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도 보수파”
  • 김당 기자 ()
  • 승인 1994.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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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교수 ‘재판관 결정 성향 분석’/“개혁 성향은 1명뿐”



 새로운 헌법재판소 구성이 코앞에 다가왔다. 9월14일이면 헌법재판소를 구성하는 헌법재판관(재판관) 9명 중 7명의 임기(6년)가 끝난다. 따라서 88년 9월15일 재판관 9명이 처음 임명되어 정식 출범한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퇴임한 2명에 이어 이번에 7명이 임기 만료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물갈이’되는 셈이다.

 헌법재판소는(소장 조규광 재판관)에 따르면, 7월말 현재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심판 사건은 2천2백60건(처리 1천8백58건, 계속중 4백2건)이며, 그 중 위헌(인용) 결정만도 68건에 이른다. 이같은 ‘과중한’ 업무 수행은 그동안 역대 헌법 재판 기관들이 권력 이데올로기를 ‘장식하는 기관’으로 방치되었던 것에 견주면 놀랄 만한 변화이다. 이같은 변화는 늘 ‘개점 휴업’이던 역대 헌법 재판 기관들이 수행했던 위헌법률심판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그러나 ‘헌법을 생활규범화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라는 법조계의 일반적 평가임에도 불구하고 헌법 불합치, 일부 위헌, 한정 위헌, 한정 합헌 같은 여러 결정례에서 보듯이 헌법재판소가 위헌인듯 합헌인듯 모호한 ‘변형결정’을 남용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이른바 국가보안법의 꽃이라고 부르는 제7조 1항(반국가단체 찬양ㆍ고무ㆍ동조) 및 5항(이적표현물 제작ㆍ배포ㆍ소지)에 대한 한정 합헌 결정이다. 또 헌법재판소는 △90년 3당 합당 이후 민자당이 저지른 ‘국회 날치기 사건’의 위헌 소송과 △92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유보’ 조처를 한 노태우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일 불공고 위헌 확인’ 소송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무한정 결정을 미룬 채 현재까지도 ‘미제 사건’으로 남기고 있다.

 이처럼 체제 유지에 결정적인 사건에 대한 ‘황 의 정승식 결정’과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는 ‘부작위’는 국민의 민주화 투쟁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자해 행위라는 비판마저 불렀다. 물론 헌법이 본디 정치적 타협이나 결단에 의해 결정되고, 그 자체가 정치 권력 구조의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와는 다른 정치적 기관으로 간주된다. 이는 곧 헌법재판소라는 국가 기관의 구성에도 권위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세력과 권위주의를 타파하려는 세력이 혼재함을 뜻한다. 따라서 재판관들의 결정 성향을 분석하는 것은 곧 정치 권력 구조의 성향을 분석하는 준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3당 합당후 더욱 보수화
 그러나 이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일반국민은 물론 국회조차도 투쟁과 타협의 산물인 헌법재판소의 재판 행위와 재판관의 구성절차 그리고 재판관들의 재판 성향을 감시하는 데는 게으르다는 지적이다. 국회의 경우 재판관 3인을 선출케 돼 있으나 아직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제2기 헌법재판소 구성을 논의할 상임위가 운영위인지 법사위인지조차 불분명한 상태일 정도로 국회에서 이 문제는 관심 밖이다.

 헌법재판소 구성에 대해 집권 여당은 애써 모른 체하고, 야당은 실현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9월1일 열리는 ‘헌법재판소의 민주적 구성과 시민 참여’ 특별 공청회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참여와 인권을 위한 시민 연대(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한국공법학회 등이 공동 주최하는 이 공청회에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국 대학의 공법학교수 2백60명 전원과 전국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변호사 3백명 등 5백60명을 대상으로 한 헌법재판소 관련 설문조사의 결과와,〈헌법재판소의 인선 방법의 문제점〉〈헌법 재판관들의 결정 성향 분석〉〈시민이 원하는 헌법재판관의 상〉등 논문이 발표된다. 특히 부산 경성대 한상희 교수의 ‘결정 성향 분석’ 논문은 헌법재판소 6년의 공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첫 논문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이어지는 기사는 한교수의 논문을 요약ㆍ정리한 것이다).

 이 판결 성향의 분석 대상은 5년에 걸친 헌법재판소의 결정례에서 추출한 논점 3백32개 중에서 표결이 나뉜 93건이다. 이 중 시민권 사건은 32건, 재산권 사건은 15건, 본안전사건은 25건으로 총 72건이 분석 대상이다.

 우선 재판관들이 전반적인 결정 성향을 알기 위해 결정 의견 분포를 보면 기각 48건, 중도 13건, 인용 32건으로 평균평점 1.83을 보이고 있다〔평점은, 기각 1점, 중도 2점, 인용 3점으로 계산해 이를 결정 의견으로 나눈 것이다. 즉 평점={(기각)+(중도×2)+(인용×3)}÷(기각+중도+인용)〕.

