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새 章 연 남북 유엔시대
  • 뉴욕 유엔본부.이석렬 특파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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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 연설 노대통령 ‘통일 3단계’ 제의 …평화적 해결 의지 좋은 평 얻어

 남북한 유엔 시대가 열림으로써 한국 외교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남북이 대립하고 있는 상태에서 북한을 의식하고 정통성 유지를 위해 국력을 소모하면서 1백48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양자외교에만 심혈을 기울여온 지금까지의 노력을 남북한 관계의 정상화와 국제지위 향상 및 국제협력 확대의 다자외교로 전환해야 할 때를 맞은 것이다.

 대통령을 수행하여 유엔총회에 온 金宗輝 대통령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외교로 국제평화에 공헌하기 위해 노력할 것과 남북한 관계에서도 이런 입장에서 유연하게 대처해나갈 채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李相玉 외무장관도 남북한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당사자끼리 합의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나가겠다고 말하여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라든가 유엔군사령부 해체 및 핵무기에 관련된 사항 등이 서울과 평양 사이에서 다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하지만 유엔을 방문중이 북한 姜錫柱 외교부 부부장은 유엔을 무대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뜻을 보여 서로 입장이 다름을 엿볼 수 있었다.

 盧昌熹 유엔대사는 “이제부터 남북한이 서로 헐뜯지 말고 오순도순 잘 협력해나가는 분위기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그는 곧 북한의 延亨? 총리를 따라 金永南 외교부장이 유엔에 오면 사정을 봐서 李相玉 장관과 자연스럽게 만나 외무장관 회담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화 협력 통해 한 나라 만들 것
 국력으로 세계 20위라는 상위권에 들어가는 한국의 지위에 걸맞게 대표부의 기능을 강화하여 외교활동을 벌여나갈 생각이라고 말한 노대사는 본격적인 활동은 아무래도 내년 총회 때부터나 기대할 수 있고 지금은 모든 것을 배우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하마슐드광장 국기게양대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총회장에 입장한 盧泰愚 대통령은 40년8개월이 걸려 회원이 된 지각생답지 않게 의젓한 모습으로 연단에 올랐다.

 제46차 유엔총회가 열리고 있던 지난 9월24일(현지시간) 아침 11시9분 1백66개국 대표들을 앞에 놓고 노대통령은 28분 동안 연설하면서 주로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그의 구상을 펼쳐나갔다.

 ‘평화로운 하나의 세계공동체를 향하여’라는 제목을 가지고 연설에 임한 노대통령은 세계가 화해와 협력을 이루어나가는 새 시대에 접어들어 남북한도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하나의 나라를 만드는 길을 걸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동서독이 하나의 의석이 되기까지 17년이 걸렸지만 남북한의 두 자리가 하나되는 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노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세 가지 원칙에 남북한이 합의를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절시대 종막을 내리자”
 무엇보다도 불안한 유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해서 평화협정을 맺을 것과 정쟁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 남북한이 실질적인 군비축소를 하는 데 앞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즉각 중지하고 국제기구의 핵사찰을 받는 데 동의할 것, 남북한 사이에 물자와 정보 교환은 물론 사람들의 내왕을 보장하여 단절의 시대에 종막을 내리자는 내용들이다.

 의석에 나와 노대통령의 연설에 시종 귀를 기울이고 있던 북한 대표들은 연설이 끝난 뒤에도 이렇다 할 공식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10월2일로 잡혀 있는 延亨? 총리의 연설을 통해 북한 입장을 밝히지 않을까 여겨진다.

 노대통령의 연설이 있던 날 공교롭게도 이라크 군대가 유엔에서 파견한 화학무기 및 핵무기 조사단을 바그다드에 억류한 사건이 발생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되는 등 시선이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뉴욕 타임스>는 외신면 머릿기사로 노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한국, 유엔에 통일에 대한 희망을 표시”라는 글을 실었다. “노대통령이 통일에 대한 3단계 제의를 하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을 즉각 중지하고 국제기구의 사찰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시작된 이 글은 북한의 핵무기개발이 한미간에 가장 큰 관심사가 되어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노대통령의 연설은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 소련 및 제3세계 대표들까지 한반도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돋보인 점을 지적했다.

 걸프전쟁에서 유엔이 법의 지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임을 확인했다는 노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라크대사 압둘 아미어 알란바리는 “별로 달리 느낀 것은 없다. 유엔을 앞세운 신세계질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내용이 항상 문제일 뿐이다”고 의견을 말했다.

 제3세계 대표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경청한 대목은 한국이 비록 선진국은 아니지만 힘닿는 데까지 여러나라를 도와나갈 방침이라는 우호협력 증진을 약속한 부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대통령은 “30년 전 한국은 1인당 GNP가 1백달러 미만의 농업국이었다. 지금은 교역량 세계 13위, GNP 세계 15위의 나라가 됐다”고 가난했던 나라가 신흥 산업국가로 탈바꿈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번 46차 총회기간 중에 국가원수 22명을 포함하여 총리 그리고 외무장관급 중에서 회원국 대표 연설을 하겠다는 사람이 모두 1백68명이나 된다. 하루에 줄잡아 10명 꼴로 연설을 하게 돼있다.

 또한 총회에 상정되어 있는 안건은 유고슬라비아 내전, 캄보디아 협상, 미국의 경제봉쇄를 풀도록 유엔이 결의를 하자는 쿠바의 제안 등 모두 1백45건이나 쌓여있다.

사람 혼 빼는 호들갑은 잘못
 한편 이곳 외교소식통은 남북한 유엔가입과 때를 같이하여 한국 정부가 추진할 것으로 알려진 동북아시아 경제협력체에 미국과 일본이 들어가 북한과 중국이 관할하는 두만강 지역 개발사업을 돕는 일은 좀더 두고보아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계획은 북한이 만들어 한국 등 여러나라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이런 저런 사정으로 남북한 교차승인의 가능성은 훨씬 커진 것으로 유엔 소식통은 점치고 있다. 한국과 중국과의 국교수립문제도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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