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노동철새’ 한국에 ‘둥지’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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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취업자 증가추세 속 ‘추방’ 잇따라 ? 업계에선 “노동력 아쉽다” 호소

 지난 10일 오후 4명의 말레이시아인이 ‘한국잠입’에 실패, 김포공항에서 추방되었다. 한 외국항공사 여객기를 타고 김포에 도착한 이들은 출입국관리들에 의해 한국상륙 부적격자로 판정되어 서울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곧 다른 비행기로 떠나야만 했다. 이들 4명의 말레이시아인 외에도 5일에서 7일 사이에 같은 항공기편으로 서울에 들어오려던 네팔인 7명이 추방당했다. 항상 출입국 인파로 붐비는 서울의 국제 관문이지만 불법 취업을 노리고 한국행 티켓을 손에 쥔 채 서울을 찾는 외국인이 부쩍 늘어나면서 김포공항에서는 새 풍경이 벌어진다.

 최근들어 우리보다 경제사정이 못한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 값싼 노동력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다. 요즈음도 하루에 15명 안팎의 외국 근로자들이 김포를 통해 입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행색이 초라하고 입국목적이 분명치 않은 외국인, 특히 서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인은 매서운 눈초리를 하고 출입국심사를 하는 법무부 직원의 까다로운 검문대상이 되고 있다.

 정식으로 취업 비자를 가지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은 6천명 안팎으로,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이후 연평균 10% 이상씩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같은 증가율은 80년 초반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불법으로 취업하고 있는 사람을 합치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법무부는 하루 평균 8천명의 외국인이 한국을 찾고 있으며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6만여명일 것으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3개월 이상의 장기체류자는 약 2만5천명이고 합법적인 수속을 거쳐 교환교수?학원강사?기술고문 등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은 약 6천명. 그러나 당국은 불법이나 합법을 가리지 않고 국내에서 취업하고 있는 사람은 1만명 선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불법취업자’ 중 상당수가 필리핀,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동남아인이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선가 은밀히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고도성장과 올림픽 등 국제적인 행사를 계기로 한국이 바깥세상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朴英凡박사는 “해외인력유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라고 전제하고, “일단 일은 벌어진 상태이므로 이에 따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필리핀 여성들, 고급주택가에서 가정부 노릇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서 매일 밤 피아노를 치며 흘러간 외국 가요를 불러 취객들의 흥을 돋구는 토니 D씨. 그의 하루는 근처 비슷한 술집 다섯군데를 더 돌고나서야 끝난다. 그가 고국 필리핀을 떠나 서울에서 일하기 시작한지도 몇개월이 되었다. “고달프긴 하지만 필리핀에서보다 3∼4배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라고 D씨는 밝힌다. 그는 관광비자를 가지고 입국하여 취업하고 있는 이른바 불법취업자이다. “사정만 허락하면 한국에서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불안한 자신들의 처지를 감추지 못한다. 지금은 출국해버린 D씨의 전임자 역시 필리핀 사람이었다. 그의 일터에서 멀지 않은 고급 주택단지에는 그와 같은 고향 출신의 젊은 여성들이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데 그들도 대부분 관광비자를 받고 들어와 단속의 눈을 피해가며 돈벌이를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인들 중에는 서너달간의 정식계약을 맺고 호텔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등 ‘한국에서 자리잡은’ 사람도 적지 않다. 이란인이나 파키스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전보다는 훨씬 많이 눈에 띈다.

 외국인의 취업분포는 일류 호텔의 주방장에서 시작해 여객기 조종사, 학원강사, 프로축구선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지난 2∼3년 사이 달라진 서울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불법취업에 대한 단속이나 적발은 어려운 실정이고 다만 출입국관리소의 끈질긴 추적 끝에 밝혀지는 결과가 간간이 드러날 뿐이다. 지난해, 공항 근처 3개 제조업체가 파키스탄인을 불법으로 고용해오다 적발되어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많게는 1백만원의 범칙금을 물었다. 서울 장안평 소재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일하다 적발되어 출국조치를 당한 파키스탄인 등 16명도 불법취업 사례의 하나이다. 돈이 다 떨어진 불법체류자가 저지른 범행도 심심치 않게 신문 지면을 메운다.

