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 박준웅 편집위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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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를 법으로 인정해야 하나

뇌사자의 장기이식이 현실화된 가운데 이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유보해야 한다는 반론이 맞서 있다.

 

 

 찬               박진탁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본부장.  
 

뇌사 인정은 장기의식의 현실적 필요성을 전제로 한 것으로써 인간의 생명을 도구화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려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장기의식은 뇌사가 주는 실익일 뿐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오해를 막기 위해 뇌사 인정 문제와 장기이식을 별도의 문제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뇌사를 인정하는 선진국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도구화하고 존엄성을 파괴했다고 주장한 예가 한건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은 단지 관념에 불과하다. 오히려 인간생명의 위대함을 보여줄 수 있는 사안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통념으로는 환자의 심장이 뛰고 호흡이 계속되는 한 살아 있다고 본다. 단지 뇌의 기능이 정지했다고 하여 사망으로 처리하는 것은 국민 감정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진국의 첨단기술과 문화, 혹은 비합리적인 사고까지 갈등 없이 쉽게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꼭 배워야 할 합리적인 제도에 감정상의 문제로 연연하는 身體髮膚 受之父母와 같은 맹목적 가치 때문이라고 본다. 심장과 호흡이 멈춘 후에도 피하조직은 수십분 혹은 수시간 살아 있다고 하니, 죽음은 어느 고정 시점을 기준으로 판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결국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뇌사를 인정하자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시점을 조금 앞당기자는 뜻이다.

 유교사상이 뿌리깊은 풍토에서 필연적으로 시체 손상이 뒤따르는 사후 장기기증이 정착되겠는가.

 물론이다. 현재 본부에 9천여명의 사후 장기기증자가 등록되어 있는데 이중 20~40대가 70%를 차지한다. 이는 젊을수록 장기기증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증거이다.

박진탁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왜 비윤리적인가“

개인의 생명과 신체가 타인의 판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더구나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유족의 뜻에 따라 장기기증이 이루어져서야 되겠는가.

 신체를 매매하자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승화시키자는 것이다. 타인의 생명을 살림으로써 그 생명의 일부나마 살아 있다는 위안을 맛보고 싶은 것이 어떻게 비윤리적이란 말인가.

의사들이 오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있는 것처럼 뇌사에 있어서도 오진이나 오판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뇌사 오진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이식에 관여하지 않는 신경외과 전문의 2명이 뇌사를 인정하는 각국의 객관적인 뇌사 판정기준에 따라, 규정된 시설 장비를 갖춘 병원에서 엄격하게 확인하는 방법으로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으므로 장기의 매매를 유도하거나 알선, 조장하는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법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장기기식은 의학적으로 환자에게는 최선의 치료인 만큼 생체로부터 장기를 이식하는 것이나 시체로부터 장기이식 등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매매란 절대 있을 수 없다. 우리 본부는 모든 장기이식의 의료보험화와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은 내적 장애인으로 지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제공되는 장기가 있어도 수술 비용이 막대하므로 경제 사정상 선뜻 응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기이식이라는 목적만을 위해 뇌사 판정을 서두른다든지, 필요에 따라 뇌사 이후에도 계속 인공호흡기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뇌사라 하더라도 장기이식은 생전에 본인의 의사 표시가 있는 문건이 있거나 가족의 동의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또한 뇌사를 가족이 인정하지 않으면 심장사가 될 때까지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

뇌사 인정의 바람직한 해결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나라도 뇌사를 법에서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할 뿐 아니라 장기이식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장기기증 활성화 방안’ 등을 만들어 정부 차원에서 고통받는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반    표재명 고려대 철학과 교수.


뇌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현재 40여개국에서 뇌사를 의학적 또는 법률적으로 인정하며, 법률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국가도 대부분 의학적으로 인정하여 뇌사자의 장기이식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뇌사의 개념 자체나, 뇌사 후에는 반드시 심장사가 온다는 의학적 설명을 이해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뇌사는 곧 죽음이라는 객관적 기준으로 확정하는 데는 적지않은 어려움이 따른다. 사람은 생물학적 존재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이므로 사람의 죽음에 대한 규정은 문화인류학을 비롯하여 사회학·법학·심리학·철학과 같은 여러 분야에 걸친 폭넓은 논의를 통해 비로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금년 들어 이미 일곱차례나 뇌사자 장기이식 수술이 있었다. 이는 법제화만 안되었을 뿐 뇌사에 관한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새로운 죽음의 개념으로써 뇌사가 문제되는 것은 원리상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의 장기의식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여기서는 전통적인 심장사와 뇌사 사이의 시간 차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대두한다. 뇌사가 죽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시간 차를 무시하자는 의미이다. 곧 뇌사는 죽음, 뇌사자는 시체라고 생각해 시체로부터 필요한 장기를 적출하여 그것을 필요로 하는 다른 환자에게 이식하여 한 생명이라도 살리는 것이 좋다는 논리인 것이다.

지난 2월 갤럽조사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0%가 뇌사 인정에 동의했고 뇌사자의 장기이식 수술에 대해 81.2%가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제3자의 뇌사, 뇌사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장기이식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사람은 그것을 현실적 사태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합리성의 잣대로 잰다면 뇌사와 심장사 사이의 차이는 아마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과 사회를 움직여왔고 또 움직이는 것은 결코 ‘합리’라는 가치만이 아니지 않은가.

표재명 “사람의 죽음은 의학적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소생 가능성이 없는 뇌사자에게 명예롭게 죽음을 맞게 함으로써 가족의 심리적 부담과 고통, 경제적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매우 중요하고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이식의 정당화 문제와는 또 다른 논의에 속한다. 그것은 환자의 자기 결정을 중시하는 것으로써 △감염병에서 성인병으로 사망 원인의 중심이 이동하고 △치료의 장기화와 고액화 △치료 목적의 연명지상주의(Vitalism)의 치료 목표로부터 생명의 질 중심주의로 사람의 관심이 전환됨에 따라 나타난 논의이고, 원칙적으로 환자 자신이 치료를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권리의 문제인 것이다.

뇌사제도야말로 생명의 존엄성과 숭고한 사랑의 정신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는 중대한 윤리적인 어려움이 숨어 있다. 그것은 생착률이 높은 신선한 장기를 확보하려는 데서 생명 가치의 서열을 매기게 되는 함정이다. 즉 기껏해야 10여일밖에 살지 못하는, 그래서 이제는 아무 쓸모없게 된 생명과 이식 후 여러 해를 더 살며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생명 사이에 우열을 인정하게 되는 난점이 있는 것이다.

부작용이나 역기능은 뇌사 인정의 조건과 절차, 장기이식의 제도를 효과적으로 완벽하게 마련하면 없앨 수 있지 않겠는가.

 자기의 건강한 삶을 소망하고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나머지 무의식으로나마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바라거나 돈으로 장기를 사려고 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뇌사 인정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세라면 보완하거나 경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뇌사 문제는 의학적 측면보다는 사회적 측면에 있는 것이므로 뇌사를 곧 죽음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는 합의가 의료 담당자와 국민 사이에 확립되고, 법이 이 개념을 받아들일 때까지는 뇌사자의 장기이식을 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슬기로우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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