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엔 추경 않겠다”
  • 박준웅 편집부장 ()
  • 승인 1991.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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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元植 국모총리

 鄭元植 국모총리가 정기국회 출석을 비롯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사저널》 창간2주년 기념호의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취임 직후 한국외국어대 학생들로부터 달걀과 밀가루 세례를 받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국민 뇌리에 깊은 부각되어 있는 정총리는 이제 추임 5개월째를 맞아 사회가 안정분위기에 들어가고 있는 데 무엇보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장에 나가 주부들과 만나고 지하철도 타보며 현장의 소리를 듣는 ‘동네 할아버지’ 역할을 하는 데 더욱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손꼽히는 교육학자로 전공서적과 논문외에 《머리를 써서 살아라》《정박사에게 물어보세요》 등 자녀지도에 관한 저서를 가지고 있는 정총리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총리직을 그만두면 어머니를 위한 교육을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우리사회가 이대로 가서는 안되겠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위기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히 경제사정이 아주 좋지 못합니다. 현 국면을 어떻게 진단하고 계십니까?
6공화국은 출범 이후 민주화를 제1의 국정지표로 삼아 추진해 왔습니다. 권위주의체제에서 민주화로 가는 데는 많은 진통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지난 3년 동안 겪어온 진통이 바로 그것을 웅변해 줍니다. 학원에서 노사현장에서, 혹은 그밖의 사회 구석구석에서 우리는 이런 진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른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정부로서는 민주화과정을 후퇴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를 계속 추진해왔고 이제 민주화는 일단 성취됐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지난 4월에 있었던 한 대학생의 불운한 죽음이 우리 사회에 많은 소요사태를 야기시켰고 그것이 극도의 혼란을 가져왔던 것도 사실입니다만 결국 국민의 성숙된 의식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에 화염병이 난무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서울시내에 최루탄 가스가 자욱했습니다만 그것을 막은 것은 공권력이라기보다는 국민의 힘입니다. 다만 경제문제 때문에 일부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는 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모든 경제 주체가 각기 맡은 바 일을 충실히만 해나간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위기라고까지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근로현장에서 일손을 구할 수 없다거나 저축보다는 일단 쓰고 보자는 과소비 풍조가 확산되고 있고,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우리의 미래에 우려를 갖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한 사회풍조가 오늘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속화시킨 것은 사실이지요. 모든 경제 주체가 각기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해나가야 한다는 얘기는, 정부는 정부대로 경제안정을 가져오기 위한 시책을 계속 밀고나가야 할 것이고 기업은 기업대로 본연의 정신을 살려서 일에 충실해야 하며,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근면성을 회복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수출에 있어 소위 클레임에 걸리는 불량률이 4.2% 정도로 높습니다. 일본·대만에 비하면 3배 정도 높은 수치입니다. 기술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근로자들이 제품을 만드는데 사명감을 가지고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우리가 그렇게 낭비할 만한 처지가 못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미풍양속인 근검절약 정신을 되찾아야겠는데 최근에 와서는 상당히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일부 특수층이 낭비하는 경향은 있지만 이제는 근검절약하자는 분위기가 상당할 정도로 확산돼나가고 있고, 또 그런 분위기가 된다면 낭비와 사치를 충분히 추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정부의 예산은 자꾸만 늘어가 물가나 인플레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긴축이나 근검절약에 역행하는 것 아닙니까? 내년에도 예산안만 해도 선거를 앞둔 선심 예산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가 이번에 제안하는 예산은 33조5천50억원입니다. 그것은 올해 총 追更을 다 포함한 예산에 비하면 6.8% 늘어난 것입니다. 24%가 늘어났다고들 얘기하는데 그것은 추경예산을 뺀 금년도 본예산에 비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년에는 추경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예로 보면 늘 추경을 안하겠다고 얘기하면서도 결국 1차 2차 3차까지 해오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과거에 歲計잉여금이 생겼기 때문인데 금년 추경예산에서는 내년도 세계잉여금을 축소시켰습니다. 내년에는 추경이 없다는 원칙하에 예산을 짰기 때문에 실은 그렇게 큰 팽창예산이 아닙니다. 또 하나는 범위 내에서 예산을 짜는 것이지 적자예산을 짜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그 만큼 들어오니까 지금 사업을 하자는 것이지요.

