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호머’ 윌코트
  • 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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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노벨문학상 수상자 데릭 월코트의 문학과 생애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겸 극작가 데릭 월코트(62)는 혼혈이다. 그의 문화적 혈액에는 유럽과 아프리카, 카리브해의 역사와 문화가 뒤섞여 있다. 월코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시집은 90년에 나온 장편서사시 《오메로스》이다. 이 시집은 그에게 ‘현대의 호머’라는 칭호를 달아주었다. 영어권 문단의 비평가들은 《오메로스》가 호머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를 그가 성장한 카리브해 문화와 접목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 결정 이유에서 “월코트는 아프리카·유럽·카리브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토착적인 예술형식으로 창조해냈다“면서 《오메로스》에는 호머·에드가 앨런 포우·러시아의 시인 마야코프스키·소설가 멜빌의 음성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이 선배 작가들을 육화해낸 월코트의 시는 역사적 비전을 은유와 빛나는 이미지로 빚어낸다. 모두 64장으로 완결되는 《오메로스》는 위 세 문화가 서로 갈등하고 삼투하는 웅장한 서사시이다. 구비문학의 전통에 충실한 이 시는 역사로서의 바다와, 바다를 둘러싼 해양문화를 노래하는데, 서로 다른 문화와 문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탁월하게 소화하고 있다. 고대 설화의 신비함과 서인도제도의 미래가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비평가 제임스 알타스는 월코트 문학의 테마를 그가 태어난 서인도제도의 영연방 세인트 루이스섬에 대한 ‘이중구조의 사랑’이라고 규정한다. 영국 식민지의 시민이며 흑인이고 그래서 영원한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고향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집 《오메로스》의 편집자인 갤러시는 영국 시의 전통을 탁월하게 구사하는 현대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월코트이며, 그는 진보적인 작가가 아니라 매우 서정적인 시인이라고 평가한다. 이 시집은 91년 영국에서 ‘W.H.스미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왜 내가 결정됐는지 모르겠다. 나보다는 트리니나드 출신 작가인 V.S.나이폴이나 아일랜드 시인 시무스 허니가 받을 줄 알았다”라고 당혹해한 월코트는 “서인도제도의 문학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돼 기쁘다”면서 상금(1백20만달러)으로 고향 세인트 루이스에 집과 연극 스튜디오를 짓고 싶다고 말했다.

“내 생애 자체도 이중적이다”

 월코트의 생애는 그의 문학세계와 함수관계를 갖는다. “아주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고 싶어했다”는 월코트는 한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사회사업가이자 아마추어 연극인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은 연극과 오페라에 많은 관심을 가진 영국인이며 어머니는 아프리카 노예혈통이었다. 식민지 지배자와 노예의 피는 그의 시 <아프리카의 먼 외침>에서 “아프리카와 영국, 내 사랑은 어디인가”로 표출된다. 《오메로스》에서는 “그가 찾아다니는 것은 그의 이름이오. 그 자신의 이름과 영혼말이오”라고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유색인종의 아픔이 드러난다.

 월코트는 “나의 경험은 카리브해의 것이며 나의 정신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로부터 왔다”고 말했다. 18세 때인 48년 첫 시집 《25편의 시》를 펴내며 등단한 월코트는 53년 세인트 루이스에서 현재 거주지인 트리니나드로 이주했다. 시 쓰기와 함께 그는 연극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54년 첫 희곡 <도핀의 바다>를 발표했고 62년 시집 《초록빛 밤에》로 문학적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의 초기시의 관심은 영문학의 전통과 크레올어(서인도제도의 토착어)의 결합이었다. 크레올어에 스며들어 있는 카리브 문화와, 나아가 아프리카적 정서와 세계관을 전달하기 위해 그는 정확한 영어를 구사했다. 아버지인 영어와 어머니인 아프리카와 카리브의 만남을 문학 속에서 시도한 것이다.

 그무렵 그는 라틴어·프랑스어 교사 생활을 거쳐 <트리니나드 가디언>지의 예술평론기자로도 활약했다. 59년에는 ‘트리니나드 연극연구회’를 조직하고 60년부터 전업작가로 나섰다. <타잔의 형제들>(58년)에 이어 그는 <원숭이산에서의 꿈>(70) <마지막 카니발>(86) 등의 희곡을 썼는데, <마지막 카니발>은 트리니나드의 최근세사 20년을 다룬 것으로 스웨덴에서 공연된 바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희곡의 중요한 특징은 그의 시가 그러한 것처럼 다양한 문화의 목소리들을 아우르는 솜씨에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 보스턴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그는 미국과 트리니나드를 오가는 생활을 한다. 미국에 있으면 카리브에 가고 싶고 카리브에 머무를 때는 미국으로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생애와 문학은 이처럼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는 요즘도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글을 쓰는 한편 틈틈이 그림도 그린다.

 그가 태어난 영연방 세인트 루이스는 베네수엘라와 쿠바 사이에 있는데, 면적 6백16㎢에 인구는 15만명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관광산업과 바나나로 유명한 이 섬은 월코트가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섬 전체가 잔치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세인트 루이스에서 노벨상은 낯설지 않다. 79년 이곳 출신 경제학자 아더 루이스(현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이다. 루이스와 월코트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세인트 루이스는 문맹률이 15%밖에 안될 만큼 교육수준이 높다. 유엔주재 세인트 루이스 외교관은 “세인트 루이스는 오래 전부터 강력한 지적 전통이 있어왔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노벨문학상은, 발표 직전까지 중국 아니면 일본 작가에게 돌아갈 것이란 예측이 무성했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제3세계 작가들에게도 상이 주어졌지만 유독 동북아의 한문문화권 작가들은 제외됐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18명의 심사위원이 모두 2백50명의 추천후보자 가운데서 월코트를 선정했는데, 10월9일 발표 직전까지 “우리는 항상 격렬한 토론을 갖는다”라는 말 이외에는 수상자에 대한 어떤 암시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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