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축선언’ 왜 나왔나
  • 온창일 (육군사관학교 교수) ()
  • 승인 199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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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위협 사라져 세계평화 주도 호기 판단 소련 보수파 약화 노려 …제3세계 핵무장 명분에 쐐기

 지난 9월28일 발표된 부시 미국대통령의 핵(주로 전술핵) 감축제안은 냉전적 국제질서와 전략이 탈바꿈하고 있는 지금 또 하나의 획기적인 선을 그은 것이다.

 핵의 공포를 줄이자는 이 제안을 세계 다른 여러 국가들이 거부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원수는 물론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옐친, 그리고 중국까지도 전폭적 혹은 유보적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소련의 실질적 군사 위협과 동유럽에서의 변혁으로 인한 공산주의의 팽창적 속성에 의한 체제도전 위협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 시점이 세계 평화를 위한 중요한 제안을 주도적으로 내놓을 때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미국은 걸프전을 통해 지역분쟁 억제와 종결을 위해 구태여 전술핵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치적으로 부시 대통령은 소련 보수주의자들의 입지를 아예 무력화시켜 소련에서의 민주화, 혹은 자본주의화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적기가 지금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동서해빙에 따른 개별 국가의 영역확대는 냉전기의 집단안보 개념에 의한 집단행동보다 개별적 상황에 따른 미국의 개별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전개로 미국은 전쟁억지 수단으로 현지배치보다 좀더 융통성있는 전략태세의 유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더욱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미국과 소련의 군비부담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시 대통령은 지금이 획기적인 핵감축 제안의 시기라고 결정한 것이다.

 군사적인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제안과 행동은 소련을 상대로 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미국의 나토 동맹국, 기타 동맹국 및 다른 세계 국가의 순이다. 이번 제안 역시 이들 국가 혹은 국가군을 상대로 이루어졌다.

 소련의 경제개혁을 지원해야 하는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소련의 정치개혁을 먼저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를 위해서는 소련의 군비축소가 전제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련의 안보 콤플렉스를 완화시켜 소련 보수파들의 정치 ·군사적 입지를 약화시킬 필요가 대두되었다. 따라서 이번 제안은 국가적으로는 주로 소련, 그 중에서도 보수파들을 겨냥해 나왔다고 보아 무방하며 전략핵에 관한 부문에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의 동맹국들 역시 이번 제안의 고려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이들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미국은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는 개념에 입각한 동맹체였다. 그러나 전략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한 안전보장의 신빙성이 의심받게 되고 전술핵 사용까지도 안전을 보장받아야 할 국가의 국민이 거부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소련이 서유럽 국가들의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지금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전술핵은 자칫 ‘옛 동독에서의 소련군’과 같은 위치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러한 가능성을 없애면서 미국 동맹국의 안전보장에 대한 미국의 융통성을 높여주는 이번 제안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 들 수 있는 대상국은 미국의 우방이나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 중 핵보유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이다. 핵의 군사적·정치적 매력과 상징성 때문에 핵의 확산은 계속 되어왔고 계속될 전망이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으로 보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국가에 어떠한 핵무장 명분을 줄 수 있는 미국 밖의 지역에 있는(공해를 제외하고) 전술핵을 철수시키는 것이 미국의 주도 아래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잇다는 판단은 미국으로 보아 당연하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국가군에는 이라크와 북한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려와 판단아래 이루어진 이번 미국의 제안은 소련을 주상대로 한 것이지만, 국제정치와 전략을 대결구조에서 공존구조로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하면서 한반도 주변의 상황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데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지상전술핵 철거 선언 내용에는 주한미군의 지상핵도 포함된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거와 핵무기 불사용을 전제조건으로 그 동안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핵사찰을 거부해온 북한에는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상핵 철거가 가시화되고 북한이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게 되면 남북군축회담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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