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영향평가 ‘눈 가리고 아웅’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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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끼기·짜집기’ 평가서 수두룩 … 개발업자가 대행기관 선정, 싼 용역비 문제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도입 된 지 벌써 10년 됐지만 아직도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민간환경단체들은 오히려 지역주민의 집단행동을 제어하는 ‘해결사’ 또는 ‘환경파괴의 면죄부’로서의 기능만 할뿐이라고 문제점을 따지고 든다. 그런가 하면 학계에서는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몇몇 ‘이름깨나 알려진’ 전문가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환경영향평가 90% 이상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라구요? 내가 알기로는 90% 이상이 엉터리로 만들어진 겁니다.” 張浩完 교수(서울대·지질학)는 “환경영향평가서의 대부분이 여기저기서 자료를 베껴내는 짜깁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장교수에게는 그렇게 분개할 만한 사연이 있다. 그 동안 환경처의 부탁을 받고 1백여건 이상의 환경영향평가서를 ‘감정’해오면서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오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이 건설하는 골프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를 감정할 대였다. 수질분석 데이터가 이전에 감정한 ‘지역과 시기가 다른’ 평가서의 데이터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평가서를 대조해보았더니 완전히 똑같았다. 대개 수질 분석은 같은 장소에서 하루의 시차를 두고 검사해도 다른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베꼈다는 게 명백했다.

 장교수는 환경영향평가서의 잘못된 부분을 찾아낼 작정을 하고 그 동안 자신이 감정해온 골프장 건설 황경영향평가서에 대해 하나하나 재평가를 해보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특히 남한강 주변 골프장 건설의 경우 지하수 분석·지표수 분석·토양오염 측정 분석·중금속이온 분석 등 현지조사가 필요한 항목은 어느 환경영향평가서를 보더라도 같은 데이터였다.

 아래의 환경영향평가서는 金相鍾 교수(서울대·미생물학)가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현대건설이 작성한 매립공사의 평가서를 ㅅ공사가 어떻게 베꼈는지 잘 드러나고 있다. 그 평가서의 5백11쪽을 펴보면 연필로 필요한 부분만 바꿔치는 수법을 사용 했다는게 드러난다(괄호 안은 ㅅ공사에서 바꾼 내용이다).

 9. 事後 環境管理 計劃
 본 환경영향평가에서는 매립사업과 공장건설(원유입하 및 제품출하를 위한 부두건설) 후의 환경변화를 현재까지 알려진 최선의 모델링 방법에 따라 예측하였다(으며 지대한 환경영향은 없을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렇게 채택 사용된 모델링 방법은…(중량) 이를 위해 다음 몇 가지의 사후 관리계획을 설정하고자 한다.

 1. 향후로부터 공업단지의 완공 및 공장의 정상 가동 후 10년까지 매년 계절별로 1회씩 수질, 대기질, 소음 등을 조사 점검한다(이 부분은 생략).

 2(1). 공업단지의 주거지역에서의 폐기물처리상태(송유관의 상태, 입출하시 원유의 유출상태)를 정기적으로 조사한다.

 3(2). 주변의 (해변) 생태계 변화를 매년 1회씩 측정한다.

 4(3). 준설지역(부두시설) 부근의 해수유동과 퇴적작용의 변화를 매년 1회씩 측정한다…(중략)

 사실 이런 ‘남의 것 훔치기’는 그래도 점잖은 편에 속한다. 아예 글자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표절하는 경우도 있다. 소문만 무성한 채 진상이 드러나지 않다가 지난해 초 처음으로 언론에 보도된 환경관련 연구보고서 표절사건의 주인공은 한국과학기술원(KIST)의 환경공학연구실장 신응배 박사. 당시 신박사팀은 수자원공사의 의뢰로 ‘한강주운 타당성 조사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서울시립대 유명진 교수가 서울시에 제출한 ‘서울특별시 수질오염 감축대책 연구보고서’의 한강본류 흐름, 장래수질 예측 등의 수질모델링을 그대로 베꼈다. 사건이 터지자 연구책임자인 신박사는 “연구원들을 일일이 감독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한다”면서 사임했다. 그는 현대 ㅎ대학의 환경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개발사업자 “평가서 뚝딱 만들어달라”
 그러면 왜 ‘짜깁기’ ‘베끼기’가 횡행하는 것일까.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운영되는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구자건씨(32)는 “환경영향평가를 의뢰한 개발사업자가 짧은 기간 내에 평가서를 ‘뚝딱’ 만들어내라고 요구하는 데다 연구에 쫓기는 대학원생들이 그런 일을 떠맡다보니 베끼기와 짜깁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국환경과학연구협의회가 82년부터 89년 10월까지의 환경영향평가서 2백77건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약 96%가 1년 이내에 만들어졌고, 65%는 6개월 미만의 기간이 걸렸을 뿐이다. 동부컨트리클럽 개발사업이나 이천 KAL건설사업 등의 평가서는 2개월만에 만들어졌다.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최소한 1년 이상 정밀한 조사를 해야 정확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는 게 환경전문가들의 일치된 주장이다.

