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농민 반란' 유기농산품 직거래
  • 김당 기자 ()
  • 승인 1991.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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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UR태풍이 몰려오는 가운데 농민들이 주도하는 조용한 ‘반란'이 일고 잇다.  농민들 스스로 제 살길을 찾아나선 결과인 이 반란은 한마디로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인 도시민의 농산품 직거래를 통해 기존의 복잡한 유통구조를 깨뜨리는 것으로 가공혁명을 동반하고 있다.

  물론 이런 직거래 방식이 어제오늘 사이에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기농법으로만 지은 ‘무공해 농산품??을 생산?소비자가 주체적으로 유통조직을 만들어 집단적인 생산?소비공동체를 만든 것은 드문 일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환경위기에 맞선 생명운동과 외국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응한 우리 농산물 먹기 운동 등의 전파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어 이에 가담하는 '반란군'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더욱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일부 '관군'들마저 은근히 호응하고 있어 그만큼 '외군'의 상륙에 대한 우리 농업의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상품설명서 붙은 예가원 농산물
 농림수산부.한국방송공사가 주최하고 농·축·수협 중앙회의 참여로 10월24일부터 11월2일까지 여의도광장에서 열리는 ‘제2 녹색시대'행사도 그런 움직임에 동조하는 관변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가공식품. 가공기계 전시회인 이 행사에 붙인 이름에서도 그 취지가 드러나는데, 기존의 녹색혁명(제1녹색시대)이 생산 위주의 농업(증산혁명)이라면 제2녹색시대는 가공 위주의 농업(가공혁명)으로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자는 것이다.  전시와 시연 그리고 판매를 겸한 이 행사에는 모두 3천여종의 가공식품 및 특산품과 1백60여점의 가공기계 및 농기계가 전시되고 있다.

 전시판매된 농산품 중에서 전북 임실농협에서 출하한 ‘예가원 찹쌀현미'는 전국 최고가격(3㎏에 1만원)으로 관심을 끌 만했다. '재배자:이진하 신호영 부부' '농약: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사용 않음' '건조방법:태양 자연건조' ED의 글귀가 적힌 '재배방법 및 품질보증서'가 붙은 이 찹쌀현미는 지난 9년 동안 퇴비농법으로 재배한 논에서 생산된 것이다.  농산품에서는 낯선 '상품설명서'가 붙은 예가원 농산물은 그밖에도 현미의 싹을 틔워 미숫가루로 만든 현미싹가루(재배자:이진하 신호영 부부), 푸성귀와 당근즙을 자연발효시킨 야채엑기스(생산자:신은채 전효심 부부)등이 선보였다.

  전북 지역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예가원이라는 상표를 단 이 무공해 농산품의 생산자들은 모두 ‘전북살림'이라는 생산.소비 공동체의 생산자 모임인 '바른 농사 실천 농민회'(약칭 '바실농')회원들이다.  바실농의 전신이자 이 생산자 모임에서 생산한 농산품의 상표명인 예가원의 연혁은 앞서의 '9년 동안 퇴비농법으로 재배한 현미'라는 표현이 암시하듯 9년전으로 거술러 올라간다.

  전주농고를 졸업한 이진하씨(34.바실농 회장)가 지난 79년 고향 임실에서 신호영씨(33)와 결혼하면서 세운 공동 목표는 “농촌에서 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각오와 달리 이씨 부부가 80년 한해 동안 농사를 지어 결산해보고 내린 결론은 "도저히 못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씨는 81년 3월부터 만 2년간 외도를 했다.  전에 임실읍에서 목회 활동을 한 심상봉 목사(54.임실제일교회)가 초석을 다진 신용협동조합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그런데 농사일을 손 놓은 이씨가 다시 농사를 그것도 전과는 다른 농사를 짓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신협에 나가던 82년 평생 농사만 지어온 부친이 위암으로 수술을 받게 된 것이 그것이다. 그때 부친이 병상에서 “집에서 먹을 양식이라도 농약을 안치고 지었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을 건넨 데다가 "위암에는 현미가 좋다"는 말을 듣고서 이듬해인 83년부터 무농약으로 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유기농법이니 생명운동이니 하는 이론적 배경이 없을 때이므로 단지 개인적인 필요와 결심으로 무농약 재배를 택했던 것인데 화학비료 대신에 퇴비로만 지었어도 예상보다느 소출이 좋았다.