 이 결과는 헌법재판소가 전반적으로 체제유지를 지향하는 보수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재판관 별로 보면, 황도연(1.56)에서 변정수(2.63)에 이르기까지 36%의 편차를 보인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보면, 이 편차는 재판관들의 다양성을 반영했다기보다는 변정수 재판관의 돌출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즉〔최광률―황도연〕을 한축으로 하여〔한병채―김문희, 조규광―이성렬〕―〔김진우―김양균, 이시윤〕으로 이어지는 선이 전반적인 보수 성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 반대축에 변정수 재판관이 자리잡고 있는 편향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91년 1월의 이른바 3당 합당 전후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여소야대 정국이 여대야소로 바뀌고, 80년대 말부터 다시 제기되기 시작한 보혁 구도의 강화 또는 공안 정국의 심화 현상이 3당 합당으로 그 절정을 맞이하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결정 성향 평균점이 2.03에서 1.72로 급변하면서 김양균 재판관을 제외한 모든 재판관들이 결정 성향도 함께 보수화한 현상을 보인다.

 특히 합당 전의 성향 편차는 1.77(한병채)에서 2.76(김진우)으로 33%이던 것이 합당 후에는 1.40(최광률)에서 2.60(변정수)으로 40%로 확대되면서〔한병채〕〔최광률〕〔김양균, 조규광―이성렬〕〔김문희〕〔이시윤〕〔변정수―김진우〕의 축이〔최광률, (황도연)―김진우, 김문희―이성렬, 이시윤, 조규광, 한병채〕〔김양균〕〔변정수〕의 축으로 양극화하는 변화 양상을 보인다. 즉 합당 전까지는 민정당 지명, 대통령 지명, 대법원장 지명, 야당 지명 등으로 재판관과 지명권자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는 결정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듯한 외관을 보였으나 점차 구분하기가 어려워지다가, 3당 합당을 계기로 이 구분이 완전히 없어지고 보수와 개혁의 양극단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나타낸 것이다.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헌법재판소
 위와 같은 분석 결과는 본안 사건, 특히 시민권 사건에 한정해 본다면 더욱 두드러진다. 위 오른쪽 표는 무엇보다도 헌법재판소의 보수화 경향이 바로 이 시민권 사건에서부터 비롯함을 보여준다. 우선 합당 전에는 결정 평균이 1.85로 비교적 중도에 가깝던 성향이 합당 이후에는 1.52로 떨어지면서 청구 논점 86% 이상이 실질적으로 기각되고 있다. 특히 합당을 전후한 김진우 재판관(전 통일민주당 지명)의 성향편차는 가장 급작스런 보수화(2.54에서 1.59로)를 나타낸다. 또 전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 결정 성향은 1.83이었으나 시민권 사건에서 1.62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청구 인용률이 재산권 사건에서 더 높음을 의미한다. 즉 시민권에 대한 재산권 등의 헌법상 지위를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둠으로써 사법 심사에서 2중 기준의 원칙이 뒤바뀌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결국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하지만 결코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3당 합당이 보혁 구도의 심화와 공안 정국 조성 등 기득권 세력 또는 수구 세력들의 기존 질서 수호의지가 한 정당의 권력 의지와 결합함으로써 이뤄진 사건이라면, 이는 헌법 이해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도 재판관들의 결정 성향은 심각한 보수화로 변화하면서 헌법이 아닌 법률 우선적 사고가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재판관들을 결정 성향의 축에 따라 분류하면 더욱 두드러지는데, 앞서의 축이 합당 후에는〔황도연―최광률〕〔한병채―이성렬―김진우―김문희―조규광〕〔이시윤―김양균〕〔변정수〕의 형태로 나타나 외관상으로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김진우 재판관의 자리바꿈과 더불어 보수 : (중도) : 개혁의 분포가 8 : 1또는 6 : 2 : 1로 편향돼 버린다.

 하지만 표에서 보듯이 재산권 사건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인다. 여기서는 전반적인 개혁 성향 속에서 이성렬 재판관을 제외하면 모든 재판관들이 평점 2.0을 초과하고 있으며 그 편차도 그렇게 크지 않다. 다만 경제에 관한 국가 규제에 우호적인 성향을 보이는 변정수 재판관과, 의회의 입법 형성권을 중심으로 법률의 합헌성 추정을 강조하는 국회 의원 출신 한병채 재판관이 미미한 차이로 보수 성향을 띠고 있을 뿐이다.

