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도시’가 ‘辛도시’된 까닭
  • 송준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民建硏, 수원성과 분당 비교 2백년전 ‘도시 계획 철학’ 아예 사라져


 신도시는 ‘新도시’인가 ‘辛도시’인가. 최근 진보적 건축전문가와 교수들이 우리나라 신도시의 효율성과 문제점을 분석, 비판하고 그 대안을 마련하려는 ‘수원성곽과 분당 신도시 비교연구’를 시작했다. 金鴻植 교수(47·명지대 건축학)를 중심으로 한 민족건축미학연구회(회장 金蘭基·이하 민건연)가 그들이다.

 민건연의 연구는 신도시의 결함과 역기능을 산발적으로 비판한 앞서 있던 지적들과는 달리 분당 신도시 구성원의 삶의 환경을 두루 진단하는 총체적이고 입체적인 것이다.

 민건연이 주목하는 대목은 신도시 건설 계획에 담긴 철학과 가치관이다. ‘왜, 그때, 거기에, 누구를 위해, 어떤 신도시를, 어떻게 세우려 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들은 신도시를 평가하는 잣대로 조선후기의 대표적 건축이자 계획도시인 華城(지금의 수원성, 또는 수원시)을 택했다. 두 계획도시를 비교함으로써 오늘날 신도시가 인간과 시대를 얼마나 도외시하는가를 고발하겠다는 것이다.

 수원성은 외적 방어능력을 고려한 계획도시로 정조 20년(1796)에 완성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山城 위주의 기존 병법이 효과를 보지 못함에 따라 조정에서는 산이 아닌 마을을 방어 거점으로 하는 새 전법과 새로운 양식의 성곽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학자들은 정조가 새로 건설하는 수원성을 상업도시로 키우고자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당시 조선 사회는 상업이 제법 융성하여 원시적 형태의 자본주의 요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같은 사회·경제적 역동성을 계획도시 안에 수용하려 했으리라는 것이다.

당대의 재상 채제공이 공사 총괄

 이렇게 완성된 수원성은 여러 측면에서 도시계획의 철학적 준거를 제공한다고 민건연 김란기 회장(39)은 말한다. 그 내용은 김홍식 교수가 쓴 《민족건축론》(한길사펴냄)에 상세히 밝혀져 있다. 첫째는 민본사상이다. 정조는 기존의 수원읍 주민들에게 금 10만냥을 내주며 이주를 도왔고, 이후 10년 동안 면세 혜택을 주어 정착의 어려움을 덜어주었다. 또 상업자본가를 적극 유치하고 난전을 허용해 상업도시의 성격을 더욱 뚜렷이했다.

 수원성곽은 외적 방어능력을 극대화하는 한편 성벽 자체도 첨성대 형태의 ‘圭形’을 취하는 등 전통건축의 철학을 전승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이밖에 거중기·활차 등 기계를 고안해 활용한 점, 벽돌·모르타르·콘크리트 등을 만들어 사용한 점 등은 시공의 경제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사업의 계획과 검토, 반성에 철저했고 공사의 관리와 책임소재를 명확히했다는 것이다. 정조는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고루 지낸 당대 제일의 재상 蔡濟恭을 화성 유수로 삼아 모든 공사를 총괄하도록 했다. 또 시공 과정은 물론 구역별 담당자·일자·제도 양식·의식절차·기계와 기구·물자내역·노임 등에 이르기까지 공사전반을 모두 10권으로 된 《華城城役儀軌》에 소상히 기록함으로써 책임소재를 명확히했다. 그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계획도시로서 수원성은 당시 정세에 휘말려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분당 같은 신도시의 경우 도시계획 정신과 철학 측면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김홍식 교수는 “입주자들은 자기가 살 집에 대한 소망과 견해를 조금도 전달하지 못한다. 정부와 건설업자의 정책·경제적 이해가 뒤얽혀 만들어진 공간에 묵묵히 들어가 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라고 말한다.

 근대 신도시의 효시는 성남시로 알려져 있다. 60년대 서울의 판자촌과 달동네 빈민을 당시허허벌판이던 지금의 성남시에 강제 이주시킨 것이 도시계획의 전부였다. 도로·주택·학교·상하수도 등 도시 기반시설을 거의 갖추지 않은 채 무작정 터만 마련한 다음 이주민을 몰아넣은 것이다. 이후 창원·구미·울산 등 대단위 공업단지와 안산·반월 공단 신시가지 조성 경험을 통해 도시계획 수준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실제 거주자의 불편은 그다지 해소된 것 같지 않다.

 치밀하고 복합적인 도시계획을 수립할 틈도 없이 지난 89년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서울로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킨다는 취지 아래 ‘2백만호 주택 급조’ 계획으로 추진된 것이 지금의 신도시들이다. 국토개발연구원 申東珍 책임연구원(35)은“ 당시 가장 급한 문제는 살인적인 집값을 잡는 일이었다. 입지·규모·수량 등 어떤 요소보다 시간 변수가 우선했다”고 밝혔다. 물론 그 이후 집값은 어느 정도 잡혔지만 앞으로 몇십 년을 신도시에서 살아야 할 주민들로서는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막대한 규모의 공사를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인력난·골자재난·마감 장식재 부족 등 건설시장을 뒤흔드는 소동을 불렀고, 부실공사 위험을 낳았다. 유적지 훼손과 환경문제, 건축미학·건축심리학적 측면에 대한 지적은 한가한 소리로 들리는 형편이다.

 민건연의 연구가 끝나면 좀더 구체적인 신도시 분석·비판이 제기될 터이지만 자칫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 입만 아픈 경우가 될 우려도 있다. 수원성곽 축조 때의 채제공 같이 총괄 책임을 맡은 부서(또는 사람)가 신도시에는 없기 때문이다.

 신도시 건설을 주관하는 건설부나 토지개발공사는 각기 자신들의 소관업무만 기계적으로 수행할 뿐이다. 토개공측은 정부가 발표한 신도시 개발 지역에 도시 기반시설을 한 다음 건설업체들에게 택지를 분양한다. 건설업체는 분양받은 택지에 맞게, 건축업자를 상대로 설계도를 공모한다. 여기서 채택된 건축안을 건설부에 제출한다.

 건설부는 택지개발촉진법·주택건설촉진법 등 관련 법규의 기준에 맞기만 하면 전체 신도시 모양이 어떻게 되든 건설회사의 건축안을 승인할 수밖에 없다. 정부 자문기구로 도시설계자문위원회·중앙건축위원회 등이 있지만, 신도시 건설의 최종단계인 건설회사의 설계 및 시공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게 돼 있다. 결국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설계·건축가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그것이 반영되고 안되고는 건설회사의 이익에 기여하느냐 여부에 달린 셈이다.

 이번 민건연의 연구와 대안 역시 아무리 좋은 것이 나오더라도 ‘실현되지 않는 설계도’에 머물지도 모른다. 따라서 신도시 건설의 전과정을 총괄하는 기구에 대한 연구와, 그 기구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전문가·입주예정자·환경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견제기구에 대한 연구도 같이 진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연구가 당국의 정책과 건설회사의 설계도면에 반영될 때 비로소 신도시는 ‘辛도시’를 벗어나 명실상부한 ‘新도시’로 뿌리내릴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