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유럽 대통합
  • 파리 · 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1.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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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서 지중해까지 / 네오 나치 행패 등 문제 산적

“스탈린은 죽고 유럽은 살았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이 마침내 뚫렸을 때 벽에 나붙은 구호 중의 하나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2년. 그러나 그간 통일 독일에서 들려온 것은 통합과 융화의 기쁜 소리가 아니라 주로 동서독간의 경제적 격차와 생활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아픔과 갈등의 소리들이었다.

독일 경제는 동독 재건을 위한 부담 때문에 허덕이기만 할 것인가. 신 해빙기의 유럽은 전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가. 이미 동유럽을 포함한 거의 모든 유럽국가들이 유럽공동체(EC)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과연 유럽은 대통합의 길로 나갈 것인가.

독일 경제의 장래에 관해서는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지난주에 발표되었다. 독일 중앙은행과 다섯개 주요 경제연구소가 공동으로 만든 보고서에 따르면 통일비용으로 인한 독일의 재정 적자는 처음 예상했던 규모보다는 훨씬 작을 것이며, 동독 경제는 내년부터는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물가와 임금의 상승 등 독일은 계속 심각한 경제문제를 안게 될 것이며 동시에 옛 동독의 실업자 문제도 여전히 심각할 것이라고 지적되어 있다.

금년에 19.5% 위축된 동독 경제가 내년에는 1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잇다. 실업자만 해도 작년 예측에 따르면 금년에 총 3백만명이 생겨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었다. 이번 보고서는 현재 1백만명 가까운 실업자 수가 내년 여름까지 계속 늘어날 것이지만 1백40만명 선까지밖에 안 올라갈 것이며 그 후에는 줄어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외국인 동성연애자 공격하는 네오 나치
결코 밝은 전망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도 헬무트 콜 정부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콜 정부는 통일 비용을 과소하게 예측한 과오를 인정한 지 오래다.

그러나 통일 경비 때문에 여전히 야당의 공격을 받고 있다. 동독 재건에는 앞으로 20년 동안 총 1조마르크(약 4백40조원)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독의 성장률은 금년에는 3.5% 수준이겠으나 내년에는 2%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동독 경제의 호전으로 독일 전체의 성장률은 금년의 1.5%에서 내년에는 2.5%로 올라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유럽에서 ‘모범적인 경제’로 칭찬 받아온 독일 경제는 통독 부담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괴롭히고 있는 경기 침체를 잘 견딜 것이라는 것이 또한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처럼 다소 낙관적인 경제 전망이 나돌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산업 구조 개혁에 따른 실업자 급증에 시달려 옛 동독의 사회분위기는 매우 험악하다. 나치 구호를 외치는 청년들의 행패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삭발머리를 한 특징 때문에 ‘스킨 헤드’라고 불리고 네오 나치라고도 지칭되는 이들의 공격 대상은 외국인 · 좌익 정치그룹 · 동성연애자 등이다.

경찰은 동독에 사는 네오 나치 핵심분자는 약 1천5백명밖에 안되지만, 부화뇌동하는 자들은 2만여명에 달한다고 말하고 있다. 금년 1월부터 8월 사이에 이들이 저지른 폭행 사건은 2백20건이나 되었다. 옛 서독에서는 통독 이전부터 네오 나치 분자들이 있었다. 요즘 이들도 덩달아 기승을 부려 작년보다 훨씬 많은 1백80건의 폭행사건이 금년 8개월간 저질러졌다.

독불합동군단 창설 제안
통계에 따르면 1970년대 초기에는 유럽에 망명하겠다는 사람의 수가 1년에 수천명 정도였으나 1983년에는 7만명에 달했으며 가장 최근 집계인 1989년 숫자는 35만명으로 나타나 있다.

망명 희망자 중 상당수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포함한 제3세계 사람들이며 정치망명이라기보다 경제난민인 경우가 많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작년에 동유럽권에서 서유럽으로 이주한 사람은 1백30만명 정도였으며, 1993년에 소련이 해외여행 자유화 조처를 시행하면 약 2백만명의 소련인이 외국으로 떠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와 같은 외국인 인구의 증대를 경계하려는 배타적인 경향은 독일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똑같은 경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비인도적인 나치 역사 때문에 독일 청년들의 네오 나치 행동은 유난히 심각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탈 냉전시대를 맞아 유럽의 위치와 역할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EC(유럽공동체)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에 일어난 일들 중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유럽군 창설안을 포함한 EC정치통합에 대한 프랑스와 독일의 공동제안과 유럽 19개국을 하나의 자유무역지역(EEA)으로 묶는 EC와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간의 합의라 할 것이다.

첫째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과 헬무트 콜 수상이 지난 10월16일에 발표하나 공동제안은 외교문제와 군사문제에 있어서 EC가 좀더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야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두 사람은 유럽군 창설의 제1보로 우선 4만5천명 정도의 독불합동군단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에 박차를 가한 것은 확실히 독일 통일이라고 볼 수 있다. 통일로 한결 덩치가 커진 독일에 대한 경계심은 특히 프랑스가 많이 가지고 있으나 스스로 경계심을 느끼고 있는 독일사람들도 적지 않다. 요는 독일 군대는 동맹국이나 우방국가의 동의가 있을 때만 움직일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유럽통합군 창설 제안의 의의는 아밖에도 있다. EC 12개국은 경제통합을 위한 조처들을 취하는 데 있어서는 큰 진전을 보였으나, 외교문제나 군사문제에 공동대처하는 태세는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걸프전쟁 때도 그렇고, 또 최근 유고슬라비아 사태에 대해서도 EC 국가들은 엇갈리는 반응을 보임으로써 혼란스러운 상황을 빚어왔다.

지난 10월22일 새벽 EC 12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아일랜드 덴마크 그리스)과 EFTA 7개국(오스트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은 유럽경제권(EEA)이라는 자유무역 시장을 함께 형성하기로 합의했다.

소련 내 공화국들 EC 가입 움직임
1993년 1월1일을 기하여 EC가 단일시장으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발효하게 될 EEA는 농업분야만을 제외하고 사람 돈 서비스 상품 부문의 자유왕래를 기약하고 있어 사실상 EC가 북극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으로 확대되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한다.

EC의 울타리가 넓어지면 어디까지 넓혀질 것인가. EFTA 7개국 중에서도 스웨덴과 오스트리아는 이미 EC가입 신청을 내놓았으며, 핀란드도 내년에 가입을 신청할 예정이다. 스위스와 노르웨이에서는 EC 가입이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한 토의가 진행되고 있다. 동유럽의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는 이미 EC의 준회원으로 우선 가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EC는 지난 8월27일 발트3국의 독립을 인정했으므로 발트3국도 EC 가입후보로 꼽히게 되었으며, 소련권에서도 그루지야가 이미 가입 희망을 피력했다.

EC 관계자들은 결국 30개국 정도로 회원국이 늘어날 것이라는 원대한 구상 아래 일을 해야 될 것 같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유럽통합의 길은 EC를 통해 뚫릴 가망이 큰 것이다.

탈냉전 시대의 새 질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지금 유럽은 여러모로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고 결정과정은 복잡하다. 동유럽권과 소련에서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유럽은 새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미국이나 일본과 협력 태세를 잘 가꾸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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