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과로사에 노출돼 있다.
  • 정희상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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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0대 직장인에 집중적으로 발생




 로얄제리 생산연구부에 근무하던 이종완대리(40 )지난해 11월17일 아침 출근길에 대문 앞에서 갑자기 쓰러져 불귀의 객이됐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서 진단한 그의 사인은급성 심근 경색증.

 이씨는 사내에서 일에 대한 정열과 근성이 대단한 인물로 정평이 나있었다. 연구를 거듭하며 힘든 일을 도맡다시피해온 그는 신제품 개발도 곧잘 해내 회사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는터였다. 자연히 매일밤 9시를 넘어 퇴근하는 것은 물론, 일요일에도 별로 쉰적이 없었다.사망 직전에는 실험 때문에 회사에서 밤을 꼬박 지새는 일도 많았다.

 평소 감기 외에는 별다른 병을 앓아본적이 없던 이씨는 쓰러지기 사흘 전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야근으로 인한 극심한 피로로 녹초가 돼 퇴근한 이씨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아내에게 말한 후 고목처럼 드러누운 것이다. 이튿날 병원에 가보라는 아내의 권유를 뒤로 하고 밀린 작업이 많다며 출근한 그는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조퇴했다. 그는 바로 그 다음날 쓰러졌다.

 그가 사망하자 아내 최선숙씨는 남편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히사에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개인적인 질병으로 사망했다며 이를 거절했다. 이어 노동부를 상대로 낸 두차례의 심사청구마저 기각당해 실의에 빠진 최씨는, 요즘 자신으 엇울한 사연을 법원에 호소하는 소장을 쓰고 있다.

 “산업역군으로 몸바쳐 일하다 쓰러진 아빠를 부끄러워하며 살아갈 우리 민우에게 사회는뭐라고 답하겠습니까?

 절규하다시피 털어놓는 최씨의 사연은 결코 희귀한 사례가 아니다. 얼마전부터 직종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일본에서 일찍이 사회문제가 된 이른바 과로사·돌연사 증후군이 어느새 우리 사회에도 상륙한 것이다.

 과로사라는 용어는 몇해 전 일본에서 나온 말이다. 건강해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는 의미로 돌연사라고도 한다. 국내에서 과로사문제를 연구해 온 김국진 교수 (고려대 의대·법의학)는 과로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많은 작업량·스트레스가 원인

 “신체적으로 약간의 병세가 있어도 그서이 사인이 될 정도는 아니고, 사망원인으로 과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때 과로사라 부른다. 산업발달로 일의 분량이 늘고 정신적 스트레레스가원인이 되어 직장인들의 과로사가 늘고 있다.”

 과로사는 30대에서50대의 한참 일할 세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의학계 일각에서는 과로사를 ‘청장년 급사 증후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쨌든 한참 일할 나이인 세대에게 불어닥친 과로사 증후군은 스스로가 ‘이정도 쯤이야’하고 방심할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체력적으로 무리가 통하지 않기 시작하는 이 세대에게는 장시간 노동·업무상의 강한 스트레스·연속되는 야근·불규칙한 근무시간 등 과로사의 워인이 될 만한 작업환경이 도사리고 있다.

 과로사는 대부분 뇌졸중·뇌경색·급성 심부정·심근경색 등 순환기계 이상으로 발생한다. 넑은 의미에서는 쓰러져 사망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신체 일부의 마비로 건강을 해친 경우면 과로사 범주에 들어간다.

 아직 일본ㄴ에서처럼 대대적인 사회문제로 비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서 과로사가 대수롭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을 갑자기 덮치는 과로사 악령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난해 8월31일 충남 청양군 청남초등학교 박창환 교사가 수업 도중 쓰러져 사망했다. 4학년 학급담임인 박교사는 방학중 학교교육 추진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공부방을 운영하느라 한시도 쉬지 못한 데다가, 솔섬수범해 학교 경리업무까지 처리하는 등 과중한 업무 끝에 심장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그보다 앞서 전북 임실군 갈담초등학교 조명렬 교사 역시 수업 도중 쓰러져 숨졌다. 전주시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학교로 출근해 매일 막차로 퇴근하는고된 생활이 죽음을 몰고 온 것이다.

 과로사는 특히 정신적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 사무·관리직 직장인들을 빠른 속도로 공격하고 있다. 지난 89년 10뤟 31일에는 동양화학공업(주) 자동차사업부 영업2과 박병근차장이 과로로 쓰러져 숨졌다. 직책상회사의 영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거래처 간부들을 접대해야 했던 그는, 그날도 미국지사 직원들에게 저녁 대접을 하던 중 쓰러져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사망한 뒤였다. 지난해 업무중 쓰러져 사망한 모 금융회사 임원 이모씨(49)도 관리직 과로사의 대표적인 예. 전에 근무하던 회사가 투자한 새 금융기관으로 옮기면서 그곳 업무를 본궤도에 올리기 위해 아예 개인시간을 없다시피할 정도로 정열을 쏟다가 뇌출혈로 사망했다.