결국 국민에게 지나친 세부담을 강요하는 게 아닙니까?
국민 1인당 세액이 1백만원을 넘었다고 하지만 본래 지금의 세제를 개혁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동안 나라살림이 커지니까 자연히 세수도 늘어나게 되고, 그래서 에산이 커지게 된 것인데 이 점 하나는 이해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경제가 어렵게 된 것은 수입이 무붆별하게 늘어난 탓도 있지만 수출이 둔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수출이 둔화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동안 사회간접자본 시설투자가 빈약했기 때문니다. 외국 배가 인천 앞바다에 들어와서 며칠씩이나 체선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인천으로 오지 않고 일본이나 대만을 가거든요. 부산만 해도 아직 체선시간이 길어요. 그동안 부지런히 사회간접시설에 투자했어야 하는데 물가 잡을 생각만 해왔기 때문에 이것이 늦어져 결국 수출을 둔화시키는 근본원인이 된 것입니다. 전에는 서울에서 인천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30~40분 걸리던 것이 이제는 5~6시간 걸립니다. 5년전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부산가지의 왕복시간이 14시간 정도였는데 지금은 30~40시간이 되지 않습니까. 내년 예산을 보면 돈이 집중적으로 사회간접자본에 들어갑니다. 또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여기에는 10년동안 42조원을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우리 농촌이 살게 되는 바로 그 첫해가 내년입니다. 그래야 우리 농촌이 살게 되는데 바로 그 첫해가 내년입니다. 이러다 보니 예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걸 덮어놓고 팽창예산이라고 볼 수 없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내년에 여러 차례 선거가 있어서 그런 얘기들이 나오는데….
선거 선심용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이 취임할 때 공약한 사업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내년이 마지막입니다. 공약사업은 국민하고의 약속이니까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것을 선거 선심용사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대통령의 임기가 거의 끝나가면서 이른바 ‘레임덕 현상’이 빚어질지도 모릅니다. 총리로서 이러한 누수현상을 막고 국정을 차질없이 이끌어나갈 복안이 있습니까?
민주화를 한 마당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것을 전후해서 누수현상이 생긴다면 국가적 손실이자 행정의 비능률을 가져오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사정 차원의 규제나 단속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공직자들로 하여금 사명의식을 계속 가지게 하는 데 힘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공직자로서 맡은 바 본분을 끝가지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하는 식의 사명감, 공직자 본연의 이식을 가지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총리가 좀 고달프기는 하겠지만 국정 전반에 걸쳐서 이 구석 저 구석을 살피고 챙기는 일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생들의 폭행사건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이야기지만 그때의 느낌은 어떠셨습니까?
정말 저로서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입니다. 제가 다른 분야 출신이라면 모르겠지만 평생을 대학교육에 몸바쳐왔는데 바로 그 대학생들에게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참을 뭐라고 말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건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제 종아리를 대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얘기했는데 그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또 나라의 총리직을 맡고 잇는데 국가의 명에와 체통에 손상을 입힌 것이 죄스럽고 이를 어떻게 해야 회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폭행학생들에게 현상금도 걸려 있고 그와 관련한 사기꾼도 생겨났는데 스승의 입장으로서 학생들을 선처할 의향은 없으십니까?
제 심정이야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법치국가이고 학원질서도 필요하고 해서 개인적인 감정으로 사법부에 어떻게 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외대사건에 앞서 부산대와 세종대에서도 봉변을 당하셨는데 의도적으로 학생들의 감정을 촉발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국면전환을 해서 학생들에 대한 사회적 질타와 여론반전을 꾀하려 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지만 의도적으로 될 일입니까. 그때 외대에서 강의한 곳은 4층이었습니다. 여덟 번을 꺾어 내려오는데 발을 헛디딜까봐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의연하게 내려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의도적으로 구민 것이라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그리고 대학에 강의하러 가면서 경호원을 데려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명만 데려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시국을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내립니다만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부산대 얘기는 오보입니다. 4시간 동안 갇힌 것이 아니고 학생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종대에서도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차를 공격하는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나와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들고일어난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세종대사태 해결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되도록 연출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래도 사회안정에 도움이 되었다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요인이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보다는 제가 문교부장관을 오래 했습니다. 2년간 했으니까요. 그동안 교육개혁을 위해 꽤 의욕적으로 많은 일에 착수했지요. 요즘 전문대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이것도 그 당시부터 착수했던 중요한 사업중의 하나입니다. 앞으로 4년제 대학보다 전문대쪽을, 인문교육보다 직업교육을 강조한다는 것이 그 당시 채택된 방침입니다.

대학입시는 아직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의 하나로 남아있고 최근 들어 과외수업이 또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는데요.
사교육비가 연 7조원이 넘는다는 평가도 있는데 과외가 일부 계층에 성행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앞으로 직업교육이 강조되면 필요 없게 됩니다. 그동안 대학진학을 전제로 한 인문교육이 강조되어 왔고 그 비중이 70%에 달했습니다. 95년부터는 인문계와 실업계의 비율이 5대5로 바뀝니다. 그리고 사회분위기가 4년제보다 전문대에 몰리는 경향이기 때문에 일부 일류대학에 가려는 경쟁은 있겠지만 대학진학 자체를 위해 심하게 과외를 하는 분위기는 없어질 것입니다. 이 문제는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즘 세간에선 현대그룹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이번 현대그룹 조사에 어떤 배경이 있습니까?
요즘 같은 백일천하에 ‘괘씸죄’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재벌이라고 해서 손을 안 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재벌의 상속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내사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번에 드러난 것입니다. 현대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재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정치적 보복이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현대가 정부측에 못한게 뭐 있습니까. 그동안 나라가 정부를 위해 좋은 일 많이 한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22일 평양에서 남북 총리회담이 있는데 새로운 제안내용이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 제안내용은 아직 공개할 수 없고 그날 발표할 것입니다. 저로서는 꽤 희망을 가지고 다녀올 생각입니다. 유엔 동시가입이 화해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체 국정 중 어떤 쪽에 비중을 둘 생각입니까?
우선 우리 사회에 근검절약하는 분위기를 확산시키지 않으면 경제적 고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앞으로 공직자들이 솔선해서 근검절약해야겠습니다. 정부에서도 절감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에서 추진하는 10% 절감운동에 동참해 이를 적극 펴나갈 예정입니다. 예산도 그렇고 용품도 그렇습니다. 이미 외국에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며 우리를 비아냥 거리는데 이제 바짝 정신차리고 제2의 도약을 위해 근검을 생활화해야겠습니다. 우리나라 쓰레기 배출량이 세계1위라고 하고 쓰레기 가운데 음식 찌꺼기가 27.4%라고 합니다. 이를 줄여야겠습니다. 과거에 표준식단제·주문식단제가 실패로 끝나고 말았는데 이번 전국요식업중앙회가 중심이 되어 벌이는 ‘좋은 식단제’는 큰 성과를 거두리라고 기대합니다.

강경초리라는 평가가 있는데요?
재야에서 퍼뜨린 말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부드럽다는 말을 듣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 출연했더니 시청자의 반응도 부드럽다는 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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