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층 ‘사치놀음’ 예능레슨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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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음대 교수들 ‘자정운동’ …쳇바퀴 예술계 입시제도, 학생만 ‘피멍’

 지난 9월10일 서울음대 교수 35명은 중고생 이하 레슨을 금지하기로 결의했다. 金容振 음대학장이 취임직후 처음으로 6시간에 걸친 교수회의 끝에 ‘개인레슨’을 금지하자는 교수들의 결의를 끌어낸 것이다. 이것은 지난 1월 음대 입시 부정 가짜악기 소동 등 추분이 끊이지 않았던 음악계의 ‘자정운동’으로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서울음대 교수들의 레슨금지 결의가 예능계 부조리의 뿌리를 뽑는 계기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예술계 내부에서조차 찬반이 분분하고, 동조하는 대학도 거의 없다. 이하여대 尹演慶 음대 학장은 “사실상 극소수의 레슨교수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 아닌가. 각자의 양식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학교차원의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경희대 金鳳任 음대 학장도 “교수 중에는 장학금을 주어가며 돈 없는 후학을 지도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머리를 돌리기도 했다. 또 이름 밝히기를 꺼린 모 음대학장은 “분명 속사정이 있는 듯 싶다”면서 “서울대학교의 특수사정을 드러내 시위성 결의”로 의미를 좁히기도 했다.

예술과 무관한 수험생 몰려
 당장 크게 타격을 받은 서울예고 鄭佑賢 교장은 서울음대 교수 19명이 ‘레슨불가’를 통보해옴에 따라 서울예고 학생 1백30명의 레슨을 지도할 다른 선생을 찾아 사방으로 교섭중이라면서 “오랫동안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정교장은 사회적으로 예능인을 육성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교수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썽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한다는 것은 교육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같은 반응은 그간 일부 입시부정에 가담한 사람들 때문에 졸지에 ‘덤터기’를 쓴 음악인들의 불편한 심기를 반영한다. 그러나 사실 언제부터인가 예술 본래의 의미가 왜곡된 채 특수층의 ‘사치놀음장’으로 전락한 예술교육장은 이 기회에 거듭나야 한다는 게 뜻있는 이들의 지적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예능교육 제도는 여러차례에 걸쳐 개정되어왔다. 능력있는 학생을 선발하기보다는 시비를 줄이기 위해서 낙방생에 초점을 맞췄고, 그 결과 수험생들에게 ‘합격요령’을 가르쳐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일선교사들의 지적이다. 우선 수업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학력고사의 경우, 에비고사와 본고사의 비중은 마치 ‘핑퐁 주고받기식’으로 이리저리 휘둘려져왔다. 심하게는 예체능계도 예비고사를 보도록 의무화한 74년의 경우 예체능계열의 커트라인이 일반계열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예술과는 무관한 수험생들이 대거 몰려드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했다.

철학 없는 예술교육 현장
 예능실력의 평가는 예술성에 대한 주관적 기준과 객관적 공정성의 확보라는 명분 아래서 대학과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서로 칼자루를 번갈아 쥐어왔다. 80년 당시 입시 부정사건이 터져 81년부터 실시됐던 ‘공동관리제’가 지난 1월 입시 부정사건 뒤 다시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환원된 것이 그 실례이다.

 지난달 22일 오전7시 서울 음대 휴게실. 커피를 마시던 기악과 4학년에 재학중이라는 한 학생은 졸업 후 어떻게 음악가의 길을 걷겠냐는 질문에 “음대에 음악가가 되러 들어오나요?”라고 되물었다. 그렇다면 ‘간판’따러 들어왔느냐고 하자 “그 간판이 15년 넘게 투자할 정도로 중요한지 요즘 회의가 든다”고 했다.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졸업반 학생이라는 점에서 다소 자조적인 측면이 있음을 감안한다 해도 이러한 현상은 어느정도 사실에 가깝다.

 학력이 곧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대학은 부모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또 조금만 하면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기대심리와, 자주 매스컴의 각광을 받는 유명 예술인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로는 ‘장미빛 길’로 인도하려는 부모의 욕심이 자녀를 ‘가시밭 길’로 몰아놓기도 한다.

