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맞섰던 ‘미 교포 여기자’ 모국 유학
  • 편집국 ()
  • 승인 1991.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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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꼬리가 올라간 노란 잡종개…” 지난해 5월 같은 신문사 대선배 칼럼니스트에게 성차별문제를 항의하다가 모멸찬 인종차별적 폭언세례를 받아 미 언론들이 떠들썩하게 다루었던 소위 ‘브레슬린 폭언’ 파문의 피해당사자 여지연씨(27·본지 90년 5월27일자 보도). 당시 미국의 유수 일간지인 뉴욕 <뉴스데이> 1년차 올챙이 기자로 뉴스의 초점이 됐던 그가 한국에 와 이번 9월 학기부터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여씨의 모국유학은 현재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밟고 있는 박사과정의 일환인데 전공분야는 ‘한인 이민사’.

 “신문기자를 계속한다면 깊이 공부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요. 본래 대학 다닐 때부터 교수가 되고 싶었거든요.” ‘이민 1.5세’로 이민에 따른 많은 문제점을 절감해왔다는 그는 특히 미국 속의 한인들이 인종·민족·문화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공부하고 싶다고 말한다.

 동양계에겐 여전히 벽이 두터운 미 언론계에 발을 디뎠던 그가 미련없이 신문사를 그만둔 것은 폭언파문이 진정될 즈음이 작년 7월. 그리고는 스탠퍼드대 재학시절 학보사 동료기자로 오래 사귀어온 동갑내기 클린트 여필씨와 결혼, 이번 유학길에도 함께 왔다.

 신문기자인 여씨가 기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당시 뉴욕시장 뉴욕주지사까지 나서 반박·옹호하는 등 정치문제로까지 번졌던 폭언파문의 진상은 이런 것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퓰리처상까지 받은 60대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지미 브레슬린이 쓴 칼럼내용. 그는 ‘공식적으로 아내는 집을 나갔다’라는 제하의 한 칼럼을 통해 뉴욕시의원인 아내가 공무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겨 자신과 집안 일에 충분히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자신을 일하는 여자들, 특히 고위직 여성들을 몹시 싫어한다고 비꼬듯 썼다. 여씨에 따르면 브레슬린의 이같은 성차별적 칼럼내용은 처음이 아니며 이전부터 계속되어왔다는 것이다.

 이에 뉴욕 퀸즈지국에서 근무하던 여씨가 맨해턴 사무실에 있는 브레슬린에게 컴퓨터 라인을 통해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당신의 우치를 스스로 손상시키는 내용”이라는 항의 메시지를 보냈다. 항의를 받고 흥분한 브레슬린은 맨해턴 편집국 기자들을 향해 “눈꼬리가 올라간 노란 잡종개(yellow cur)…" "신발이나 팔아라” 등 심한 폭언을 퍼부어댔다. 이같은 발언은 즉시 동료기자들의 반발을 사 회사측에다 브레슬린의 강력한 징계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파문은 브레슬린이 같은 칼럼란에다 사과내용을 게재하고, 2주간 무급정직 징계조처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됐었다.

 그로부터 두달 후 여씨가 사의를 표하자 회사측은 “파문내용 때문이 아니냐”며 극력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진로변경은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다 때가 돼 실행에 옮긴 것뿐이라고 했다.

 어린 나이(5세)에 이민을 떠났음에도 우리말을 무리없이 구사하는 여씨는 이번이 네 번째 한국방문. “한국에 오니깐 오히려 미국에서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어쨌든 백인들은 동양인들을 어떤 고정관념을 갖고 보려하거든요.” 20여년간 ‘미국인’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동양인의 벽’을 떨칠 수 없었다는 여씨는 박사과정을 끝낸 다음엔 한국에서 강의할 기회도 찾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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