53만평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따라서 건설부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한 가양?신내?장지 등 서울시내 7개지구 1백41만평의 자연녹지가 올 하반기에 택지로 전환되면 3년 사이에 3백만평에 가까운 녹지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공공개발 사업에 의한 훼손은 그린벨트 보호의 대세에 눌려 20년간 희생해온 주민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린벨트내에서 공공사업 때문에 집이 철거될 경우 인접 그린벨트 지역에 지을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 자체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헐리게 되어 딴 곳에 지을 권리가 있는 집은 ‘용마루’라고 불린다.

 전국그린벨트주민회 회장 金正吉씨는 용마루가 그린벨트의 훼손을 조장한다고 역설한다. “4천만~5천만원을 주고 용마루를 사서 경관 좋은 곳에다 법으로 허용한 지상 30평, 지하 30평으로 호화롭게 집을 짓습니다. 그리고는 용마루를 하나 더 사서 그 옆에다 근사하게 지어 놓고 호화 갈비집을 개업합니다. 여기까지는 합법적이지만 주차장이나 진입로 등 부대시설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불법훼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6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말썽이 난 호화별장이나 갈비집은 대부분 이에 속한다고 김회장은 말한다. 용마루를 사서 지은 호화주택은 주변의 초라한 집들과 큰 대조를 이루어 그린벨트 주민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등 부작용이 많다.

 용마루는 일반 철거민에게 주어지는 입주권과 같은 딱지는 아니다. 옮겨 지을 수 있는 허가를 받아 권리소유자가 자기 이름으로 지어서 파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과천 제2종합청사가 들어설 때만 해도 용마루값은 2백만원이었는데 지금은 4천만~5천만원까지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원용지 등을 헐값에 사서 택지로 용도를 바꾸는 돈있는 사람이나 힘있는 사람들의 행위도 녹지를 훼손함과 아울러 그린벨트 주민들의 피해의식을 조장한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다고 하지만 허가 과정에 땅주인과 관계 공무원 사이에 말썽의 소지가 될 부조리가 싹틀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년간 그린벨트 관리업무에 종사한 공무원들 중 5천여명이 처벌을 받았고, 그 중 중징계가 9백30명에 달하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그린벨트 보호론자들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를 가리지 않는 공평무사한 관리야말로 그린벨트 보전의 성공을 가름하는 열쇠라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다.

 현행 감시제도는 1백m마다 ‘개발제한구역’이라는 검은 글자가 쓰인 흰 표석을, 10km마다에는 감시초소를 두고 청원경찰 2~3명이 매일 순시하게 되어 있다. 이들을 감독하기 위해서 시?군?구에선 월 1회, 직할시와 도에선 분기별로 1회씩, 건설부에선 필요에 따라 수시로 순시하게 되어 있다.

 서울시가 최근 국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서 처리한 그린벨트 훼손 적발 건수는 모두 1백79건엔 달한다. 내용별로 보면 증?개축이 19건, 용도변경이 10건, 형질변경이 34건, 가설물이나 변태 비닐하우스 등 기타가 1백16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조치내역을 보면 1백28건에 대해선 철거, 10건에 대해 선 원상복구, 나머지 41건에 대해선 처리중이거나 고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린벨트 보전은 국민적 합의. 문제는 보상

 그린벨트 주민들도 보전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20년간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고 그동안 입은 피해를 보상받고자 할 따름이라고 金正吉 전국주민회장은 말한다.

 89년 2월 <도시계획 제한과 손실보상>이라는 논문으로 한양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지방행정연구원 주임연구원 李周熙박사는 보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린벨트 보전에 대한 국민저인 합의는 거의 본 것 같다. 보전은 이야기하기 쉽지만 피해를 당하는 쪽의 불만은 쌓이게 된다. 가급적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하는데 현금보상은 재원부족으로 어렵다. 보전 밑에서 희생당하고 있는 소유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국민 모두가 공공재로 누리고 있으니만큼 수익자 부담으로, 세금 감면 혜택 등 권리에 의한 보상을 고려해봄직하다.”

 정부 당국에서 그린벨트를 보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고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녹색당의 송순창위원장은 부유층의 각성을 촉구한다.

 “그린벨트가 성공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영국이다. 일본의 경우는 대표적인 실패사례이다. 60년대 중반에 도입했다가 잡종지와 나대지에 체육시설 같은 공공건물을 집어넣으면서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있는 자들이 자숙하지 않으면 자신들에게도 불똥이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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