 그러나 이미 개발사업계획을 확정해놓고 설계까지 끝낸 상태에서 “서둘러 삽을 들고 싶은” 개발사업자는 되도록 짧은 기간 내에 평가서를 작성하려 들게 마련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金丁勖 교수는 “이처럼 속성으로 만들어진 평가서는 1백% 신뢰할 수 없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라며 환경영향평가서가 개발사업의 인허가 필수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원생이 ‘대충대충’ 평가서 작성
 교수와 학생이 ‘도제관계’로 얽혀 있는 대학부설 연구소는 무보수로 일하는 대학원생들을 활용, 평가서 작성비를 거의 들이지 않고 돈벌이를 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이 점심값·교통비 정도만 받고 부지런히 짜깁기하는 것이다. 서울대 해양학과를 나온 ㄱ씨는 “대학부설 연구소라는 것도 과연구실에 간판하나 더 붙여놓은 정도에 불과하다. 대학교수가 돈 잘버는 이유가 별거 있겠느냐”며 이런 사실을 당연하다는 투로 말한다.

 환경처에서 제시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지침을 보면, 자연환경 생활환경 사회경제환경 분야에 걸쳐 지나치게 많은 항목을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쓸데없이 평가서만 두툼해질 뿐 오히려 엉터리 평가서가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몇 번 하다보면 어떤 틀이 있다는 걸 안게 됩니다. 대학원생들이 뭘 알겠습니까. 그냥 여기저기서 뽑은 자료를 그 틀에 끼워넣는 겁니다.” 서울대 한 대학원생의 말이다. 대부분의 환경영향평가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 ‘그게 그거’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엉터리 평가서가 나도는 진짜 이유는 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 환경영향평가제도는 개발사업자가 돈을 대고 직접 대행기관을 선정, 개발사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도록 되어 있다. 張元 교수(대전대학·환경공학)는 “아직도 환경영향평가를 ‘환경의 파수꾼’으로 인식하지 않고 불필요한 요식행위쯤으로 알고 있는 개발사업자가 대행기관을 선정하도록 한 현재의 법은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고 주장한다.

 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하게 작성되는 근본적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용역비 산정의 뚜렷한 원칙도 없는데다 영세한 민간 업체나 대학부설기관 등의 대해업체가 난립, 과도한 경쟁을 하는 바람에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용역비로 만들어진 평가서가 속출하는 것이다. 개발사업자는 바로 그 구조를 이용, 적은 돈으로 자신의 구미에 맞는 평가서를 환경처에 제출할 수 있다.

정부, 수준 이하 환경영향평가조차 무시
 대행업체들은 대략 1건당 3천만~5천만원하는 형편없는 용역비를 받고도 이문을 남겨야 한다. 수준 이하의 평가서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예를 들면 골프장을 건설할 경우 개발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지질분석에만 6천만~7천만원이 든다는 게 지질학자들의 일반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골프장 건설 환경영향평가의 용역비는 대게 4천만원 내외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서울대 한 교수는 “모든 걸 완전하게 조사하려면 대행기관은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할 형편”이라며 “그렇게 환경보전을 위해 애쓰는 대행기관에게 왜 환경처에서 표창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꼬집기도 했다.

 게다가 웬만한 대기업들은 그룹 내에 대행기관을 갖고 있어 평가서를 스스로 제작해낸다. 자기회사가 하는 개발사업에 대해 꼼꼼하게 따지고 드는 평가서가 나올 턱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만 해도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주관한 1백59개 사업이 환경영향평가를 무시한 채 진행돼 환경처에 적발됐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나마 정부 스스로 지키지 않고 성장의 논리로 환경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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