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여성 90% 사창가行
  • 글 문정우 기자. 사진 나명석 기자 ()
  • 승인 1991.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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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주와 유착된 경찰, 무허가 변태 유흥업소 방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실종소식을 듣는 것이 일상사가 돼버렸다.  일간지 사회면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직장이나 학교에서 멀쩡히 잘 지내고 있던 여성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는 얘기가 실리고 있으며, 그보다도 훨씬 많은 사례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납치범들에게 끌려가 봉변을 당할 뻔했다는 여성의 얘기는 하도 흔해서 이제는 아무도 새삼스러워 하지 않을 지경이 됐다.  급기야는 군부의 철권통치를 받았던 남미의 여러 나라 외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있음직하지 않은 실종자가족협의회라는 단체가 지난 8월 결성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여성들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해버리는 것일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실종자찾기운동을 버리고 있는 민주시민 운동연합(이하 민시련·의장 全在    )에 지난해 신고된 실종자수는 모두 4백여명으로 90%가 15~25세 사이의 여성이었다.  그 중에서 92명을 구출해냈는데 그들은 거의 예외없이 사창가나 무허가 변태 유흥업소에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심신이 망가진 채 억류돼 있었다.  또 2백여명은 자진 귀가하거나 탈출했는데 그들도 태반이 비슷한 장소에 잡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어떤 여성이 실종됐다고 하면 십중팔구는 변태 무허가 유흥업소에 팔려갔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얘기이다.

  민시련 전재혁 의장은 “우리 사회에서 인신매매를 영원히 추방하려면 근본적으로는 먹고 살기 위해서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여성에게조차 마땅한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구조가 개선돼야겠지만 시급한 일은 변태 유흥업소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동안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들 업소들은 점차로 조직이 강화돼 마피아처럼 돼가고 있는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유흥업계에서 무허가 변태 영업이 얼마나 기승을 부리고 있는가 하면 허가를 받아 장사를 하는 업소는 전체 업소의 25%에 지나지 않는다.  유흥업중앙회(회장 오호석)의 추산에 따르면 전국의 허가업소는 1만8천여개이나 무허가 변태업소는 8만여개에 달한다.  특히 서울의 경우 허가업소가 1천3백여개인 반면 무허가업소는 8천여개를 헤아린다고 한다.

  유흥업소란 법적으로 말하면 ‘접대부가 객과 동석하여 대작하며 가무음곡을 즐길 수 있는 곳'을 가리킨다.  유흥업소는 두가지로 분류되는데, 룸살롱 스탠드바 요정 등은 일반유흥업소이며 나이트클럽 카바레 디스코장등은 무도유흥업소이다.  이들 유흥업소는 대중음식점 등 여타 서비스 업소에 비해 무거운 세금을 내며 60여가지에 달하는 영업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이 영업규정 가운데는 접대부 등 종업원에 대한 철저한 인사관리도 포함돼 있어 유흥업소가 법대로만 관리된다면 인신매매가 이루어질 수 있는 소지는 거의 없다.

  유흥업중앙회의 오호석 회장은 “유흥업계에서 변태 무허가업소가 판을 치고 이들로 인해 인신매매 등 사회문제가 야기되는 것은 현행 법체제가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어기라고 하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실제로 허가받은 업소들도 거의 모두가 소득을 속이고 있는 실정이다.   법적 소들의 30%이상을 신고하면 누구나 망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법을 지키려는 사람은 점차로 유흥업에서 손을 떼게 되고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폭력조직이 유흥업계를 장악해 온갖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3가에서 룸살롱을 경영하고 있는 ㅅ씨는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오히려 무허가 변태업소는 흥청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영업시간 단축으로 허가업소들은 하나 둘 줄고 있는 반면 무허가 변태업소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그들은 경찰이 언제 단속하는지 귀신같이 잘 안다.  무허가업소의 불이 꺼진 날이면 어김없이 경찰 단속반이 들이닥친다. 이런 식이라면 인신매매 근절은 기대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흥업계 종사자들은 인신매매의 온상인 무허가 변태업소가 방치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업주와 경찰이 끈끈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울 OO동에서 룸살롱을 경영하는 ㅎ씨는 “각 관내 파출소에는 같은 지역에서만 10년 이상 근무한 경찰관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느 골목의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도 훤히 꿰고 있을 정도입니다.  몰라서 못잡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얼마 전 우리집에서도 미성년자를 모르고 고용했다가 적발돼 경찰에 1천5백만원을 진상하고 무마했습니다.  전쟁선포 전에는 5백 단위였는데 선포 이후에는 천 단위로 뛰었습니다.  그러니 미성년자로 연명하고 있는 변태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라고 귀띔했다.

