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두렵지 않다”
  • 편집국 ()
  • 승인 1991.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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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화약고’ 중동에도 평화의 봄은 올 것인가.

미·소 합작으로 30일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되는 중동평화회담은 분쟁 당사국들이 사상 처음으로 협상테이블에 앉게 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 · 소가 공동의장국이 되는 이번 회담은 각 분쟁 당사국과 유엔이 참가하는 첫날의 전체 회의에 이어 이스라엘-시리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요르단 공동대표 등의 연석회의가 열리게 된다.

엘리아스 프레이저(71)는 현재 베들레헴시 시장이자 팔레스타인 대표단 7인 중 1명으로 선정된 인물. 프레이저 시장은 지난 72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직선으로 베들레헴 시장에 선출된 후 지금까지 19년째 장수하고 있다. 17일 베들레헴 외곽에 위치한 그의 자택으로 찾아가 그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그토록 기다려온 이번 회담에 거는 기대는 무엇인가?
우선은 점령지로부터 이스라엘군이 철수하는 것이다. 이 지역의 궁극적인 평화를 위해 이스라엘과 진지하게 토론하고 싶다. 하나 불행히도 이스라엘은 말만 무성할 뿐이지 평화회담을 위한 구상안이 없다. 점령지를 계속 자신의 손아귀에 두려고만 할 뿐이다. 현재 진행중인 점령지 내의 유대인 정착촌 건립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이는 국제질서에도, 논리에도 어긋난다. 단기적으로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이 지역에 유럽공동시장(EC)과 같은 중동공동시장을 마련, 경제 과학 교육 차원의 공동협력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테러집단으로 규정한 바 있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승인한 프레이저 시장이 몸담고 있는 팔레스타인 대표단과는 회담에 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팔레스타인 대표단과 PLO와의 관계를 밝혀줄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이 회담을 거부하려고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유일한 합법기구는 PLO뿐이다. 물론 우리 대표단 누구도 PLO가 승인하지 않으면 대표가 될 수 없다. 나 개인적으로도 PLO본부에서 준비작업을 하고 있는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과 거의 매일 통화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측에서도 이런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런데도 PLO가 승인하는 대표단과 협상에 임하지 않겠다는 것은 평화회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결과에 따라서는 혹 팔레스타인 협상 대표단이 평화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에 협조하는 기미라도 보이면 배반자로 낙인찍혀 암살당할 수도 있을 텐데 각오는 됐는가?
팔레스타인 협상 대표단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결과가 어떤 형태로 끝나든 우리는 팔레스타인 근본주의자 뿐만 아니라 유대근본주의자들의 테러 목표가 될 것이다. 우리집에 들어와서 느꼈겠지만 경비병을 한명도 두지 않아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나를 쉽게 죽일 수 있다. 이미 20여년간 베들레헴 시장으로 지내면서 수없이 테러 위협을 받아왔다. 대개 위협으로 끝났지만. 그러나 아무런 경고가 없을 때가 무서운 법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같이 중요한 회담을 앞두고 무엇이 두려울 게 있겠는가.

지난 8월 워싱턴 방문시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 만났는데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미국측이 특별히 요구한 사항이 있었는가?
베이커 장관은 올해만도 네번이나 만났다. 모든 분야에 대해 폭넓게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모두 밝힐 수는 없지만 많은 부문에서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점령지의 유대인 정착촌 건립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에 베이커 장관도 뜻을 같이했다. 이것은 실제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이민지원금 차관 연기로 나타났다. 그와 만나면서 이번 회담을 성사시키려는 미국의 집념을 읽을 수 있었다. 미국 압력의 강도에 따라 어쩌면 이번 회담을 계기로 지난 79년 이집트-이스라엘이 맺은 캠프데이비드평화협정 같은 것도 기대해볼 만하다.

페르시아만 전쟁 때 PLO는 사담 후세인 편을 지지하다가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했다. 또 지난번 소련 쿠데타 불발 때도 사담 후세인과 한 목소리로 쿠데타 세력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소련측으로부터 버림받는 신세가 됐다. 이런 계속되는 실책이 팔레스타인의 오늘을 더욱 난국으로 몰고 간다고 보지는 않는가?
페르시아만 전쟁 때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사담 후세인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나부터도 분명히 공개적으로 후세인 정책을 반대했다. 어떻든 그와 같은 우는 현재의 고착된 시련기를 벗어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에서 나온 몸부림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은 중동에 이중정책을 펴고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의 정책을 평가한다면?
물론 미국의 그런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번 중동평화구상안에 대해서 우리는 전적으로 지지를 표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도 미국의 평화제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당신의 나라(한국)가 있는 극동은 조용하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소련에서는 공산당이 무너졌고 발트3국은 독립해서 소원을 풀었다. 유고에서 민족간 분쟁이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유럽은 전체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오직 중동에만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이제야말로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평화를 정착시켜야 할 때이다. 이 열쇠는 이스라엘이 잡고 있는 만큼 이스라엘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에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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