  이렇게 세 해를 혼자서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던 이씨는 85년 겨울 전주농고 2년 후배인 송기봉씨와동업’을 하게 된다.  이씨의 말을 빌리면 "송씨는 몸에 밴 농사꾼이나 땅이 없었고 저는 땅은 40마지기쯤 있었으나 건성으로 흉내만 내던 농사꾼이라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또 심상봉 목사를 다시 모셔오기로 뜨슬 모아 86년 2월 두사람은 심목사와 상봉하게 된다.

  이때부터 심목사를 포함한 동네 청년 8명은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1년 동안 매주 1회이상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밤샘 공부를 하게 된다.  교재는 정호경 신부가 쓴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등인데 책거리를 마친 청년들은 그해 연말에 “그동안 우리가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겨 보자"는 데 합의, 87년 1월1일 '예가원'이 탄생하게 된다.

“농산품 가격도 생산자가 정하자"
  예가원 출범 이후 회원들이 맨처음 착수한 것은 “생산자에 대한 중간상인들의 대접을 바꿔 보자??는 것이었다.  농산물의 특성상 늘 울며 겨자 먹기로 흥정에 임할 수밖에 없는 유통구조를 조금씩 깨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진하씨는 87년 11월부터 무공해 콩나물 재배를 시작했다.  한동이에서 3백g들이 20여 봉지가 나왔는데 이를 예가원에서는 "공산품처럼 농산품도 우리가 가격(생산 납품가)을 정하자"는 획기적 발상을 냈다.  그러러면 공산품처럼 농산품에도 상품에 대한 품질보장과 애프터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결론도 끌어냈다.  또 그동안 농민들이 거부반응을 보여온 반품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농산품에도 반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는 유통의 벽을 깨뜨리기 위한 ‘전술적인 배경??도 있었다.  예가원에서는 당시 전주 코아백화점 등에 납품 흥정을 하면서 ??잡품가와 판매가(마진율)를 우리가 정하겠다??고 제시했으나 그쪽은 ??서울이라면 몰라도 전주에서는 그런 가격으로 팔기에는 무리??라고 난색을 표명해 그대신 반품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렇게 해서 백화점으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는 반품조건 아래 무공해 쌀 말고도 무공해 콩나물이 식표품 코너의 한귀퉁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콩나물 한봉지의 납품가는 4백원, 판매가는 4백50원이었고 8㎏들이 쌀은 납품가 1만2천5백원, 소비자가격 1만3천원이었다.  시중 일반미보다 30%쯤 비싼 가격이었으나 예가원에서 1년 동안 생산하는 1백 50가마쯤이 거뜬히 팔릴 만큼 시장성이 좋았다.  이는 전주보다 시장이 큰 광주의 백화점에까지 판로를 개척한 결과였다.

  무공해 현미를 비롯해 콩나물 현미싹가루 표고버섯 등으로 가짓수를 늘리면서 백화점과 소비자협동조합 매장 등 여기저기 시장을 개척해 예가원의 경제적 기반이 잡혀갈 무렵이었다.  광주에서도 유기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하는 광록회가 생겨 광주 시장을 양보하자 판로가 준 데다가 직거래 필수품인 차량 유지비가 예상 외로 많이 들어 살림이 적자로 돌아섰다.  회원들로서는 “떼돈 벌어 잘먹고 잘 살자고 시작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생활에 타격이 오자 일단 예가원을 해체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고민의 실마리는 오히려 쉽게 풀렸다.  난국 타개를 모색하던 지난해 봄 예가원과 친교가 있는 전주예수병원 의사 김경일씨(현 고산의원 원장)와 원주의 임낙경 목사가 자초지종을 듣고서 “고민할 게 뭐 있냐, 더 제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생산?소비 공동체의 판을 짠 사람은 김씨를 비롯한 의사들이었다.  ??병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병의 근원인 병든 먹거리를 고치는 것 또한 의사의 할 일??임을 주장해온 의사 4명이 발기한 '전북살림'이 지난해 7월 만들어졌다.  전라북도의 자연과 농민을 살리는 소비자 조직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었다.

