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안낫는 것도 ‘농약 밥상’ 탓
  • 문정우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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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력 떨어지고 어린이 암환자 늘어



 배고픈 것보다는 배 아픈 것이 낫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일제의 수탈과 6·25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슴에 한이 맺히도록 굶주림에 시달려왔다. 60년대 이후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왔던 것은 따지고 보면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먹거리를 앞에 둔 요즈음은 정말 배곯는 것보다는 배앓이를 하는 것이 나은지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우리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화학농법을 도입한 덕이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해 오직 증산만을 생각하며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왔다. 그 결과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게는 됐지만 토양이 산성화하고 생태계가 파괴돼 더 많은 농약을 뿌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수출 위주 산업정책으로 말미암아 젊은 사람이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농촌은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유일한 대안은 더욱 많은 농약을 뿌리는 방법뿐이다.

 “농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앉아서 굶어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출하하고 나면 양심의 가책 때문에 다리도 뻗지 못하고 자는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먹고 살려면 농약을 열심히 뿌리는 수밖에는 없다”

 가톨릭농민회장을 지낸 최병욱씨(대전직할시 서구 괴정동)는 “도시 사람들이 실상을 알면 아무도 밥상머리에 앉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농정에 혁명적인 발상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최씨가 말하는 ‘실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선 통계숫자부터 알아보자.

 우리나라에 농약이 처음 도입된 것은 일제에 의해서였다. 일제가 군량미 조달을 위해 김해평야 호남평야 등에 화학비료를 뿌리면서 우리 산하는 농약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 뒤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농약사용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45년의 농약사용량은 4백t에 불과했으나 61년에는 4천59t, 74년에는 1만4천9백99t으로 불어났으며 지난해에는 무려 2만6천7백t을 기록했다. 최근 수년간은 농약사용 증가율이 다소 둔화됐지만 경지면적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감안하면 아직도 매년 10% 이상씩은 농약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는 상태라고 봐야 한다.

“농약치는 일로 하루 간다”

 들판으로 나가본다. 우리나라 농사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논에서는 어떤 식으로 농약이 뿌려지고 있을까.

 4월이 되면 못자리에 뿌릴 종자를 소독하는 일에 들어간다. 여기에 쓰이는 것은 유기 수은이 주원료인 살균제이다. 유기수은은 일본에서 그 유명한 미나마타병을 일으킨 주범이다. 이즈음 못자리 상토에는 못잘룩병 방지를 위해 살균제와 살충제를 섞어 뿌린다. 이앙하기 전 상토에는 도열병을 방지하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며 본답에는 제초제를 뿌린 다. 이앙하고 나서 또 한번 제초제를 뿌린 뒤 굴파리 등이 올 때 살충제를 다시 뿌린다.

 6월 이화명충 일화기에 살충제를 뿌리고 7월 중순에 살충제와 살균제를 뿌린 뒤 8월 이화명충 이화기와 9월말에 멸구가 생길 때 각각 또 한차례씩 여러 가지를 섞어서 뿌린다. 농약을 칠 때는 행여 효과가 떨어질까 봐 대개는 전착제(끈적이)를 섞어서 뿌린다. 게으른 농부 중에는 벼를 말리기가 귀찮아 수확하기 전에 레그론이란 약을 뿌려 논에서 ‘고사’시켜버리기도 한다.

 이상이 농민들이 말하는 벼농사 농약사용의 ‘기본’이다. 4월 종자소독에서부터 10월 추수할 때까지 모두 11차례나 각종 농약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벼농사 수입이 시원치 않아 그래도 농약을 덜 치는 편이다. 하지만 금방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과일과 채소류 농사의 농약사용량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몇해 전까지 농약농사를 짓다가 최근 유기농으로 전환한 안창기씨(45·충남 예산군 인주면 문방리)는 채소류 농사에서 농약남용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사실을 파농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쪽파는 심은 지 45~50일이면 출하하는데 그동안 사흘 걸러 한번씩 살충제와 살균제를 들이붓는다. 적어도 15회는 농약을 치는 것이다. 그 중에는 잔류기간이 70일이 넘는 고독성 농약도 포함돼 있다.”

