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출범1년 시민운동 가능성 확인
  • 김재일 경제부차장 ()
  • 승인 199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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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제시 시위문화 창출 등 긍정평가 얻어

정의감 있는 중산층, 편한 마음으로 참여

 출범1주년을 맞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지난 7월7일 서울 명동YWCA 강당에서 열린 경실련 창립1주년 기념식은 회원과 시민 2백여명이 참석,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플래카드에 쓰인 “시민의 힘 모아 경제정의 실현하자” “투기풍조 바로잡아 불로소득 척결하자” 등 의 구호가 분위기를 돋우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이제까지의 소극적이고 방관적인 자세를 단호히 청산, 참여하고 행동하는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지난해 7월8일 학계 종교계 법조계 여성계 문화예술계 인사 5백여명이 ‘경제불의 척결’을 표방하며 발기한 경실련은 그동안 왜곡된 경제현실을 매섭게 비판하면서 토지?주택문제, 한국은행법, 금융실명제, 종합토지세 등 현안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왔다. 언론은 경실련이 제시한 정책 대안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정부 정책에 관한 경실련의 논평을 즐겨 인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의 활동으로 경실련은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운동이라는 찬사를 받는가 하면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민자당 탄생 이후 ‘현실의 벽’ 절감

 반면 경실련 지도부는 그동안 국민의 수동적인 자세 등으로 시민운동이 뿌리내리기에는 아직 우리 사회가 너무 척박한 풍토임을 확인함과 아울러 거대 여당의 출현 후 李承潤경제팀이 들어선 마당에 그들의 주장이 더욱 먹혀들지 않는 현실을 실감했을 것이다. 경실련 태동의 주역으로서 현재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는 徐京錫목사는 “운동방법론에 있어서 경실련의 비폭력 평화노선이 사회운동의 주류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경실련 활동1년을 자평했다. 그는 경실련 활동의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찾기가 어렵게 된 정치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현정권이 개혁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일이 더 중요한 임무”라고 말했다.

 현재 경실련의 전국 회원은 5천여명. 그중 80% 이상이 수도권에 산다. 회비로 매달 7백만원 정도가 들어오는데 이는 경실련 예산의 절반에 해장하는 액수. 부족액은 기업주?변호사 등 재력있는 회원이 특별기부금으로 충당된다. 경실련은 지난 1년 동안 각종 행사를 위해 2억원 정도를 지출했다. 서목사는 올해 안으로 회원이 1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장담했다.

 출범한 지 1년밖에 안된 경실련이 비교적 광범한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실련 회원인 한 대학교수는 “비판의식과 정의감이 있는 중산층이 편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운동이 우리나라에 없었다. 그런데 경실련이 출범하자 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참한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러한 동참 움직임이 중소기업인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에게 확산되고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경실련을 보는 눈이 다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임대차보호법 입안에 영향을 기친 경실련의 제안은 뼈아픈 악수로 지적된다. 당초에 경실련은 임대료 인상규제와 임대차기간 2년 연장 등 두가지를 주장했으나 정부가 후자만을 받아서 입법, 임대료 폭등 현상을 초래했는데 부작용을 미리 예측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경실련도 도위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또 토지공개념 입법과 관련, 경실련이 정부 원안 통과를 주장하는 등 너무 약한 입장을 취했다는 비판도 있다.

 진보적 계층의 경실련에 대한 눈초리는 따갑다. 서울대대학원(사회학) 백욱인씨는 “경실련이 경제정의의 실현에 기여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경제정의의 문제를 생산영역과 무관한 분배의 영역에서만 찾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경실련의 실체가 보잘것없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3월초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임대료 인상규제 촉구 시민대회’때 모인 시민은 5백여명이 고작이어서 동원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국민의 냉소주의가 심각한 장애물

 서목사는 내부적으로 회원을 조직화하는 문제, 전문가그룹과 운동가그룹간의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 등이 간단치 않다고 경실련 운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장애물은 국민 대부분이 냉소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점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실련 운동은 성공적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그것은 “시민운동의 활성화는 민주주의의 정착과 동일선상에 있기 때문” 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경실련 운동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혁명이냐, 아니면 개혁이냐를 판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경실련 정책연구위원장인 李根植교수(서울시립대)는 경제력 집중과 세제개혁에 대한 경실련의 기본 입장이 거의 정리된 상태이고, 농업문제와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연구결과가 몇 달 안에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또 “경실련은 주택 토지 금융 노동 등의 문제에 있어서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 입장에서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실련의 조직 중 특이한 것은 의정감시단과 경제부정고발센터. 지난해 11월 발족한 의정감시단은 경제정의 실현에 기여한 의원과 역행한 의원 명단을 국민에게 폭로하기 위한 조직이다. 지난 6월 설립된 경제부정고발센터는 현재 20여건의 고발을 접수, 회원 변호사들이 이를 조사분석중이다.

 1년전 참신한 충격을 던지며 출범한 경실련. ‘법테두리 안’에서의 온건개혁 노선과 경제문제에 초점을 맞춘 대중운동이라는 점. 그리고 구조적인 불균형 문제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시기 등 여건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가운데 경실련은 비교적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실련 운동의 성공 여부를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 겸허한 자세로 일관되게 정론을 폄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모으고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뿐 아니라 국민 속에 확고히 뿌리내릴 때만이 이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은 성공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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