  생산·소비 모임을 아우르는 전북살림이 뜬 것을 계기로 삼아, 예가원이라는 이름은 전북 지역에서의 지명도를 고려하여 백화점·농협 등에 납품하는 농산품의 상표명으로 쓰되 생산자 모임명은 ‘바른 농사 실천 농민회??로 바꾸게 되었다.  이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회원들이 가질 수 있는 부담감을 덜어주는 발전적 해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생산·소비자가 함께 결성한 ‘전북살림'
 전북살림의 특징은 다른 살림운동 단체들이 대체로 먹거리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낀 소비자가 생산자 또는 생산자 모임을 찾아나서서 만들어진 것인 데 비해 생산·소비자가 함께 주체적으로 결성했다는 점이다.  소비자 대표 5명과 생산자 대표 2명으로 이루어진 공동대표 운영위원회에서 회원 가정에 공급하는 농산품의 가격을 함께 결정하는 것도 특징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한해 전에 산절한 가격예시제에 따라 -올해의 경우 지난 10월15일 열린 이듬해 11월까지 지속된다-각자의 살림 형편에 맞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대체적으로 시중가보다는 비싸지만 품귀나 파동에 따른 가격 등락이 없고 무엇보다도 농약을 안 친 무공해 농산물을 공급받는다는 점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  또 생산자로서도 한해 전에 미리 농산물 시장의 규모를 파악해 그 규모에 맞춰 안전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 아들 김경일씨의 부탁으로 이 일을 거들고 있다는 김예권씨(전부갈림 사무장)는 “식탁 공해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일종의 도급제나 계약재배 방식으로 운영하는 살림운동 단체도 많이 생겼지만 소비자 모임을 끼고 집단으로 40가지가 넘는 농산물을 유기농으로 하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전북살림의 살림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주 이리 지역의 소비자 회원 1백50여명이 출자한 9백만원과 바실농 생산자 회원 아홉 가구에서 출자한 2백만원을 합친 1천1백만원의 출자금으로 시작했지만 재무구조상으로는 2백만원 적자를 안고 있다.  사무장 김씨는 “이같은 적자요인은 무엇보다도 출자만 해놓고는 활용을 잘 안하는 소비자 회원수가 많은 데 있다??고 풀이한다. 실제로 생산자쪽에서 보자면 전북살림에서 소화되는 물량(전체의 30%)이 백화점 농협 유기농산물상점 들보다 월등히 적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소비자 회원이 요구하는 ??가짓수 많고 소량인 농산물??을 대는 것도 생산자로서는 큰 부담이다.

  전북살림의 먹거리르 떠맡고 있는 바실농회원은 현재 아홉 가구 19명이다.  구성원 수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자도 남자들과 똑같응 회원으로 대접받고 권리를 갖는다.  실제 농사의 주체적 역할은 여성의 주체성을 회칙에 반영하고 있다.  또 42가지나 되는 작물을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것도 바실농이 다른 유기농 모임과 다른 점이다.  벼에서부터 상추 쑥갓 오이 가지 양배추 당근 아욱 시금치 케일 수박 참외 따위 다품목을 이처럼 한 지역단위로 생산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 유기농법으로 농산물을 생산하거나 유통시키는 곳으로는 한 살림과 한 살림생산자 협의회, 경실련과 정농회, 광주 광록회, 대전 한밭살림 등과 전국 유기농법연구회, 한국 미생물농법연구회 같은 조직이 있으나 대체로 계약재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밖에 풀무원 같은 대량 생산?판매 조직도 있다. 그러나 이씨에 따르면 최근 풀무원에 납품하는 한 농장에서 재배한 파에서 다이아제논이라는 농약이 검출돼 말썽이 일었듯이 규모가 커질수록 농약 안 쓰고는 농사를 짓기가 힘들다고 한다.  물론 바실농 회원들은 절대로 농약을 안쓴다.  비료 대신 퇴비를 만들어 쓴다.  바실농 회칙을 인용하면, 바실농이 할 몫은 "바른 농사를 실천하는 생산자 조직으로서 땅의 건강성을 회복하여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생산하고, 유통구조 개선과 아울러 서로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 농민이 살고 나아가 사회구성원 모두의 건강한 삶과 올바른 관계 형성에 기여하고자 하는데 있다." 이들은 이른바 사이클농법이라고 이름붙인 유기농법으로 '공동경작지'를 일군다.  19명이 회원은 각각 미작반(이진하, 송비공, 조기현 부부 등) 과채반(최을두 이동련 등) 축산반(신은채 부부 심상봉 목사 등)으로 나뉘는데, 미작?과채반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유기농법의 골간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사이클농법은 가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과도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농사만 지어서는 현상유지조차 어렵기 때문에 이를 테면 현미는 싹으 틔워 미숫가루로 만들고, 콩도 싹을 틔워 콩나물로 기르고 각종 야채는 발효시켜 야채엑기스를 만드는 식으로 가공을 거쳐야 인건비도 건지고 콩깍지등 남는 부산물을 사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이들은 모두 이틀에 한번씩 신선한 먹을거리를 거두고 가공 포장해 교대로 전주 이리 등지로 출하하고 있다.