 본안전 사건은 재판관들의 결정 성향 및 태도를 반영한다기보다는 헌법 재판에 임하는 제서, 즉 재판관으로서의 ‘역할 정향’과 연결된다고 할 것이다. 헌법 재판의 범위와 한계, 분쟁을 헌법사건으로 특정하는 틀, 헌법재판소의 권한 영역 등에 대한 판단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재판관들의 성향은 소극(최광률 1.33)에서부터 적극(변정수 2.84)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면서 시민권 사건의 좌우 축과 거의 중첩된다. 대체로 본안전 판단의 대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것들이 재판절차에 대한 시민의 참여 범위라고 하는 일종의 시민권의 범위와 한계의 문제로 연결되느니만큼 시민권 사건의 성향이 이에 반영됨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구체적인 사안을 중심으로 개별적인 재판관들의 대응 양상을 살펴보면, 전반적인 경향성은 앞서 역할 정향 분석에서 나타난 결정성향과 유사한, 각 재판관들이 기울이는 관심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시국사건 유형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중점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5공화국까지의 반공·안보 이데올로기에서 6공화국의 보혁구도에 이르는 일련의 통치 이데올로기의 핵심을 이루거나, 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기 위해 학교ㆍ언론을 통제하는 일종의 억압 기제가 작용하는 영역인 것이다. 이 부분은 다시 국가 보안법, 사회보호법, 노동 3권, 언론ㆍ출판ㆍ교육 관련법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총 25건의 사건 가운데 불과 2건만 위헌이 선언된 사실에서 나타나듯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재판관들의 추종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이 중 특히 반공ㆍ안보 이데올로기가 직접 표출되는 국가보안법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집시법 또는 군사기밀보호법 영역의 경우, 이들은 그때그때의 통치 목적에 적절히 사용될 수 있도록 모호한 규정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을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일관되게 한정합헌 결정을 하고 있다. 한정합헌 의견이 집중된 것은 ‘모호하므로 무효’라는 헌법 원리보다는 지배 이데올로기적 고려가 더 크게 작용함을 암시하며, 그같은 결정 결과가 현실적으로 별의미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합헌 결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시국사건에 ‘중도’는 없다
 이렇게 본다면 시국 사건에 관한 한 헌법재판관들의 성향 분포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거의 무조건적인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변정수 재판관과 나머지 재판관으로 양극화해 있으며 중도적인 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냉전 구도와 남북한 관계에 대한 어떠한 실증적 또는 논리적 검토도 없이 ‘국가 안보를 위하여 국가 보안법은 없어서는 아니된다’는 예단을 바탕으로 깔고, 따라서 그것은 합헌이나 그 규정 방법에서의 모호성 때문에 이를 한정합헌 결정으로 ‘치유’함으로써 합헌적인 국법 질서형성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재산권 및 특권적 지위에 관한 사건은 국가 또는 공익 사업체에 대하여 자유시장경제원리에 반하는 특권을 인정하는 입법을 대상으로 헌법 판단을 하는 경우로, 극렬한 의견대립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입법 형성권을 중시하는 한병채 재판관은 여전히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최광률 재판관은 위헌 결정이 난 사건에서 전부 다수 의견에 가담하고, 토지거래허가제에 관한 사건의 경우에만 이례적으로 위헌이라는 반대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국가의 경제 개입 또는 경제 규제에 관해 적극적 성향을 보이는 점이 특이하다.

 하지만 이러한 위헌 의견들은 시민권 사건에서와 같은 맥락에서 처리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대체로 시민권 사건에서 결정 요인이란, 지난 시대의 권위주의적 통치 구조, 탈정치화, 정치 참여 배제 등에 대해 용인 또는 거부하는 태도이다. 따라서 이를 보수ㆍ개혁의 선을 따라 구분할 수 있다. 반면에 이 사건 유형에서는 앞서의 성장ㆍ안정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므로, 국가의 개입 그 자체는 보수ㆍ개혁의 선으로 규정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이상의 분석에서 헌법재판소의 발전을 위한 개선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먼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헌법관 부족이다. 기본권의 실질적 내용에 대한 판단보다 형식적 요소에만 중점을 두는 결정례는 이 점을 반영한다.

 또 재판관의 임기제와 재임용제는 지명권자의 의사를 매개로 지배 이데올로기가 재판관들의 태도를 구속한다. 특히 현행 재판관 임용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리고 국회의 재판관 지명 선출(3인) 관행이 계속된다면, 대통령은 적어도 4~5명(자신의 지명분 3명과 여당의 지명분 1~2명)을 확보하는 셈이 된다. 이 점은 위헌 결정을 3분의 2(6인) 이상의 찬성에 의하도록 한 규정과 결합해 대통령의 의지, 즉 다수자의 의지에 반하는 위헌 결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를 부를 우려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소수자 보호라는 위헌법률심사제도의 본래 목적이 심각한 장애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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