 안씨에 따르면 어제 농약을 친 농산물이 오늘 출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서울에서 온 중간도매상들이 대개는 밭떼기로 입도선매를 하는데 그들은 언제 출하하는 것이 가장 이윤이 많이 남을까 하는 것만 생각하지 농민들이 언제 약을 뿌렸는지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수시로 밭을 둘러보고 농약을 뿌리는 게 시원치 않으면 아예 농민을 제쳐놓고 사람을 사서 잎이 시퍼렇게 될 때까지 농약은 마구 뿌려대기도 한다.

 과일농사에 관한 한 농민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과일 꼭지에 농약이 마르면 농사를 망친다“는 것이다. 그만큼 과일농사는 농약 치는 일로 해가 떠서 농약 치는 일로 해가 저문다.

 사과농사의 경우 봄에 꽃이 피면 꽃솎이를 한다. 꽃솎이를 하려면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데 기본적으로 농촌에 일손이 부족한 데다 모내기철과 겹치기 때문에 사람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농약을 뿌려 꽃을 떨구기도 한다.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병충해와의 전쟁은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농약통을 짊어지고 과수원에서 살아야 한다. 많은 경우에는 1년에 24차례나 각종 농약을 친다. 농약이 과일에 직접 들어붙는 것을 막기 위해 종이봉지로 싸줘야 하는데 인건비가 많이 들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해 벌써 19차례나 농약통을 졌다는 이규현씨(40·충남 예산군 고덕면 문곡리)는 “해가 갈수록 양도 늘리고 독한 약을 써야 한다”면서 ”올해 1만2천평 농사를 짓는데 농약구입비가 1천만원이 넘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농약을 많이 뿌리다 중독돼 쓰러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러면 말지요“한다.

방사능 못지 않게 위험

 농약으로 인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사람은 바로 농민이다. 요즘은 많이 주는 추세지만 지난 10여년간 거의 매년 1천명 정도의 농민이 농약에 중독돼 숨졌다. 목숨은 건졌지만 후유증으로 반송장이 된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조차 없는 지경이다.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이는 탓이기도 하다. 과일농사를 지으면 묘목일 때는 농민의 얼굴이 제 빛깔이지만 묘목이 점점 자라면 농민의 얼굴은 흙빛이 된다고 한다. 나무의 키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은 농약을 뒤집어써야 하기 때문이다.

 농약의 무서운 점은 피해자가 전국민이며 악영향이 자손만대까지 이어진다는 데 있다. 지난해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농어촌분과가 펴낸 <농약사용의 현황과 피해>라는 보고서는 “농약은 방사능에 못지 않게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우리 사회에서 최근 어린이 암이 점차 증가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최근 미국 천연자원보호협의회가 과일 야채 등에 묻어 있는 농약이 어린이 암을 유발하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매년 7백명이 넘는 어린이 암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허정회씨(약사·서울 영등포구 대림3동)는 “약국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요즘 들어 도시인들의 저항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여름감기에 걸리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감기에 한번 걸리면 좀처럼 낫지를 않는다. 이런 현상이 농약 남용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증산 위주 화학농법 버려야

 현장의 농민들이나 전문인 단체 등이 이같이 다급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지금까지 농약남용이 가져올 피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조사가 이루어진 적은 한번도 없다. 모 대학에서 농림수산부의 의뢰를 받아 농민들의 혈액 속에 포함돼 있는 농약의 잔류량을 조사했다가 결과가 하도 충격적이어서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가 전문가 사이에서 나돌고 있을 뿐이다.

 3년 전부터 유기농법을 도입해 서울 한살림과 직거래하고 있는 정선섭씨(충남 아산군 인후면)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특히 도시 소비자들은 농촌의 실상을 바로 알고 농민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생각해야 할 때다. 도시민들이 농촌에 내려와 풀 한포기라도 뽑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그들은 농약에 밥을 말아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개방 물결이 밀어닥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증산 위주의 화학농법은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아무리 농약을 많이 쳐서 증산해도 외국산 농산물과는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화학농법을 추방하기 위한 제2의 농업혁명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농민도 살고 소비자도 살고 잠자리나 굼벵이도 모두 살 수 있는 길을 빨리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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