  바실농 회원들로서는 시장 개척도 과제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생산·소비자간의 먹거리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힘을 쏟고 있다.  생산자도 소비자 이식을 알아야 하지만 소비자에게도 생산자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고추를 예로 들자면 ‘고추는 맵고 얼큰해야 제맛??이라는 인식에서 생산하는 것이 생산자인 농민의 입장이지만 소비자의 입맛과 의식은 꼬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가정에서 입맛을 결정하는 주체가 점점 아이들로 바뀌어감에 따라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매우 고추는 주부들도 잘 안 사려 한다는 것인데, 그러므로 생산자도 소비자의 입맛을 따라가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반대로 소비자가 싫어하지만 생산자가 ??굳이 먹이려??하는 것도 있다.  바실농의 자랑거리인, 9년째 퇴비농법으로 생산한 현미가 그것이다.  입안에서 꺼끌꺼끌한 현미밥은 아이들이 싫어하나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현미식을 권한다는 것이다.

죽은 땅 살리는 유일한 대안 ‘유기농법'
 바실농은 지난해 가을 이러한 생산·소비 공감대 형성의 일환으로 ‘메뚜기잔치'를 기혹했었다.  이진하씨는 80여명의 소비자 회원들이 논에서 메뚜기를 잡고 밭에서 손수 거둔 야채로 식사를 하는 이 잔치가 "생산.소비자가 함께 점차 회복돼가는 생태계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잘못된 유통구조와 해로운 농사법의 피해자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또 올 여름에는 '전북살림 어린이 여름농장'을 열어 부모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이 여름캠프에 참가한 아이들 25명은 마을 앞 개울에서 직접 잡은 물고기를 각각 농약과 트리오 비눗물을 담은 병에 집어놓고 독성을 비교하는 산 교육을 통해 환경보전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또 올 11월에는 회원들을 초청해 야채를 주제로 한 추수감사제를 가질 예정이다.  물론 이런 '기획 프로' 말고도 바실농과 전북살림은 수시로 소비자 회원들로 하여금 생산현장을 견학케 해 식탁 공해의 심각성을 현장 확인토록 하고 있다.

  바실농에서 추구하는 농법은 사실 이들의 말대로 “손이 많이 가는 농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내년부터 10년동안 총 42조원을 투입하는 "농어촌구조개선대책"의 시행과 관련, 이진하씨는 "정부에서 농지 2백평당 1가마를 보상하는 휴경보상제가 실시되면 당장 농사 안 지을 농민이 많을 것이지만 땅에 독약을 뿌리는 현재의 농법을 고수하는 한 휴경으로도 잃어버린 지력은 회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비료는 뿌리기만 하면 되지만 발효퇴비는 정성들여 만들어서 줘야 한다.  또 제초제 대신에 손으로 뽑아야 되므로 정부에서 추진하는 탈농을 통한 기계농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손이 많이 가는 농법이지만 유기농은 죽은 땅, 죽어가는 생명체를 살리는 유일한 대안이다"는 주장이다.

  농협지도자교육원에서 발행하는 한 계간영농잡지 가을호에서는 이 ‘유일한 대안'을 "UR 극복 현장을 가다-바른농사실천농민회"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이씨의 말을 빌린 그 기사의 결론은, 유기농산물을 원하는 소비자를 조직화하고 공급을 체계화하면 수입 농산물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가 오더라도 소비자가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고 우리 농업을 걱정하는 때가 곧 오리라는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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