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 잃었지만 ‘경제정의’ 터득
  • 편집국 ()
  • 승인 199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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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호수 노점상 22명 “정치성 배제하고 현실 개선할 터”

 석촌호수 노점상 22명은 경실련이 출범 1주년을 맞아 ‘기억하는 사람’으로 선정돼 경실련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노점상을 대표하여 감사패를 받은 金○培(48)씨는 “경실련 운동은 이 메마른 사회를 적시는 한줄기 소낙비다”라고 말했다.

 경실련이 그들을 감사패 수여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시민운동의 밑돌을 쌓는 데 가장 헌신적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계를 꾸려가기에도 바쁜 틈을 내어 경실련 활동에 동참해왔다. 경실련 행사 참여, 모금운동, 포스터 붙이기, 설문조사, 회원들에게 우편물 보내기 등 온갖 궂은일을 맡아했다. 李文玉?감사관을 돕기 위한 바자회 때는 김밥을 말아 손님들을 대접하기도 했다.

 그들이 경실련과 인연을 맺기는 지난해 7월 그들의 생계수단인 포장마차가 석촌호수 근방에서 철거된 후 경실련에서 실태조사에 나서면서부터였다. 7월10일 새벽 5시 대부분 영업을 하고 있던 2백여개의 포장마차는 약 6천명 가량의 경찰병력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크레인 등의 장비를 동원, 그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삽시간에 포장마차들을 대형트럭에 싣고 가버렸다. 1주일 후 노점상 상대금지구역이었던 석촌호수 주변은 절대금지 구역으로 바뀌었다.

 석촌호수 포장마차 철거의 표면적인 이유는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점상들은 공권력 발동의 배후에 롯데측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믿고 있다. ○○子씨는 “몇년을 고생해서 일궈놓은 상권을 자기네들이 장사하려고 빼앗아갔다. 롯데월드 직원들의 부인들에게 분양하여 매점을 내줄 계획이었으나 말썽이 나니까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점상들은 롯데월드와 송파구청을 오가며 2달간 매일 집단항의를 했다. 덕분에 석촌호수 주변은 노점상 절대금지구역에서 준절대금지구역으로 완화됐다.

 포장마차가 철거?압류된 후에도 대부분의 노점상들은 단속반원과 숨바꼭질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포장마차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22명의 노점상인들은 그들과는 달리 서울시에서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는 포장마차를 운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여자들은 파출부에 나서고 남자들은 1일 고용 막노동판에 나가고 있다. 물론 그들의 소망은 다시 포장마차 영업을 하는 것이다. 경실련의 노력으로 서울시는 한 지역에 ‘풍물시장’을 지정, 포장마차 영업을 허용하려하나 송파구청에서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구청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미관상 안좋고 물색된 후보지가 구청과 너무 가깝다는 것 때문이다. 그들은 현 구청장이 ‘권위주의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노점상 22명은 지난해 11월에 노점상 회원 1백여명을 모아 경실련 노점상 모임을 조직했다. 김인배씨는 “전국노점상연합회와는 노선이 다르다. 정치성을 배제하고 먹고사는 일에 충실하면서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우리의 활동방향이다”라고 말했다. 또 全○子씨는 “경제정의란 것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여기 들어와 활동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며 “못사는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들은 앞으로 노점상 양성화를 위해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우리문제가 해결되면 초라하지만 노점상으로 초대하겠다.” 생계의 터전을 빼앗긴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훈훈한 인간미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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