 산업의 고도화와 스트레스 증가로 직장인의 과로사 위험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 직종에 따라서는 일일이 사례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과로사가 많은 직업도 있다. 경찰관·기자·택시기사가 그런 예이다

 지난1년간 과로로 순직한 경찰관은 1백29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서울시내 택시기사가 상조회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운행중 과로로 사망한 기사들을 조사한 결과 연간 20여명씩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자들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지난해 하반기2개월 동안의 조합원 과로사 실태를 조사한 결과 그 짧은 기간에 무려 4명이 쓰러졌다.

 사망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과로로 쓰러진 후 신체 일부 마비 등 심각한 장애로 시달리는 넓은 의미의 과로사군도 적지 않다. 지난 88년 2월 회사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까지 병석에서 신음하는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 ㄷ엔지니어링 설계부 차장 김근호씨는(45)가 그 예다. 10여년간 이 회사에 근무한 김씨는 일상화된 시간외 근문로 만성피로에 젖어 있었다. 더욱이 쓰러지기 직전에는 그동안 해오던 업무에 추가해 새로운 설계업무를 부여 받았다. 이때부터 극도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그는 급기야 뇌출혈로 쓰러졌다. 김씨가 사고를 당한 뒤 가족들이 요양을 요구했으나 회사측은 “대한민국 회사치고 과로하지 않는 회사가어디 있느냐”하며 거절했다. 마비증세로 병석에 누운 김씨는 가족과 함께 집념의 법정투쟁을 벌인 끝에 사고발생 3년을 넘긴올해 10월10일에애 서울고법으로부터 드물게 ‘직업성재해인정’승소판결을 받았다.

 아남사업 생산관리과장으로 근무하다 90년 5월 과로로 쓰러져 지금까지 후유증에 시달리는 정용택씨(47)도비슷한 경우다. 정씨는 타고난 성실성과 근무능력을 인정받아 회사로부터 표창도 받고 비교적 빨리 승진했다. 그런 그에게 88년 뜻하지 않던 문제가 생겼다. 심혈을 기울여‘자재관리개선안’을 마련한 정씨는 이를 부회장에게 보고했는데, 부장·이사 등 직속상사가 보고 계통을 밝지 않았다고 문제삼은 것이다. 이 일로 일종의 괘씸죄에 걸려 보직을 박탈당하고 부천에 있는 계열사로 전보 발령된 정씨는 계속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90년 봄 현장에서 쓰러졌다. 회사는 건강악화를 이유로 얼마 후 그를 해고조처했다.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생계를 위해 일거리를 찾는 김씨는 재해인정 해정소송과 해고무효소송을 동시에 제기해두고 있다.

“돌연사 중 40%이상이 과로사”

 이처럼 심각한 과로사 문제에 대해 국내에서는 아직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확한 통계도 없다. 고려대 의대 문국진 박사는 “전체 돌연사 환자 중 40%이상이 과로사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견해만을 밝혔다. 산업재해 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이 경우 법률사무소 하종강 간사는 과로사가 사회적으로 방치되는이유에 대해 “정신노동자들에게 과로사가 많은데 이들의 의식이 문제다. 직업병은 생산직에나 있는 것이라는 고정 관념 때문에 막상 과호사를 당해도 개인적인 문제로 덮어두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사업현장의 기본적 사고성 재해에 대처하기 조차 급급한 국내 노동계와 산업의학계의 현실도 과로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방치해온 한 요인이다.

 직장인의 과로사 요인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전문의들은 특히주의가 필요한 과로사 위험 작업으로 다음 다섯가지를 든다. △주야를 가리지 않고 목표달성을 위해 매진하는 장시간 노동 △주간근무와 야간근무가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교대근무형 노동 △긴장이 수반되는 격무를 집중 수행하는 관리자형 근무 △작업내용과 근무시간의 심한 변화 △생활환경과 지작환경의 심한 변화 등이 그것이다.

 물론 과로사이 원인이 순전히 작업요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술·담배·식생활 등 개인의 생활습관도 과로사에 영향을 끼치는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자기가 지닌 과로사 위험요소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려는 노력이중요하다(46쪽참조).·

 요즘 정신노동에 조사하는 직장인 가운데는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휴식시간이나 여가시간을 활용해 수영장·헬스클럽을 찾는다는지 조깅을 하는 예가 그것이다. 황수관 교수(연세대 의대·생리학)는 과로와 운도의 관계를 이렇게 밝혔다.

 “과로한 사람이 운동을 잘못하면 돌연사하기 십상이다. 며칠 전 조깅을 습관화하던 대학교수한 분이 돌연사한 일이 있는데 몸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로하기 쉬운 정신노동자는 자기 몸에 맞는 운동이 무엇인지 의사와 상의할 후 지시에따를필요가 있다. 자기 운동능력의 50~80%를 발휘하는 운동은 효과적이지만 그 이상이면 불의의 사고를 당할 위험이 크다”

 그는 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은 숨이 약간 가쁠 정도로 하는 하루 30분 내외이 조깅·수영·에어로빅이 적당하다고 권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지장인은 이갗은 운동이나 생활습관을 들이기 위해 작업을 제쳐놓는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과중한 업무부담이 생활습관을 악화시키고 여가를 제한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직장 내 과로사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작업방식을 개선해나가려는 근로자 스스로의 노력과 사용주의 종업원 건강에 대한 배려가 사회적인 과제로 대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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