 강남구 도곡동 ㄹ피아노학원. 칸막이가 쳐진 조그마한 방마다 6~7대의 피아노가 있다. 피아노를 치다보면 자연히 옆의 친구가 치는 소리도 들려온다. 밀실형 방에서 피아노를 칠 경우 악보를 읽기보다 외워서 치게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어린이 교습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바이엘 레슨’의 경우 “옆집 아이는 40번을 치는데 왜 우리 아이는 진도가 늦느냐”는 학부모들의 닦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피아노레슨의 일차적인 목적인 ‘악보 읽기’는 뒷전에 밀리고 마는 것이다. 손가락은 기계적으로 돌아가지만 정작 악보도 볼 줄 모르고, 귀도 열리지 않는 학생이 수두룩하다.

모의 대입고사 거듭하는 미술학원
 지난 9월21일 밤10시. 미술입시학원이 죽 늘어선 홍대 앞. ㅎ미술학원의 4층 건물 전체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수강생만 현재 1백30명이 넘는 ‘입시 미술산업’의 현장인 이곳에서는 이날부터 모의대입고사로써 소묘(석고데생) 시험이 치러졌다. 실전에 대비, 저녁 6시에 시작한 가상시험은 입학시험처럼 3시간이 지난 9시에 끝났다. 강사는 30여명의 학생들에게 요령을 알려주었고 즉석에서 채점을 하기도 했다. ㅈ대의 경우 데생지가 정사각형에 가까우므로 석고상이 뚱뚱하게 그려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든지, 목탄지를 사용하는 ㅇ대지망생은 목탄지의 가로무늬결을 잘 살려야 한다는 것 따위였다.

 20년째 이 학원을 운영해오고 있는 원장 朴權洙씨는 미술학원 ‘소질 없는 사람에게 기술을 가르쳐 대학에 보내는 곳’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레슨비는 과목당 25만~30만원. 그러나 소문난 입시 전문가들은 60~70만원을 호가하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대학에 가려면 최소 전공과 선택 두 과목은 들어야 하므로 웬만한 직장인의 한달 월급은 이들의 레슨비로 지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학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미술의 집단강습 비용은 개인레슨 위주인 음악에 비하면 ‘피라미’에 불과하다. 1주일에 1백명을 가르치는 것으로 소문난 어느 바이올린 교수의 경우 학부형이 찾아간 레슨청탁을 하면 시간이 없다면서 “15분밖에 보아줄 수 없다”며 은근히 레슨비를 인상하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예능계 부조리에 정통한 모씨는 ‘대학합격 사례금’이 최소 4천만~5천만원에서 일류대학은 1억원이 공정가격이었다고 전한다. 일부 교수들은 레슨으로 ‘음악재벌’이 되는 것이다.

“돈 덜 집어줘 떨어졌다”
 음악계 부정이 드러난 것도 사실상 ‘돈을 덜 집어주어서 떨어졌다’고 믿는 학부형의 제보 때문이었다. 검찰은 지난 1월16일 건국대 음악과 입시부정에 이어 서울대 음대목관악기, 이화여대 음대 성악과와 목관악기, 서울대 음대 첼로 부문 부정을 줄줄이 적발했다. 그동안 마피아 조직처럼 지하에 숨어 있던 이들을 검찰이 정확하게 짚어낸 것은 검찰의 수사가 동료나 관련 학부형의 ‘돈에 얽힌 제보’를 확인하는 절차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李南珍씨(《음악저널》발행인)는 ‘집중추적-부정이 음악계를 망친다’라는 기획기사 (《음악저널》91년 3월호)에서 레슨이나 입시부정 등과 관련된 사람은 △벤츠를 타는 음악인 △호화빌라에 사는 음악인 △골프를 치는 음악인 △빌딩 등 부동산투기를 한 음악인을 중심으로 수사하면 되다는 의견까지 제시해 눈길을 끈 바 있다.

 교육부가 지난 2월25일 발표한 92학년도 예능계입시는 필수사항과 권장사항을 두어 각 대학의 자율성을 살리는 것을 기본골격으로 하고 있다. 필수사항의 경우 채점은 전임강사 이상 5인 이상으로 구성된 평가위원이 담당하되 타 대학의 교수를 절반 이상 포함해야 한다는 것, 평가방법에 있어서도 최고와 최하를 버리고 산술 평균으로 하며, 책임은 대학 총학장에게 일임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권장사항은 실기고사 반영비율을 하향조정한다는 점이다. 교육부의 ‘지시’에 다라 올 입시에서는 비사범계열 예체능학과가 설치된 78개 대학 중 절반 가량이 총점에서의 실기고사 반영률을 지난해에 비해 0.2~26%씩 낮추었다.

