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표, 광주 이용하지 마시오”
  • 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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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씨와 화해선언설‘ 파문 일단 진정 … “원칙없는 大選카드” 경계 여전



 “10월5일 김대표는 광주를 방문, 재야 인사를 비롯한 시·도민 앞에서 국민 대화합의 차원에서 광주항쟁과 관련된 더이상의 진상 규명이나 책임 추궁은 하지 않겠다면서 ‘80년 광주’에 대한 종결을 선언할 것 같다.”

 지난 9월28일께 광주·전남 지역 일간지를 일제히 장식한 ‘광주선언설’은 이 지역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이 충격적인 보도는 흔히 김대중 대표와 ‘정치적 공동운명체’로 일컬어지는 광주를 며칠 동안 뒤흔들었다.

 5월 민주화운동에 관련된 이른바 ‘5월 단체’들은 물론 상당수 광주시민들도 “이 선언이 사실이라면 대선을 위한 뉴 DJ 플랜에 광주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며 거센 반발을 보였다. 5월 단체들의 집합체인 5·18 광주민중항쟁연합(이하 5민련)이 광주선언과 관련해 △김대표가 5·18에 대해 혼자서 모든 대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가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의법조처를 꼭 정치보복으로 보는가 △전두환씨와의 망월동 동행참배나 화해선언은 대통령에 당선돼야겠다는 이른바 뉴 DJ 플랜의 일환으로 정략이 아닌가 △광주문제의 기본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변질돼선 안된다고 보는데 김대표의 견해는 어떤가라는 5개항의 공개질의서를 김대표측에 던졌다. 그런가 하면 일부단체는 김대표의 광주방문에 맞추어 민주당사를 점거 농성하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정략적인 뉴 DJ 전략’에 대한 반발은 지난 2일 급히 광주를 방문한 정상용 의원이 ’일부 측근들의 아이디어가 언론에 의해 과장 왜곡된 전말‘과 “진상 규명을 비롯해 광주문제의 해결 원칙이 선행되지 않는 화해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김대표의 뜻을 전달하면서 한풀 수그러들었고, 5일 김대표가 광주를 직접 방문해 진의를 밝힘으로써 불길이 잡혔다. 5민련 정동년 상임의장은 “김대표는 광주에 관한 한 어떤 해결책이든 광주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동의를 얻지 않고서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면서 “민주당과 광주 5월 단체들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건 원치 않는다”고 말해 사태가 진정됐음을 강조했다.

맹목적 지지에서 비판적 지지로

 사태는 진정됐지만 그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광주 지역 ‘5월 단체’ 관계자들과 상당수 시민들은 “뉴 DJ 전략에 광주가 정략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에 여전히 경계와 의혹의 눈길을 늦추지 않는 분위기다. 5민련의 한 관계자는 “김대표 자신이 추인하진 않았더라도 측근들 간에 이런 논의가 진행된 건 사실이다. 다만 이 지역에서 워낙 반발이 거세 포기한 것 같다”면서 “측근들은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치 대화합의 효과를 극적으로 보여줄 ‘광주카드’를 사용하려는 유혹에 시달릴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광주선언이나 망월동 공동참배안에 대한 광주 지역의 비판적인 시각은 이런 구상이 함축하고 있는 화해정신이 아니라, 그 구상이 지닌 몰역사성과 그 밑에 깔린 ‘광주를 텃밭으로 인식하는 김대표 진영의 오만함’을 향해 쏟아지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이광우 교수(전남대·정치학)는 “이제까지 광주시민들은 보복 차원이 아니라 민주화의 바른 자리매김이라는 차원에서 진상규명·학살원흉 처벌·광주시민 명예회복·보상 아닌 배상·광주정신 계승이라는 5대 기본원칙을 주장해왔다“면서 ”이 원칙은 아무리 광주시민의 지지를 받는 김대표라도 함부로 깨뜨릴 수 없는 일이다. 김대표 측근들은 김대표에 대한 이 지역의 지지를 과시해선 안된다. 이 지역민들은 김대표의 당선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유보하고 도와서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라고 주장했다.

 이 지역 소장 법조인인 유남영 변호사도 광주의 정치정서가 김대표에 대한 일체감에서 벗어나 비판적지지 쪽으로 선회하고 있음에 동의한다.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광주선언 파문을 놓고 김대표를 대통령병 환자로 보는 시각까지 대두했을 정도다. 김대표를 향한 지지는 그마나 민주정부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인 대안을 향한 지지에 불과하다. 이 지역의 14대 공천 결과와 지방의회의 난맥상도 민주당과 김대표에 대한 믿음을 상당 부분 훼손시켰다. 민주당은 이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결국 광주선언을 둘러싸고 야기된 불신과 갈등은 뉴 DJ만큼 광주·전남의 정치정서도 달라지고 있음을 입증했다. 이런 정서를 감안하면 김대표측 일부 측근들이 아쉬움을 갖는 광주카드는 기대되는 정치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너무 ‘위험한 카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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