  “유흥업소가 물이라면 경찰은 고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사례는 실로 너무나 많다.  지난해 2월 민시련은 서울에서 가장 큰 사창가인 미아리텍사스를 덮친 적이 있었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왔다가 실종된 이미숙(22.가명)씨가 그곳에 있다는 제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전봇대에 붙어 있는 구인광고를 보고 무심히 찾아갔다가 그날부터 바로 윤락녀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히 제보가 정확해 바로 구출되었는데 이씨는 인근 파출소에서 경위 설명을 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얘기했다.  파출소 순경 한사람을 가리키며 “바로 저 사람이 포주로부터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으며 단속 사실을 미리 알려주곤 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당시 이 사실은 언론에 잠깐 보도되기도 했으나 곧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경찰이 포주와 유착돼 있다는 증거는 최근에도 끊임없이 포착되고 ㅇㅆ다.  민주시민운동 연합은 지난 10일 시경 특수대 형사들을 대동하고 서울 홍제동의 ㄷ룸살롱을 덮쳤다.  그곳에 감금돼 윤락행위를 강요받고 있던 한 여성이 탈출해 제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연행된 것은 포주가 아니라 특수대 형사들과 민시련 사람들이었다.  파출소에서 번개같이 달려와 신분을 확인하겠다며 팔을 꺽고 끌고간 것이었다.  당시 룸살롱에는 자칭 그 지역 구의원이란 사람이 나타나 “왜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느냐"고 따지기도 했는데 이는 변태업소를 비호하는 세력이 경찰만이 아님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선경찰뿐만 아니라 도대체 정부당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는 것같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국가출인찾기운동본부의 김홍규 본부장은 “수만은 여성들이 전봇대나 주간지의 허위 구인광고를 보고 속아 팔려가고 있는데 정부는 이 구인광고를 내는 사람들을 단속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변태업소 업주들이 전봇대나 담벼락에 구인광고를 붙이면 국민의 세금으로 사람을 사서 떼는 것이 고작이다.  구인광고에는 '날 잡아 가십쇼'하며 전화번호와 약도까지 그려져 있는데 왜 단속을 안하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김본부장은 남성들의 이중적인 성윤리도 꼬집는다.  “남성들은 낮에는 신문을 보면서 인신매매를 개탄하지만 밤에 술집에 가면 이른바 '영계'만 찾는다.  지금까지 누구 한사람 술집에서 미성년자를 봤다고 경찰에 고발하거나 사회단체에 제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영계'라는 말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회에서 통용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여성의 인신매매에 둔감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민시련 관계자들은 룸살롱 등에서 구출한 미성년자들의 입에서 누구라고 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사회지도급 인사들의 이름이 거침없이 흘러나올 때는 참으로 당혹스럽다고 얘기하고 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친구와 서울 이태원에 놀러갔다가 왠 남자의 꼬임에 빠져 룸살롱에 팔려간 뒤 3개월 만에 탈출해 민시련을 찾아온 김영숙(18.가명)양을 상담하고 있던 중이었다.  김양은 무심코 탁자 위에 있는 신문을 보더니 1면에 나와 있는 한 정치인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김양은 부끄러워 하면서 "이 할아버지를 상대한 적이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민시련 관계자들은 “구출된 여성들은 한결같이 잡혀 있던 업소에 관할 파출소 소장이나 관계 공무원들이 손님으로 찾아오곤 했으나 누구 한사람 자신들이 미성년자인지 납치돼왔는지 확인하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얘기하고 있다"며 기막혀 하기도 했다.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업주나 알선업자 등을 응징하지 않으려 해 무허가 변태업소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민시련 관계자들은 기껏 딸 자식을 찾아주면 그 순간부터 부모들이 민시련과 연락을 끊는 경우가 많다며 맥빠져 한다.  그래서 미성년자를 팔고 산 악질적인 중간상과 포주는 누군지 뻔히 알면서도 경찰에 고발조차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납치를 당했건 강간을 당했건 무조건 정조를 잃은 여성을 외면하는 사회풍조 때문에 애써 피해사실을 감추려는 부모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인신매매는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된다"는 것이 민시련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현재 실종자찾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회단체는 민시련 전국가출인찾기운동본부 한국 청소년선도회 등 세곳뿐이다.  이들은 신고된 실종자들을 수소문하기에도 턱없이 손이 모자라 애써 구출해낸 여성들이 상처를 딛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가장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전국가출인찾기운동본부의 한 자원봉사자는 “구출해낸 여성중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안다.  국내의 대기업들이 그같은 여성들이 재활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관심을 기울이는 곳이 한곳도 없다"며 애석해 했다.  이 자원봉사자는 "대구 실종 어린이들의 사진을 자사 상품의 포장에 게재하고 있는 회사들에게 실종된 여성들의 사진도 게재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회사 이미지를 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며 씁쓸해 하기도 했다.

  납치당했던 여성들의 정신적·육체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11월 광주 대인동에서 구출된 19세의 소아마비 여성은 하루에 최고 36명의 손님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민시련 관계자들을 경악케 한 일도 있었다.  포주는 이 여성이 잠을 자는 시간도 아까워 잠 안오는 약을 계속 먹이고 손님을 받도록 했다고 한다.  이같은 일을 당한 여성들은 대개 실어증 대인기피증 정신착란증 등에 시달리게 마련인데 거의가 집이 가난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지내야 되는 게 현실이다.

  실종자찾기운동을 버리고 있는 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인신매매범에 대한 형벌이 무거워지고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봉고차로 길에서 부녀자를 납치하는 등의 이른바 ‘땅치기??는 많이 줄어들었으나 그대신 청소년 유인 납치가 늘어나고 있다며 크게 우려한다.  지난 1년 동안 한국청소년선도회가 집으로 돌려보낸 가출청소년은 8백40명(남자 4백87명, 여자 3백53명)으로 인쇄소에 취직해 있던 남학생 한명을 빼놓고는 전원을 무허가 변태 유흥업소에서 찾아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20세까지의 청소년 가출자는 모두 4만여명인데 자진귀가율이 10% 미만이고 보면 1년에 변태 유흥업소에 흡수되고 있는 남녀 청소년이 적어도 3만명은 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청소년선도회의 박부일 회장은 “선진국에도 청소년 문제는 있지만 우리나처럼 사회악에 청소년들이 곧장 편입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가출하자마자 바로 여자는 접대부가 되고 남자는 그들을 감시하는 어깨가 되고 있다.  인신매매 문제를 떠나 국가 장래를 위해 암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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