 음대의 경우 단국대는 50%에서 42%로, 부산대는 40%에서 35%로, 조선대는 45%에서 20%로 각각 낮아진 반면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 경희대 숙명여대 등 9개 대학은 교육부의 권장에도 불구하고 올 입시에서도 최고수준이 50%의 실기성적 반영률을 유지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해마다 실기반영률이 약간씩 변동되는 것 이외에는 올해도 예술대학 입시요강에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진정한 예술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잠재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예술대 입시정책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입시기술을 터득한 ‘기술자’와 예술에의 ‘가능성’을 구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고쳐나가는 노력도 소중하다.

 미술실기의 필수과목인 소묘는 석고데생으로 실력을 판가름한다. 석고데생은 훈련으로 1~2년이면 웬만한 수준에 달한다. 이 석고데생은 이상적인 미적 규범을 모방하는 방식으로써 16~18세기 초까지 성행했고 20세기 초에도 지배적인 미학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소위 다다이즘이라고 하는 反전통적인 미학이 대두되고 특히 20세기 후반에서는 미술개념이 팽창, 대중문화 및 과학·상업미학으로 뒤섞이면서 유럽에서는 석고데생으로 실력을 판가름하는 방법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대신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을 슬라이드로 제작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입학자격을 심사받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예술은 시대변화 담는 그릇
 음악대학의 경우 시험방식의 문제점으로 실기 과제곡의 연주가 주로 거론된다. 실기 과제곡은 대학입시요간 7개월 전에 발표되는데 대부분 3~5분 동안 연주할 수밖에 없어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짧다. “연주하는 중간에서 끊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는 정진우 교수(서울 음대 기악과)는 “이런 방식은 ‘앵무새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외국에서는 ‘초견’이라는 것이 있어 학생이 전연 다루어보지 않은 악보를 쳐보게 함으로써 그 학생의 잠재된 음악성을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 金炯培 교수(서울음대 기악과)는 실기에 집중할 시점에서 학과와 싸름해야 하는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큰 모순이라고 재고할 것을 건의하기도 한다.

 이번 입시제도의 평가방법을 ‘대학의 자율’에 맡긴 것은 공정한 평가를 유도하기 위한 자구책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온갖 수단에도 불구하고 부정은 어디서나 존재한다. 특히 우리나라 학부형의 정보망이나 부정을 위한 재주는 높은 교육열을 증명이라도 하듯 고도로 지능화되어 있기조차 하다.

 현재 문화부가 추진중인 국립예술학교 설립안은 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데 학자들은 의견을 같이 한다. 이 법안에 따르면 이 학교는 실기위주의 예술인 전문양성기관으로 학사(4년) 석사(2년)과정과 예술학교 예비과정으로 개설된다. 학부는 음악 무용 연기 미술 과정이며 각 과정 입학자격은 고등학교 학력 이상 또는 학사학위 학력 이상인 자이다. 여기에다 영재를 조기 발굴 양성하기 위한 예술 실기과정을 따로 둔다.

 그러나 외국의 제도를 모방한 이 실기교육장이 우리나라처럼 학벌이 중요시되는 사회풍토에서 성공할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도한 국립예술학교는 다루어질 내용 자체부터 일반인의 삶에 뿌리를 둔 예술이어야 한다는 지적도 강도 높게 제기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成京姬 박사(예체능부 부장)는 “국민학교 교실에서 유행가 합창이 퍼져나오는 상황에서 예능교육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때”라고 강조하고 있다. 李康淑 교수(서울 음대 작곡과) 역시 “지금은 한 사람의 천재도 중요하지만 전 국민의 음악적 감수성을 기르는 조기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삶과 유리된 예술교육은 생명력이 없다는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전통미술 문화재복원 벽화 미술 출판미술 등 영역별 특성을 살려 실무영역과 밀접하게 연결된 프로젝트 속에서 미술 인력을 길러내는 기관이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술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듯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에 대한 이해의 수준과 도덕적인 신뢰 회복은 맞물려 있다”는 成完慶 교수(인하대 미술교육)의 말은 시사하는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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