 이같은 일이 빈번하지만 정부 부처마다 입장이 다를 뿐 아니라 그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외국 노동력 유입에 대한 적절한 교통정리가 뒤따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외국인에 대해서 어느 나라보다도 배타적인 일본도 몰려드는 불법취업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본의 현실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해, 80년대 들어 부쩍 증가하기 시작한 외국인 불법취업자 수가 현재 3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취업자격은 매우 까다롭다. 출입국 관리법 제15조에 규정에 따르면 외국인이 한국에서 취업할 수 있는 부문은 취재 기술 상용 투자 교육 고용 흥행의 7개로 제한되어 있다. 국내 노동력으로 대체가 가능한 그밖의 부문에 있어서의 외국인 취업은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해외인력 국내 수입을 놓고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논란은 요즈음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분당 등 신도시 건설과 관련, 태국 운전사에 필리핀 목공수, 인도 미장이, 방글라데시 인부를 부리자는 인력공급계획이 한때 건설현장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건설업체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체의 경영자들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쓰고 싶어한다. 경영자들은 ‘모셔오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국내 노동력을외국 노동력과 대체하기를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 그들의 바람은 최근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인 2세들에게 일자리를 주어 국내에 모자라는 노동력을 보충하자”는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제안으로 발전했다. 인력난에 허덕이다 못해 외국인 근로자를 쓰다가 적발된 한 중소업체 사장은 “전에 있던 외국인 노동자가 참으로 아쉽다”고 호소한다.

 

외국노동자 유입 많을 땐 후유증 심각

 이같은 업계의 바람은 정부의 확고한 반대에 부딪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실정이다. 구인난과 구직난이 겹쳐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왜곡된 노동력 수급 현상은 외국인 노동력 유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1차?2차산업 부문의 인력 수급 불균형은 지난 몇 년간 향락산업 등 서비스산업이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데서 빚어진 문제다.

 노동력을 단순히 생산요소로 간주한다면 외국인 노동력의 흡수가 별문제될 것 없지만, 상품의 수출입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일찍이 외국 노동자를 대거 흡수한 몇몇 나라는 그 후유증으로 크게 시달리고 있다. 서독은 50∼60년대 급속한 성장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정부의 적극적인 외국노동력 수입정책으로 대처했다. 그러나 서독의 외국노동력 수입 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터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유입된 수많은 노동자들은 장기 체류자로 바뀌었고, 그들의 일가친척까지 몰려들어 사회문제로 번진 것이다. 현재는 각종 혜택을 주면서까지 본국으로 돌아가줄 것을 유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기적으로는 급한 불이라도 끄고 보자는 식으로 외국 노동자를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너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朴박사는 말한다.

 값싼 노동력이 임금이 높은 국가로 이동하는 일은 자연스런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력의 이동은 상품의 이동처럼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고, 아직까지 중동지역 국가를 제외하곤 인력의 대규모 이동이 제한되어 있다.

 아시아 최대의 인력 수출국으로 전락해버린 필리핀의 경우,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약 8만면의 남녀가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취업하고 있다. 그런 속에서 사기?추방?성폭행 등을 당하는 필리핀 취업자들의 고통스런 사례가 계속 알려지고 있다.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가족과의 장거리 통화내용을 소개하면서 눈물바다를 만드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필리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 정도이다.

 최근 노동력의 이동 문제는 우루과이라운드의 중요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쉽게 타결되기는 극히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어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 세계적인 경제 질서로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70년대 수만명의 한국 근로자들은 열사의 이국으로 건너가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러던 한국이 어느새 ‘노동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아직까지 외국 노동력의 유입이 그리 심각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예견되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세심한 준비가 있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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